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치유의 길…천주교 순례길3] 홍성 도심 속 순교터
[충남 치유의 길…천주교 순례길3] 홍성 도심 속 순교터
홍주성지 순례길 2.1km 구간
  • 이종현 기자
  • 승인 2021.07.06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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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치유와 힐링이 되길 기대하며 충남도내 불교와 천주교 순례길 15구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홍주감옥.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감옥.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조선 후기 많은 사람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천주교인들의 처형은 충남으로 이어졌다. 홍성군도 예외는 아니다.

순교자가 가장 많았던 홍주성지 순례길에는 6곳의 순교 터가 존재한다.

지난 1일 홍성군청 앞에 내포 천주교순례길 5코스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걸어보았다. 시간상으로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목사의 동헌.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목사의 동헌.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신앙 증거터(목사의 동헌)

첫 번째 장소는 조선 시대 홍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동헌(근민당)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과 문초를 받았다.

홍주목의 정문이었던 홍주아문과 아름드리 오관리 느티나무, 홍성군청을 지나면 조선시대 동헌이었던 안회당을 만날 수 있다.

안회당 앞에는 물 위 정자 여하정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즈넉한 풍경 한편에는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목사의 동헌.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목사의 동헌.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안회당과 여하정 사이 ‘신앙 증거 터’라고 적힌 비석에 눈길이 끌린다.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끊임없이 가해지는 곤장과 주뢰형을 신앙으로 극복했다. 순교한 신자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순교터(홍주감옥)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재현되어 있다.

홍주감옥.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감옥.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감옥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가두는 시설로, 조선시대에는 담장을 둥그렇게 둘러 원옥(圓獄)이라고 불렸다.

1872년 제작된 홍주 지도를 통해 원형 담장 안에 옥사 1개 동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이에 홍주읍성 내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되던 2012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됐다.

홍주감옥 앞 원시장 베드로 동사 장면과 교수형 모습이 그려진 동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감옥 앞 원시장 베드로 동사 장면과 교수형 모습이 그려진 동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우물이 먼저 보인다.

충청도 최초의 순교자인 원시장 베드로가 동사로 순교한 곳으로 알려졌다. 원시장 베드로의 동사 장면과 교수형을 새긴 동판도 보인다.

홍주감옥은 천주교 박해 기간 희생자 212명 중 113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으로, 이곳에서 교수형이 많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무명의 순교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약 1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홍주감옥 내부 모습.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감옥 내부 모습.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감옥 안으로 가봤다. 옥사와 형구가 놓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감옥 터의 상황이 재현돼 있다. 굶주림과 목마름, 질병, 괴롭힘 등 순교자들의 옥중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잔인했던 처형장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어 소름이 끼쳤다.

홍주성지성당 내부 모습.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성당 내부 모습.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성당과 동헌

홍주감옥 건너편에는 홍주성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 앞 골목을 따라 시내 쪽으로 걷다 보면 홍주읍성 4대문 중 동문인 조양문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앞에는 진영장의 동헌이라고 적힌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진영장의 동헌.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진영장의 동헌.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과거 홍주 진영의 동헌이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과 박해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곳이라고 한다.

집단 구타를 재현한 동판이 그 당시의 처참함을 실감케 한다.

조양문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증인이라도 되는 듯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양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조양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저잣거리

골목을 따라 약 2분 정도 걷다 보면 옛 저잣거리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은 조선시대 홍주성 안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잦고 번화했던 장소였다. 한편으론 천주교 신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저잣거리 전경.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저잣거리 전경.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전국 각처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 대부분은 이곳을 거쳐 목사나 동헌으로 끌려가거나 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저잣거리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욕설, 돌팔매질 등의 무수한 조롱을 당했다고 한다.

적막감과 경건함이 온몸을 감싼 기분이 들었다.

저잣거리를 알리는 비석과 동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저잣거리를 알리는 비석과 동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참수터

저잣거리에서 길을 건너 10분 정도 걷다 보면 홍주읍성 북문이 보인다

이어 월계천 위로 나 있는 북문교를 건너면 순례길 이정표가 보인다. 도심과 숲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햇볕이 뜨거워 나무들 사이로 들어갔다. 참수터와 생매장터가 나온다니 그늘 아래가 왠지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참수터로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참수터로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참수터는 백정 출신의 황일광 시몬이 참수형을 당한 곳이다. 병인박해 당시에는 유 마르타가 참수형을 받았다.

참수형은 도끼나 검, 단도 등으로 목을 베는 형벌이다. 지금은 금기하고 있는 형벌이지만 당시에도 최고의 처형 방법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고결한 피를 흘리면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참수터 모습.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참수터 모습.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생매장터

참수터를 지나 백월교에 다다르면 대교공원이 나온다.

생매장터로 가는 길목에는 충청도 첫 순교자인 원시장 베드로와 교리를 배워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던 박취득 라우렌시오, 백정 신분으로 천주교 신앙을 실천했던 황일광 시몬, 감사의 비장을 지냈던 방 프란치스코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이들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을 받았다.

홍주성지 생매장터로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 생매장터로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순례길은 천변을 따라 호젓하게 이어져 십자가의 길에 다다른다. 총 14개의 조각과 기도문이 적혀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생매장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홍주성지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병인방해 때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수용할 곳이 마땅치 않자 이곳에 생매장했다고 한다.

당시 정경을 그려낸 동판은 보니 가슴이 아리다.

현재는 평온함마저 감도는 일상 속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형벌이 행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월계천은 그날의 아픔을 다 잊었다는 듯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홍주성지 생매장터임을 알리는 비석.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 생매장터임을 알리는 비석.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참수와 생매장을 당해야 했던 시대가 원망스럽다. 다시는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순교터 6곳은 모두 가까운 거리를 두고 있어 순서와 상관없이 반대로 둘러봐도 좋다.

천천히 걷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며 오늘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주성지 생매장터.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 생매장터.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홍주성지는 다른 성지와 큰 차이점이 있다.

성지는 보통 산속 조용한 곳에 있다. 반면 홍주성지는 도심 속에 있다. 순교 정신을 일상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져갈 수 있다.

이곳을 걸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길 바란다.

※ [충남 치유의 길]은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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