[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 흑산도③] 한·중·일 삼각무역의 아쉬움, 페달로 달래며…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 흑산도③] 한·중·일 삼각무역의 아쉬움, 페달로 달래며…
신안보물선의 비밀
  •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 승인 2018.03.11 13: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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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안치, 절도안치, 위리안치 설명안내판과 죄인을 가뒀던 집.
본향안치, 절도안치, 위리안치 설명안내판과 죄인을 가뒀던 집.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흑산도를 절반 넘어 라이딩할 즈음 사리보건진료소를 지나면 도로변에 유배문화공원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을 따라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흑산도의 역사나 다름없는 다양한 유배 유형을 살펴볼 수 있다. 흑산도를 비롯한 남쪽 섬들을 유배지로 격하시킨 조선시대의 해양정책을 가늠할만하다.

섬 초입 돌에 새겨진 연혁에 따르면 흑산도는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 당나라와 교역할 때 중간기착지로 중요성이 부각됐다고 한다. 당연히 주민들도 다수 거주했을 것이다. 1363년(고려공민왕12년)에는 왜구의 잦은 침탈로 주민을 영산강 하류 영산포로 집단 이주시켜 무인도가 됐다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강제 이주에 의한 공도령(空島令)은 우리나라 섬의 가장 큰 비극이다. 많은 학자들은 수세기에 걸친 공도정책과 그 여파 때문에 섬의 고유문화가 단절되고 우리의 항해술·해양진출·해상무역이 퇴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본향안치, 절도안치, 위리안치 설명안내판과 죄인을 가뒀던 집.
본향안치, 절도안치, 위리안치 설명안내판과 죄인을 가뒀던 집.

공도정책이 가져온 재앙
공도령의 직접적인 원인은 삼별초 항쟁(1270-1273)에서 기인한다. 강화도에서 난을 일으킨 삼별초가 본진을 진도로 옮기자 몽고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를 제외한 서남해 섬의 주민을 모두 육지로 이주시켰다. 몽고가 멸망한 뒤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공도령이 지속되다가 임진왜란 이후 조정의 통제능력 상실로 주민들이 하나둘씩 섬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공도정책이 유지되던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 흑산도에서 멀지 않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신안보물선은 흥미로운 수수께끼 몇 개를 후손들에게 던진다. 어부의 그물에 걸려 처음 실체가 드러난 신안선은 1976년부터 발굴과정이 공개되면서 세계적인 블루오션으로 관심을 끌었다.

대체적인 시각은 신안선은 중국 닝보(寧波)를 출발해 일본 후쿠오카(福岡) 하카타(博多)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 배가 폭풍우에 의해 경로를 이탈해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 침몰한 것인지 아니면 중간 기착지인 고려로 오다가 침몰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공도정책에 따른 무인도에 잠시 내릴 리는 없고 전남 강진에서 청자를 선적하거나 개경으로 가는 길에 침몰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신안선에서 고려무역의 비중은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도정책이 중-일무역에서 중계무역은커녕 ‘코리아 패싱’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항해술이다. 길이 34m, 너비11m의 선박 크기도 놀랍지만 어떻게 무동력으로 중국에서 일본까지 물살을 갈랐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신안선은 최대한 안전하게 중국 해안을 따라 북상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산둥반도에서 백령도로 건너와 남하했을 수 있다.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 열도를 하나씩 거치면서 하카타까지 가는 방법도 고려했을 것이다. 제주도나 다도해의 내해를 거쳐 가는 방법도 없지 않다.

유배중에 업적을 남긴 유산을 기록한 안내판.
흑산도 유배자 명단과 죄명.
흑산도 유배자들의 업적을 기린 기념비.
흑산도 유배자들의 업적을 기린 기념비.

나라가 장보고 후예 단절시켜
당시 중국의 선원들은 해류와 해풍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쿠로시오해류의 영향을 받는다. 쿠로시오 해류는 동중국해의 북동 방향으로 흘러 북태평양으로 들어간다. 쿠로시오 해류 일부는 황해로 흘러들어 황해 난류를 이루고 나머지는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로 유입되면서 쓰시마 난류를 이룬다. 신안선은 쿠로시오 해류와 해풍을 이용해 북동진한 것으로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수개월간 머물면서 계절의 변화와 함께 풍향이 바뀌길 기다리면서 다른 루트를 따라 회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닝보에서 하카타까지 직선거리로 1000㎞나 되는 바닷길을 14세기에 오갔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놀라운 항해술을 가늠할 수 있다. 바닷길은 침몰 위험만 피한다면 육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육로는 먼 길을 우회해야 하는데다 많은 인력과 우마차 등이 필요하고 파손위험이 크며 도적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남중국해를 접한 중국 해안지역은 타이완과 오키나와,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인접 섬나라와 오래전부터 뱃길을 터 자연스레 항해술이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칠형제바위 전망대에서 자전거여행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안선 약식 항로도. 붉은 선이 예정항로이고 검은 선이 난파항로(추정).
한반도와 일본 인근 해류모식도. <출처:해양수산부>

만일 흑산도·홍도·진도·증도 등 남서해 섬에 장보고의 후예와 같은 해양인들이 다수 거주했다면 신안선이 차지하는 고려무역의 비중은 당연히 컸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교역에서 우리나라가 중계무역 또는 삼각무역 기능을 수행했다면 이후 한반도의 정치경제문화는 어떻게 성장했을지 아쉽기만하다.

유배문화공원을 거닐다가 유배인 명단과 유배 이유 안내판을 살펴보는데 정약전의 죄목이 ‘사학 죄인’이다.

‘사학이라…’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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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ljk 2018-03-14 10:24:28
흑산도의 역사적 내용을 알게되네요.
자전거가 기동성과 접근성이 탁월한것 같군요.
좋은 기행입니다.

BWS 2018-03-12 10:51:01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기를 보다가...갑자기 왜 국내역사 이야기지....하며 봤는데....
자전거 타고 다니시면서 역사문화여행기도 쓰고 계시군요~
2002년 월드컵 국내 첫경기보고서 다음날 제대했는데 이후 자전거 타고 국내 여행다녔었는데 그때 생각나네요~ ^^*

Jerry 2018-03-12 00:06:28
이젠 '자전거 여행가' 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네요. 그리고 놀랍기도 합니다. 그 먼곳들을 어떻게 완주하시는지 ! 즐거운 여행이 계속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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