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문화산책]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 1
[정진명의 문화산책]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 1
활터는 5천 년의 풍속이 살아 숨 쉬는 곳…전통문화의 유기성이 살아있는 ‘편사’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0.09.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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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활쏘기의 유기성이 살아있는 인천편사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전통활쏘기의 유기성이 살아있는 인천편사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이 전통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활쏘기를 하는 전국의 2만여 국궁인에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법과 사풍 등의 활쏘기가 오천년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전통활쏘기를 연구하고 계승해 가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온깍지활쏘기학교’ 정진명 교두의 활쏘기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 등을 연재한다. 지난회 ‘국궁계의 가짜 뉴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1’이 이어진다./편집자 주 

[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1000년을 이어온 풍속이 끊긴다는 것은 그 분야에 안타까운 일로 그치지 않고 겨레 전체의 문화손실로 이어진다. 고려청자의 비법이 끊긴 것이나, 조선백자의 그 순백을 그대로 살리지 못하는 현실은, 전통이 끊길 때 생기는 결과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준다. 

활터는 5천 년의 풍속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불과 100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그전까지 수천 년을 이어오던 풍속이 사라져간다. 벌써 사라진 풍속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제 목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것들만큼은 우리가 어떻게든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사라진 활 풍속과 사라지기 직전에 놓인 풍속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활쏘기는 조선 시대의 지배층이던 양반과 피지배층인 일반 백성이 모두 즐긴 풍속이다. 따라서 양반과 백성이 즐긴 활쏘기 방식이 달리 전해왔다. 양반들은 ‘편사’를 통해서, 백성들은 ‘활 백일장’을 통해서, 각기 자신들만의 활쏘기를 즐겼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끊길 위기에 처해서 특별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10년 내에 끊길 풍속이기에 이 순간 더욱 절실하고 속이 탄다. 먼저 편사부터 살펴본다.

편사는 양반들이 하던 활쏘기 풍속이다. 말 그대로 편을 갈라서 시합을 하는 것으로, 원래는 엄격한 격식이 있었는데, 그런 풍경은 『조선의 궁술』(1929)에 마지막으로 묘사되었고, 현재는 원형이 많이 바뀐 채로 인천 지역에 전해온다. 그래서 통상 국궁계에서는 ‘인천편사’라고 부른다. 

편사는 원래 15명을 편사원으로 꾸려서 3순 경기를 치러 승부를 판가름하는 활쏘기 경기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해방 전후 무렵에는 활터가 5군데(황학정, 석호정, 청룡정, 서호정, 일가정) 있었기 때문에 각 활터에서 15명을 뽑아서 날을 잡아 경기를 치른다. 그 과정이나 격식은 매우 엄해서 선단을 보내고 받고 하여, 옛날 모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승부를 다투는 경기이지만 예절이 엄격해서 양반사회의 체면치레와 승부 짓는 경기가 지니는 삼엄한 긴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경기방식이다. 이 편사는 해방 후 1960년대까지 서울에서 치러졌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엄하던 것이 인천 지역으로 오면서 1970년대부터는 두 정이 서로 교류전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참가 인원인 편사원도 15인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양쪽 활터에서 협의하여 정하고, 그날 경비를 부담하는 편장들이 주로 회갑을 맞이하여 환갑잔치처럼 치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엄격한 대결보다는 잔치를 즐기는 성격이 더 짙어 화기애애하다.

이 편사가 소중한 까닭은, 활쏘기가 단순히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 유지되던 ‘전통문화의 유기성’이 아직 고스란히 유지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화 이후 이렇게 전통문화의 유기성이 잘 보존된 경우는, 잘라 말하건대, 없다. 오직 활터만이 아직도 전통문화의 모든 영역이 참여하여 위대한 오케스트라를 이룬다. 

편사에 꼭 필요한 것이 음악이고, 춤이고, 붓글씨이다. 활쏘기는 당연한 조건이다. 활쏘기라는 조건 위에서 전통 사회에서 꼭 필요한 한국무용과 서예와 한국 춤이 활터에서 한데 어우러진다. 활쏘기에서 활량이 활을 쏘아서 과녁을 맞히면 무겁(과녁이 놓인 곳)에서는 작은 깃발(소기)과 5미터짜리 거대한 깃발(거기)이 빙글빙글 태극 모양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러면 그것을 본 한량이 획창을 하고, 그 한량획창을 받아 소리꾼이 기생획창을 한다. 3중을 하면 홑지화자를 하고, 4중을 하면 겹지화자를 하며, 5중 몰기를 하면 세 겹 지화자를 하여 한껏 흥취를 북돋운다. 이렇게 활쏘기 한 순이 끝나면 모든 참석자가 한 데 어울려 덩실덩실 춤춘다. 

인천편사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인천편사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이 신기한 풍속은 불과 몇 년 전까지 인천 지역에서 봄철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활터는 급속도로 변했다. 과녁 맞히는 것 하나만 달랑 남고나니, 이런 전통 풍속에 관심을 기울이기는커녕 구시대의 유습으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게다가 이것은 온 동네를 동원하는 잔치이기 때문에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그날의 먹을거리며 기공들에게 돌아가는 모든 행사 비용을 ‘편장’이 댄다. 2002년에 온깍지궁사회에서 현장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 1500〜2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이러다 보니 편장을 나설 사람이 점차 사라져 이제는 몇 년에 한 번 편사가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 

굳이 이런 큰 돈을 들여서 보릿고개를 맞는 봄에 행사를 치르는 것은,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먹이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최근의 한 연구로 밝혀져(박순선), 활쏘기가 빈민을 구제하는 지역 사회 유지들의 배려와 맞물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편장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 닥치자 1000년을 이어온 인천 편사는 정말로 끊길 위기에 놓였다. 인천 편사의 전 과정을 연출하고 공연해온 기공들이 인천 지역에는 몇 명 아직도 활동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사)인천전통편사놀이보존회(이사장 여영애)’를 구성하여 인천 편사를 보존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지만, 편사 환경은 날이 갈수록 어렵다. 

전통 음악이 활터에서 이루어진다는 얘기에서 쉬게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인천 지역의 편사에서 쓰이는 음악은 ‘경기소리’이다. 편사 내내 온종일 경기민요가 활터에 가득 울려 퍼진다. 하지만 한국 전통 음악은 경기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도소리’도 있다. 당연히 활터 음악에는 남도창으로 하는 갈래도 있다. 남도창으로 하는 것을 호중(呼中)이라고 하는데, 서울 경기지역에서 말하는 획창(獲唱)이 지방으로 가면서 음운 변화를 일으켜 나중에는 뜻까지 약간 변한 것이다. 

남도창으로 하는 활터 음악은 2003년도에 곡성에서 온깍지궁사회 모임을 할 때 윤준혁 사수의 제안으로 사수 취임식 때 시행한 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경기민요로 하는 인천 지역의 획창과는 여러 가지로 맛이 달랐다. 이후 내내 이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없다가 온깍지활쏘기학교 동문의 모임인 ‘온깍지동문회’가 주최한 대회에서 몇 차례 호중을 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온깍지학교 교두인 정진명이 충북예술고 교사로 부임하면서 그 학교의 국악 전공 학생들에게 이 호중을 가르친 결과이다. 남도소리로 하는 호중을 아직 기억하는 분(박문규)을 찾아가서 학생들이 소리를 직접 배워 끊길 뻔한 남도소리 호중을 아슬아슬하게 이을 수 있었다. 현재는 이들을 중심으로 ‘활터음악계승회’(회장 김은빈)를 꾸려서 온깍지동문회에서 주관하는 각종 대회에서 여건이 될 때마다 ‘온깍지 편사’를 시행한다. 온깍지 편사에서 젊은 국악인들의 호중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천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이것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인천 편사도 온깍지 편사도 거기에 참여하는 극소수의 활량들 빼고서는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활터는 과녁 맞히기에 빨려들어 그것 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활터가 사격장으로 변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사격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는 사막 같은 활터에서 1000년을 이어온 풍속들이 시시각각 사라질 순간을 향해 떠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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