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4.16] 반드시 알아야 할 슬픈 대한민국의 모습
[숨쉬는 4.16] 반드시 알아야 할 슬픈 대한민국의 모습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굿모닝충청 세월호 공동기획 ‘숨쉬는 4.16’ (16)노은역의 노란 희망 김재진 씨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7.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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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슬픈 대한민국에 눈을 뜨다
김재진씨는 스토리밥이 만났던 봉제 오브제 ‘우리들의 꿈’ 바느질 작가 박민선씨의 남편이다.

작년부터 육아휴직을 해 아이들을 돌보며, 세월호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김재진씨. 그는 세월호를 통해 ‘슬픈 대한민국’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을 다니며,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고공 농성을 하시는 분들도 그렇고,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싸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거에요.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월호 뿐만 아니라 각종 투쟁과 연대의 현장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2015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모두가 알아야겠구나 싶었죠. 우리가 평생 모르려면 모를 수 있는 일들이거든요. 나의 무관심이 저들을 벼랑으로 몰았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올 해 ‘반드시 알아야할 슬픈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를 당한 아이들과 슬퍼하는 모든 분들에게 바치는 책이에요.”

2016년 4월, 노은역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
책을 쓴 이후 김재진씨는 마음에 계속 담아두었던 활동을 시작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피켓팅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노은역에서 피켓을 들고, 노란리본을 나눠준다. ‘이런 작은 행동으로 세월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알게 되고, 잊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아마도 ‘희망’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반응이 매일 다르더라고요. 요즘엔 제가 노은역에서 매일 피켓팅을 한다는 걸 아는 분들이 많아요. 인사하고 가는 아이들, 노란 리본 보여주고 가는 학생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거봐,  여기 나오면 노란 리본 받아 갈 수 있잖아.” 하며 다시 받으러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예전에는 유성 노은역 부근에서 가방에 노란 리본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고맙고 뿌듯하기도 하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의 상처
그가 거리에서 알리고 싶었던 것은 단순했다. 2014년 4월 16일, 구조만 잘 했더라면 다 살 수 있는 아이들이 죽었다는 것. 그에 맞춰 피켓도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구조 실패’의 참담함만큼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이었다.

“시비 사건이 몇 번 있었어요. 고등학생 남자 아이 둘이 노란 리본을 하나 받아갔어요. 제 할 일을 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30미터 쯤 앞에서 일부러 노란 리본을 뜯어서 버리는 거에요.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어떤 할머니께서 “나라 사정도 안 좋은데, 왜 이런 걸 하냐?”고 화를 내고 가셨어요. 정말 분노했어요. 그런데 분노 할수록 제 마음도 안 좋은 거 에요. 찜찜함이 남아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노란 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서영석 님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그 분도 세종에서 그만하라고, 시비를 거는 분들을 많이 본데요. 그럴 때마다 “그래요, 저도 지겨워 죽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진실을 밝혀주세요.”라고 말했데요. 그 순간 아, 그렇게 공감을 끌어내야 겠구나. 깨달았죠.”

냉소에서 공감으로, 분노에서 소통으로
“서영석 님의 경험을 들은 바로 다음날이었어요. 제가 노란 우산을 들고 피켓팅을 하고 있었는데,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직도 지겹게 세월호냐, 아직도 하는거냐?’며 대여섯명의 친구들과 얘기 하는 거였어요. 저보고 했던 말이었죠. 그래서 제가 고개를 돌리며 ‘그러니까요! 나도 지겨워 죽겠는데... 이거 안하고 싶은데, 아직도 밝혀진 게 없네요.어떻게 해야 되요?’ 하고 대답했어요. 순간 학생들이 멈칫하며 미안한 지 웃더라고요. 분노가 아니라 소통과 공감을 경험하고 나니까. 뭔가를 하면서도, 뒤끝이 없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죠.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잊고 살았던 내가 미안합니다.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는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교육이나 환경과 관련한 이슈 빼고는 정치에 대해 관심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며, 나의 무관심이 이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나 반성을 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잊고, 또 되새기며 미안해하고, 다시 기억하는 일. 기억을 끄집어 내는 일은 다시 일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재진씨의 작은 희망은 ‘기억’을 되살리는 일일 것이다.

“노은역 광장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갔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유성여고 앞을 가게 됐죠. 그라다 매주 금요일,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춰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게 됐어요. 지금도 보면 유성여고 학생들은 노란 리본을 많이 달고 있어요. 이걸 보면서 작은 바람이 생겼어요. 유성여고 아이들한테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작은 일이지만, 유성여고의 많은 학생이 노란 리본을 달고 기억하는 것들이랄까. 제 블로그에 세월호 활동에 대한 일상을 올리곤 하는데요. 우연히 유성여고 학생들이 들어와 댓글을 단 거에요. ‘노란 리본 볼 때마다 잊고 살았던 내가 미안합니다.’라는 글도 있었고요. ‘이렇게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댓글, ‘음료수 드리려고 왔다가 못 뵈서 미안하다’는 댓글들까지... 이런 게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교사의 눈으로 본 세월호, 아픔의 깊이
누구나 12년을 학교를 다닌다. 학교와 교실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교사들에게는 아이들과 삶을 공유하는 소중한 일터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재진씨가 단원고 교실에서 느꼈던 것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의 세포들. 아이들의 삶. 그 모든 것이었다고 한다.

“2014년 12월에 단원고 교실을 갔어요. 광화문, 팽목항, 분향소에 다 다녀왔는데요. 단원고 교실은 너무 슬픈 거에요. 아이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고, 그냥 온 몸의 세포로 쫙 들어오는 거에요. 세월호의 모든 게. 저에게는 학교, 교실이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책상 하나하나 교실 한 걸음 한 걸음, 아이들의 손길이 느껴졌죠. 단원고 교실을 가보니, 별이 된 아이들의 책상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고, 생존했던 아이들의 책상만 깨끗했어요. 근데 어떤 교실은 깨끗한 책상이 하나 밖에 없는 거에요. 어디에는 서 너개 있고. 이 아이들은 살아있다고 할 수 없겠구나. 그 많은 친구가 별이 됐는데, 얘네가 살아 있는 걸까? 하는 게 와 닿았어요. 교사 입장에서 볼 때, 평소엔 물론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를 때도 있어요. 30명 넘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지지고 볶는다고 해도 사건이 났으면, 얘들은 내 자식보다 소중한 내 자식인 거 에요. 그래서 사건이 났으면 교사는 절대 배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내가 아이들이랑 수학여행을 갔는데 사고가 났으면,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옆 반에 얼굴이라도 아는 아이들까지 다 살리지 않으면 교사도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인 거에요. 그런데 그게 그냥 죽은 게 아니잖아요. 다 살 수 있는 아이들을 죽은 거니까. 나라도 죽을 거였구나.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죠.”

홀로에서 함께로, 보이지 않는 연대로
김재진씨는 복직을 앞두고 있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는 앞으로 세월호 행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한다. 뿐 만 아니라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꿈을 다시 키우겠노라 다짐했단다. 슬픈 대한민국에서 꿈틀거리며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 제 생각도 많이 바뀌었어요. 물론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죠. 생각을 마비시키고 감수성을 마비시키는 시스템이었으니까. 이전에는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없으니 우리 반 아이들만이라도 생각을 하는 아이로 만들자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제는 혼자 하지 말고 함께 꿈틀거리자 생각했죠. 서로 다른 곳에서 세월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이구나, 공동체구나 싶기도 해요. 이젠 다시 꿈꿔요. 함께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요.”

김재진씨의 집 앞에는 ‘상상하우스’라는 명패가 달려있다. 집의 별칭인 듯 하다. 김재진씨의 상상하우스엔 무엇이 담겨있을까? 세월호의 아픔, 아픔을 승화하는 행동과 연대, 그리고 진실에 맞서 꿈틀거리며 ‘함께’ 사는 사람들. 앞으로 그의 상상하우스에 담길, 무한한 가치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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