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문화산책]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 2
[정진명의 문화산책]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 2
활터의 공동체 의식이 녹아든 획창과 한량놀음…“김 활량, 일시이 과안중이요~”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0.09.10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활쏘기 편사대회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활쏘기 편사대회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이 전통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활쏘기를 하는 전국의 2만여 국궁인에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법과 사풍 등의 활쏘기가 오천년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전통활쏘기를 연구하고 계승해 가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온깍지활쏘기학교’ 정진명 교두의 활쏘기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 등을 연재한다. 지난회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1’에 이어 여섯 번째로 ‘끊길 위기에 놓인 활 풍속2’가 이어진다./편집자 주 

[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이번에는 ‘한량놀음’에 대해서 알아본다. 이 한량놀음은, ‘편사’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먼저 한량에 대해 간략히 알아본다. 한량이라는 말에는 안 좋은 어감이 깔려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 년의 역사가 지닌 말이기 때문이다. 한량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원래 이들은 조선 시대의 과거제도인 무과를 준비하는 무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문과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유학(幼學)이라고 불렀고,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한량(閑良)이라고 불렀다. 

범생이처럼 책만 파는 유학과 달리, 한량의 가장 좋은 공부방식은 사냥이었다. 활쏘기 기술을 가장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사냥이다. 이것을 잘하면 무과 응시에 유리했다. 그래서 지역마다 장학회인 사계를 두어 이들을 장려했는데, 이들이 일과가 주로 활쏘기와 사냥에 있다 보니 남들 눈에는 놀러 다니는 것으로 보이고, 조선이 망한 뒤에도 이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한량’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대회 때 앞서 편사에서 설명한 것처럼 획창을 붙였다. 즉 소리 기생이 활량들 뒤에서 대기했다가 맞았음을 알리는 창을 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한량들은 소리도 한 가락 할 줄 알아야 했고, 춤도 한 자락 출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소리꾼들과 한량들이 서로 어울려 노는 마당이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이것을 ‘활량놀음’이라고 한다. 실제로 1970년대 말까지 볼 수 있던 풍속이고, 2003년 온깍지궁사회 사수 취임식 때 잠시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 풍속이다. 이것이 ‘온깍지 편사’와 함께 되살아났다. 2015년부터 온깍지동문회 모임 때 가끔 활량놀음이 벌어진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활터 음악이 살아야 하는데, 그 문제가 충북예술고 국악 전공 학생들 모임인 ‘활터음악계승회(회장 김은빈)’ 때문에 해결된 것이다. 

한량놀음이 이루어지려면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의식이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즉 활터에서 전통 음악이 이루어지고, 전통 활쏘기를 하면서 옛사람들이 어떻게 놀았는지를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즉 전통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활터에서 이런 오래 묵은 전통이 사라진 것은, 과녁 맞히기 기능 이외의 것에 대해 당사자들이 무관심한 탓이다. 그러므로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활터의 많은 것은 점차 더 사라질 것이다.

활량놀음은 활터의 분위기를 잘 아는 소리꾼들이 활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을 말한다. 활터에서 활쏘기할 때는 반드시 획창이라는 소리를 붙였다. 1순 5시 중에서 첫 번째 화살을 맞히면 한량획창이 큰 소리로 외친다. 예컨대 과녁 맞힌 활량이 김돌쇠라면 한량획창이 “김돌쇠 벼언!”이라고 외친다. 그러면 그 뒤에 대기하던 소리기생(5명이 보통)이 창을 한다. 
“김 활량, 일시이 과안중이요.”
과안중이라고 길게 끄는 것은 ‘관중’이라는 뜻이다. 2시를 맞히면 똑같이 하되 “김 활량, 이시에도 과안 중이요.”
그런데 3시부터 지화자가 붙는다. 즉 앞은 똑같이 하되 이번에 세 번째 화살을 맞힌 것이라면 소리기생은 이렇게 부른다.
“김 활량, 삼시에도 과안 중이요.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만약에 4시도 맞혔으면 겹자화자가 붙는다.
“김 활량, 삼시에도 과안 중이요. 지화자, 지화자, 지화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만약에 5시를 맞혀 모두 관중했으면 흥취는 한결 더 높아진다.
“김 활량, 삼시에도 과안 중이요. 지화자, 지화자, 지화지화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얼씨구나 지화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지화자.”
이것이 기생획창인데, 5시 중 마지막까지 다 맞혔으므로 사대에서 물러날 때라서 그냥 그치지 않고 신나게 어울려 춤춘다. 이것을 유도하느라고 소리꾼들은 민요나 잡가를 신나게 불러서 흥을 돋운다. 특히 얼씨구 절씨구로 끝나는 구절을 한량들이 그대로 끝나게 가만두지 않고 “칠씨구 팔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지화자!”라며 꼬리를 더 붙인다. 한 바탕 더 놀아보자는 한량들이 신호이다. 그러면 주최 측에서 대회 진행을 위해 막아 나설 때까지 한바탕 신명 나는 놀이가 이어진다. 이 무렵 활량들은 과녁 맞히기로 1등하는 일보다는 이런 노는 일이 더 관심이 많았다.

활쏘기 편사대회 획창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활쏘기 편사대회 획창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이 중에서 절정이 ‘한량놀음’이다. 1시부터 4시까지 계속해서 불만 쏜(과녁을 못 맞힌 것을 가리키는 활터 용어) 활량은 마지막 화살 1대를 들고서 심판을 보는 획창한량에게 건네주면서 선호중을 신청한다. 그러면 그 화살을 받는 획창한량은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어느 고을 김 아무개 씨, 선호중이요.”
그러면 활터가 부산스러워진다. 선호중을 선언한 획창한량이 그 화살을 행수기생에게 넘겨주면 행수기생은 그 화살을 쪽머리에 비녀처럼 꽂는다. 그리고는 이 한량이 몰기(5시를 다 맞히는 일을 가리키는 활터 용어)를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한바탕 호중을 해준다. 
“김 활량, 삼시에도 과안 중이요. 지화자, 지화자, 지화지화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얼씨구나 지화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지화자.”
잘 쏴보라고 기운을 북돋아 준 것이다. 그런 뒤에 쪽머리에 꽂힌 화살을 빼어 임자에게 돌려준다. 화살을 돌려받은 활량은 그것을 마지막 화살을 쏜다. 그렇게 하여 날아간 화살이 과녁을 맞히면 다시 한 번 세겹지화자를 부르며 흥취를 돋우어 논다. 하지만 그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벌칙이 가해진다. 벌칙은 못 맞힌 활량을 엎어놓고 전통(5발들이)으로 기생이 한량의 허벅지를 5대 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를 때리듯이 하면 재미없으니까 또 장난을 친다. 즉 한량의 허벅지를 한 대씩 때릴 때마다 춘향가에 나오는 집장가를 부르며 때리는 것이다. 

‘집장가’는 경기민요에도 있고, 판소리 춘향가에도 있다. 경기민요에서는 십장가라고 하고 판소리 춘향가에서는 집장가라고 한다. 춘향이가 사또의 명을 거역하여 옥에 갇혔다가 곤장을 맞는 장면이다. 한 대씩 맞으며 그에 대한 풀이를 노래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활터에 와서 이렇게 놀이로 응용된 것이다. 

활터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해방 전후에 집궁한 노인들만 아는 풍속인데, 온깍지동문회에서 이런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서 활터음악계승회의 젊은 소리꾼들과 함께 시간 날 때마다 시연하며 맥을 이어간다. 이렇게 해보면 과녁만 마주 보고 맞히기에만 몰두할 때와 또 다른 풍류가 느껴진다. 이런 여유가 활터를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한 원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