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일 시론》 박원순의 마지막 선택
    《김두일 시론》 박원순의 마지막 선택
    • 정문영 기자
    • 승인 2020.08.12 15:10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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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일 시론》 박원순의 마지막 선택
    - 김두일 차이나랩 대표(한중 IP 전문가, '검찰개혁과 조국대전'의 작가)

    칼럼니스트 김두일 대표는 12일 '박원순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칼럼에서
    〈칼럼니스트 김두일 대표는 12일 '박원순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칼럼에서 "‘모두 안녕’이라는 그의 마지막 인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그의 체념이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진=SBS/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1.
    다시 故 박원순 시장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이야기다. 박원순은 그냥 성추행 피의자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무책임한 서울시장으로 기억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말도 안되는 누명을 썼다는 대부분의 정황이 나왔으니, “왜 그런 마지막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것이 남았다. 여전히 박원순의 마지막 선택 때문에 ‘유죄’를 확신하는 혹은 유죄를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
    우선 지금까지의 사실관계를 한번 정리해 보자.

    첫째, 박원순이 고소인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도리어 〈업무인수보고서〉 등을 보면 고소인은 박원순 시장에게 존경심을 담고 있었고,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으며, 인사 이동도 변호사의 주장과는 달리 비서실에 근무하기를 원했다. 박원순 시장이 강제로 고소인을 비서실에 근무하도록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둘째, 청와대와 서울시의 권력형 비리(고소 사실 유포 등)도 사실이 아니다. 서울시의 동료들에게는 고소인의 주장을 뒤받침해줄 수 있는 조금의 진술도 없고, 그 반대의 증언만 나오는 중이다.

    셋째, 김재련 변호사는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도했고, 고소인의 어머니는 교회를 통해 고소인의 경찰 1차 조서를 유포했다. 이 부분에서는 '이 사건이 기획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도록 만든다.

    3.
    넷째, 고소인은 4월 14일 회식 (정확하게는 공식 회식도 아닌 그저 친한 동료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서울시 비서실에 근무하던 모 공무원과 여관에 갔고, 다음 날 함께 투숙했던 공무원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발부 되지는 않았다. 해당 남성 공무원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을 했을 것이니, 법원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확보하고 확인하는 것이 CCTV다. 최소한 투숙하는 과정에서의 강제성 혹은 얼마나 만취상태에서 본인 의사에 무관 했는지에 대한 1차 확인은 가능하다. 객실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서로 주장이 다르다면 여기서부터는 다툼의 영역이다.

    4.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난을 당하기 딱 좋은 네번째 사실관계를 내가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고소인이 김재련의 꼬임에 넘어가 박원순 시장을 대상으로 고소하게 된 심리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단히 민감한 서울시에서는 관련 공무원은 ‘직위해제’했다. 직위해제가 이뤄진 시점은 해당 경찰서에서 '피고발인에 대한 수사개시 통보를 알려온 직후였다. 한편 고소인은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근무조정 등을 안배했다. 서울시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절차대로 한 것이다.

    고소고발이 발생했다고 바로 ‘직위해제’를 조치하는 일반 기업은 없다. 정경심 교수의 개인자산 관리인이었던 김경록은 수십 번 검찰조사를 받고 나중에 피의자가 되어 재판까지 받았지만 자신의 회사에서의 신분은 유지가 되었다.

    5.
    하지만 고소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심리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고소인이 박원순 시장을 고소한 이유는 첫째는 ‘원망’이라는 본인의 감정에서 비롯되었고, 둘째는 ‘그래야 여론의 주목을 받아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는 김재련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고 추측한다.

    영화 〈더 헌트〉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평생 살아오면서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는 유치원 (남)교사가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리게 되는 내용이다.

    클라라라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는 유치원 교사 루카스를 매우 좋아했는데, 어느날 루카스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는 것에 화가 나서 유치원 원장에게 거짓말을 하고 루카스는 아동 성추행범의 누명을 쓴다.

    6.
    나는 박원순을 고소한 고소인의 심리상태가 〈더 헌트〉의 유치원 소녀 클라라와 유사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릇된 정의감으로 범죄를 단정짓고 일을 확대한 유치원 (여)원장이 김재련 옆에 있던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여성의전화 같은 여성단체들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단체들은 '확증편향에 의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고인에 대한 집단적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더 헌트〉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여러가지 증언들과 고소인의 인수인계서에 따르면, 고소인은 박원순 시장 비서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이는 여성 비서들 입장에서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인품이나 개인적 호감, 업무적 능력에 대한 존경심이라기 보다는 평소 남다른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성평등(사실은 여성우대에 가까운) 정책적 실현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7.
    그런 가운데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고발)까지 했는데 가해자가 구속을 당하지도 않고 회사에서 즉각적인 해임이나 면직도 아닌 '직위해제'라는 것에 화가 났을 것이다.

    ‘여성이 불쾌하다 느끼면 성추행이다’라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박원순 시장이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까지 했는데, 그러면 즉각 나서서 자신의 억울함을 대대적으로 해소해주기 위해 나설 것이라 믿었는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것이 박 시장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의 감정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더 헌트〉는 최근 조국 전 장관이 추천한 영화인데 꼭 보시라. 조국 장관이 함께 추천한 〈밤쉘〉은 훌륭한 배우들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가 매우 떨어진다면, 〈더 헌트〉는 유럽영화인데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또한 주연인 매즈 미켈슨의 연기는 그야말로 후덜덜 하다.

    8.
    고소인은 서울시에서 알선한 심리치료를 받다가 그곳에서 김재련 변호사를 소개 받고, 그들은 5월 12일에 처음 만났고, 두번째 만난 것은 5월 26일이다. 그리고 김재련은 5월 27일부터 법률적 검토에 착수했다. 나는 그 2주 동안 김재련이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관심이 매우 많다.

    특히 김재련과 고소인의 엄마가 그 기간에 만났는지가 궁금하다. 고소인이 고소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 엄마의 설득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추측을 하게 된 계기는 경찰조서의 유출이 엄마를 통한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련은 목사만 고소했기 때문이다.

    9.
    박원순 시장 실종 당일 몇몇 언론들은 이미 고소인과 '인터뷰를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것도 사실관계가 밝혀지기를 바란다. 김재련의 남편이 YTN 기획조정실장 출신이기 때문에 언론들과 어떤 교감을 하고 있었는지가 나는 궁금하다.

    즉, 현재까지 밝혀진 팩트와 그것을 기반으로 몇몇 추측을 해보면 '박원순 시장은 기획된 거짓 미투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10.
    자, 그렇다면 왜 박원순 시장은 본인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는지에 대한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여전히 박원순을 공격하는 근거가 바로 박원순이 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박원순이 마지막 남긴 글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담담해 보인다. 심지어 자신을 그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간 해당 고소인에 대한 ‘미안함’ 혹은 ‘억울함’에 대한 감정이 전혀 표출되지 않았다.

    나는 ‘모두 안녕’이라는 마지막 문구가 결국은 회한과 체념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11.
    박원순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는데, 박원순 시장의 경우 시장이 되기 전 커리어의 핵심으로는 시민사회 운동과 여성인권 운동이 있었고, 정치에 영역에 들어온 후에는 시정 활동과 역시 여성인권 운동이었다. 그는 소문난 워커홀릭이었고, 감수성도 대단히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3선의 서울시장인 박원순은 당연히 정치인이고, 서울시장 이후의 대통령이라는 최종 단계의 정치적 목표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최대치로 끌어올린 여성인권 운동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자리잡은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서울시에서는 성폭력예방, 치료, 성인지 감수성 등에 많은 예산지원을 하고 있고, 이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두 가지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12.
    하지만 박원순의 삶은 고소인의 (거짓) 고소로 무너졌다.

    서울시장이자 대선 후보인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성추행 고소의 경우, 사실 유무를 떠나 수사과정에서 물고 뜯는 언론들을 통해 자신의 모든 정치적 기반이 무너지고, 자신이 평생 일궈온 명예가 무너진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거짓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목표가 있거나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경우다.

    조국은 '검찰개혁'이라는 일생의 목표와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확실한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 모욕을 견딜 수 있었는데, 박원순에게는 두 가지 모두 없었다고 생각한다.

    13.
    자신의 정치적 기반은 성추행 고소로 완벽하게 무너졌고, 이는 자신이 평생토록 지켜온 가치마저 무너뜨렸다.
    이미 좋은 시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후의 정치적 행보도 완전히 끝났다. 즉, 그에게는 싸워야 할 목표가 없는 것이다.

    또한 워커홀릭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정적일 수 없다. 그가 변호사 출신에 위대한 시민 활동가였고 3선의 서울시장이지만, 그는 가족들에게 재산은커녕 8억원의 빚만 남기고 갔다. 즉, 그는 가족보다 자신의 일이 우선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컸을 것이다.

    즉, 박원순은 힘든 싸움을 하면서 모욕을 감수해야 할 의지의 원동력이 부족했다. 때문에 조국에 비교하기보다 노회찬에 비교해야 했다. 노회찬도 자신의 일평생 가치가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로 무너지는 순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것처럼 말이다.

    14.
    법리적 다툼에 해당하는 성추행과는 달리 성희롱의 경우는 더욱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그 당시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기분이 나쁘다”면 성희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상한 성인지 감수성이 만들어지고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은 다름아닌 박원순이다.

    박원순은 자신이 서울시에 적용한 성인지 감수성에 의하면 (고소인 주장의 사실유무와는 무관하게) '성희롱을 했다'는 오점을 뒤집어 쓸 수 있는 유력한 상황이었다. 설령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런 혐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박원순의 인생은 끝이 난 것이다. 영화 〈더 헌트〉에서도 비슷했다. 인간의 확증편향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만든 도구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진 기요틴(Guillotine: 단두대)이 생각났다.

    15.
    최근 성인지 감수성은 일반기업에서도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모 회사의 광고를 제작하는 부서에서 다양한 광고 영상들을 보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성 모델을 소재로 한 광고 컨셉인데, 이때 영상들을 보면서 ‘섹시한 여성’과 ‘참한 여성’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해당 회의를 주재한 팀장은 그 회의에 참석한 누군가에게 익명으로 '성희롱 제소'를 당했다. 그리고 바로 인사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요즘 일정 규모를 갖춘 회사들이 무조건 해야 하는 절차이다.

    16.
    인사위원회에서는 해당 사안은 ‘성희롱은 아니다’고 판단 내렸다. 하지만 제소당한 그 팀장에게는 사과를 권고했고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제보자를 대상으로, 정확하게는 그 회의에 참석한 모두를 대상으로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에 대한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팀장은 앞으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치 않게 펜스룰만 강화될 뿐이다.

    이는 실제 어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박원순 시장의 경우도 성추행이라는 법적 다툼에서는 무죄가 된다 하더라도 이미 만신창이가 되겠지만, 성희롱과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다.

    17.
    또한 박원순 시장은 자신을 공격한 대상 중에 여성단체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특히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이 나온 것은 평생의 동지에게 배신을 당하는 수준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박원순 시장, 이미경 소장, 임순영 서울시젠더특보 등은 성폭력예방 운동을 위한 오랜 동지적 관계였다. 아마 서울시에서는 해당 기관들에 많은 지원도 했을 것이고 심지어 임순영 젠더특보도 한국성폭력상담소 출신이다.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조-중-동〉과 〈한-경-오〉 중 어디가 더 큰 책임이 있을까? 나는 전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원순 시장에게 치명적 비수를 꽂은 사람은 김재련이 아니라 고소인과 여성단체들이다.

    18.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박원순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다. 또한 민주개혁진영의 분열을 걱정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미래를 잃어 버렸고, 평생 지켜온 과거의 가치가 무너졌으며, 여기에 믿었던 오랜 동지들이 등 뒤에 칼을 꽂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함께한 동지들을 잃어 버린 사람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다. 박원순처럼 지고지순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때문에 나는 그의 죽음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모두 안녕’이라는 그의 마지막 인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그의 체념이었던 것이다.

    〈김두일 칼럼니스트는 12일
    〈김두일 칼럼니스트는 12일 "나는 박원순을 고소한 고소인의 심리상태가 영화 '더 헌트'의 유치원 소녀 클라라와 유사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사진=영화 '더헌트(The Hunt: 2012)'/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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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혁신 2020-08-16 11:58:37
    그러게요. 이렇게 가실 분이 아닌데....

    조영훈 2020-08-13 03:22:20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김수정 2020-08-13 02:52:38
    백프로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일반의 상식과 감성과 판단력이 있는 이들은 충분히 안지했을 정황들일겁니다. 보기드문 고결한 한 분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잃었습니다.. 제 안에 화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무고한 고인의 명예는 반드시 회복되어야합니다.

    어흥어흥어흥 2020-08-12 22:22:05
    아. .진심 공감됩니다. 슬프구요. 우리 시장님을 이리 허망하게 보내니 모두가 원망스럽네요. 온라인 생방을 따라붙으며 늘 느꼈지만 참 남한테 안좋은 말 못하고 화낼 줄 모르는 선비같은 분이셨어요. 저런 분이 정치를 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희망도 사라졌어요 ㅠㅠ

    모든아이엄마 2020-08-12 22:14:39
    우리 이시대 최고의 영웅을 잃었다 역사에 큰 손실일것이다. 대한민국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곳이 없다 우리 시민들의 희망이었다 고소인이 당당하게 나오지 않는 미투는 언론에서 더이상 다루지 마라 언론도 똑같은 죽음의 동조자들이다 고박원순시장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희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