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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나무와 호흡하는 장인(69) 대전시 무형문화재 방대근 소목장을 찾아서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12.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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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대전시 중구 어남동 신채호 생가의 뒤편에는 50여 년 동안 소목장의 길을 걸어온 대전시 인간문화재 방대근 씨의 작업장이 있다. 이곳에 정착한지도 어느새 이십 여 년. 작업장에 들어서면 나무를 다듬는 오래된 연장들이 그가 걸어온 세월을 보여주고 있다.


    소목장은 건물의 문, 창문 등과 더불어 장롱, 궤, 경대, 책상, 문갑 등 목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기능을 가진 목수를 말한다. 목가구는 일상생활 용품으로 각 지역별 특성을 뚜렷하게 반영하여 실용적으로 제작,생산 되었다. 조선 전기까지의 목가구는 주로 왕실, 상류계층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조선 후기의 목가구는 민간에게 널리 보급되고 종류가 다양해져 자급자족에 따른 지역적인 특성이 현저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월정 방대근 전통공예연구소의 홈페이지에는 방대근 소목장이 작업하는 충청지역 목가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충청지역의 목가구는 간결하고 소박한 맛이 깃들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원목을 사용하여 목재가 가지는 나뭇결을 최대한 살려서 자연미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목가구는 한국의 자연환경과 생활양식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한국 미술품 중 하나로 꼽는다. 소박하면서 견고한 한국의 전통 목가구는 오래두고 봐도 싫증나지 않으면서 쓰면 쓸수록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은근한 멋이 깃드는 매력이 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7호 소목장 보유자 방대근은 전통연장과 전통 짜임기법을 활용해 조상의 전통을 이어가며 우리 지역의 특징이 담긴 목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나무와의 인연
    "1968년부터 부친과 친분이 있던 권세병 선생 밑에서 3년 4개월간 보수도 없이 소목 연장 한 벌 받는다는 조건으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참 어렵게 배웠어요“

    그때 나이 17살때였다. 1972년에 전수가 끝나고 서울로 상경했다. 큰 공예사에서 일을 했다. 기계를 활용해 작업하는 시스템이어서 규모가 달랐다. 70년 대 후반에는 독립해 공방을 운영했다. 하지만 유류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1982년 대전에 정착했다. 대전에서도 여기 저기 공방을 옮겨 다니다가 지금의 어남동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 까지 그 과정을 물어보았다.

    “제재소에서 원목을 베어 들여오면 1년 정도 숙성을 시켜놓죠. 숙성을 시키는 이유는 나무 진액을 빼기 위해서인데요. 생나무로 작업을 하면 나무가 뒤틀립니다. 나무에 따라 일정한 시기동안 건조를 시키는데 4-5년 가량 되는 것도 있고 심지어 몇 십 년 간 건조된 것도 있어요”

    끝없는 인내의 연속이다. 마음이 조급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나무가 허락해야 작업을 할 수 있는 법, 그렇기 때문에 목수는 나무를 알아야 한다.

    “안방용 가구는 느티나무 중에도 용목이라고 하는 나무를 최고로 여기는데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구하기 귀한 나무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외형상 나무를 볼록볼록 한 게 있어요. 그런 나무 만나는 게 참 귀하죠”

    목가구는 크게 사랑방과 안방, 부엌가구로 나뉘는데 방대근 소목장은 그 중에서도 사랑방 가구에 가장 애착을 느끼고 있다.


    “옛날 문인들은 기교를 많이 부리지 않고 견고하고 검소하게 제작된 가구를 좋아했어요. 족자를 걸어도 한 두 점에 그쳤지요. 사랑방 가구는 옛 선비들이 사용했던 일종의 남성용 가구인데. 탁자와 문갑 등 뭐 이런 것을 많이 제작했죠”

    궁궐에 들어가다
    모든 작품들에 애정이 남아있다. 그가 만든 가구들이 여기 저기 제 자리를 찾아갔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경복궁과 운현궁에 들어갈 가구를 만들었던 때였다. 1996년도의 일이었다.

    “경복궁 궁중 재현 작업에 참여를 했는데 임금이 주무시는 평상과 반닫이, 쌀 뒤주 등을 제작했어요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널리 알려진 운현궁에도 탁자를 만들어 보냈죠. 명예로운 일이었죠 내가 만든 가구가 궁에 들어갔으니 참 영광스러웠어요”

    지난 1999년 5월 26일 소목장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방대근 씨의 호는 ‘월정(月亭)’이다. 이 호는 스승인 권세병 선생으로부터 받았는데 달밤에 정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려 작품에 매진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한 집안에 장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3대가 공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50여년 외길을 걸으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조선의 가구를 잇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제 일이 뿌듯합니다.”

    60대 중반을 넘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욕심이 많다. 소목을 배우려는 이들을 위해 전수관을 짓고 싶은 꿈이 있다.

    “제자들 양성 시키고 개인전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싶죠. 작업장에 있는 나무들을 다 쓰고 갈지 모르겠네요 허허”

    나지막한 말을 던지면서도 그의 눈은 오래 묵은 나무를 향해 있다. 느티나무 먹감나무 오동나무, 제각각의 특성을 닮아가면서 나무와 호흡하는 방대근 소목장. 그의 외길 인생이 있기에 전통가구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맞춤과 짜임의 세계에 많은 이들이 경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누군가의 서재에서, 누군가의 거실에서 기품을 자랑하며 사람과 함께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소목장 방대근이 만든 것이기에 아무리 작아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밖에 없다. 아래의 간단한 그의 이력은 나무와 연장으로 살아온 삶의 일부다.

    *숭현서원 가구 제작
    *서울 운현궁 가구제작
    *경복궁 궁중재현 가구제작
    *문화재청 가구제작
    *일본 NHK 조선목가구제작 방송출연
    *대전 무형문화재 연합회 회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and3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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