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고구려 3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고구려 3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24-고구려3’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2.23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국유사 동명왕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이렇게 설명하고 나도 뭔가 찜찜합니다. 사실과 사실 사이, 기록과 기록 사이의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을 역사학자들이 싫어하는 문학도의 상상력으로 메꾸어 보겠습니다. 저야 어차피 역사학자도 아니고, 역사물 따위는 옆눈으로 흘겨보면서 역사의 낯짝이 아니라 옆구리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으로 사는 놈팡이이니, 이참에 제 상상 속의 나라를 펼쳐 보이는 것이 저의 흠을 더 보태는 일이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공자 말씀에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데, 밑져야 본전인 저야 멍석이 깔린 김에 한바탕 살판을 놀아볼 용기를 낼 밖에요!

제가 역사의 낯짝이 아니라 옆구리라고 했는데, 이게 농담 같아도 농담이 아닙니다. 북부여에서 유화가 햇빛에 닿아 임신을 했는데, 나중에 커다란 알을 낳았습니다. 어디로 낳았는지 아십니까? 옆구리로 낳았습니다. 왜 옆구리일까요? 정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비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대로 낳은 게 아니라 옆구리로 낳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옆’은 이런 뜻입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환인의 서자(庶子)라고 한 것도 이런 뜻입니다. 혼란의 시대에는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자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법입니다. 그래서 곁눈질이 필요합니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말들은 옆을 볼 수 없습니다. 역사학자는 경주마입니다. 옆을 볼 줄 모르죠. 저는 앞에는 관심이 없고 옆만 훑어봅니다. 짐을 싣고 딸랑딸랑 따라가는 조랑말쯤 될까요? 지금도 역사의 옆구리를 열심히 훑고 있죠. 경주마이신 역사가들이 놓친 뒷목을 열심히 줍는 중입니다. 보잘것없는 우리 한국사 서술에 무슨 보탬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고……. 하하하.

중국과 한국의 고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3수입니다. 제가 동아시아사라고 하지 않고 중국과 한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을 빼놓고 싶은 까닭입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고대사에서 외부에 영향을 미칠 일이 없습니다.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기 바쁜 처지죠. 마치 쓰레기통처럼 동양 문화의 모든 찌꺼기가 켜켜이 쌓여서, 나중에 쓰레기통의 주인공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고 뒤적거리듯이 들여다보면 되는 곳이 일본사입니다. 일본이 제 나라 역사를 동양사의 우두머리에 놓고 싶어 안달하며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는 것은, 근대 일본제국주의의 망령 때문입니다. 이런 망령에 시달리다 보니 자기네 고대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려고, 학자라는 사람들이 구석기 시대의 지표인 돌도끼를 자신의 발굴 현장에다가 몰래 ‘심는’ 짓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학자들이 아무리 이런 안타까운 몸부림을 쳐도 섬에 갇힌 그들의 운명은 고대사에서 외부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일입니다. 기껏해야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의 존재로나 비칠 따름입니다. 일본학자들이 임나일본부 어쩌고 떠들어봤자, 동양의 고대사에 관해 언급할 때 일본의 존재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거론할 가치가 없고 반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의미도 없는 임나일본부를 우리가 입증한들 무슨 소득이 있습니까? 그냥 일본학자들끼리 떠들다가 말게 두면 됩니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밑밥으로나 쓸 길밖에 없는 그따위 이론에 맞장구쳐주는 일이 오히려 그들의 궤변을 정당화시켜주는 일입니다. 남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궤변을 펼칠수록 안타까운 그들의 열등감과 섬나라에 갇힌 사람들의 옹졸한 모습만 더욱 드러날 뿐입니다.

일본학자들의 연구는 조심스럽고 의심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것은, 근대 학문의 성립 초기부터 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계를 맺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야겠다는 컴컴한 생각을 뒤통수 안쪽에 깔아놓고서 모든 동양사 자료를 그딴 식으로 접근하여 해석하니,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제가 보고 싶은 것만 계속 되풀이하여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떠들다가 있지도 않은 종이호랑이까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게 조선 고대사를 바라보는 일본 학자들의 의식 밑에 깔린, 벗을 길 없는 업보입니다. 그렇게 저질러놓은 글들이 워낙 많아서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공부도 그 언저리를 맴돌다 다람쥐 신세를 면치 못하고 맙니다. 끝없이 쳇바퀴 돌죠. 그게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한심한 국사’입니다.

왜 ‘한심한 국사’라는 토를 달았냐면, 제가 10대 새파란 나이에 국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 아무런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열등감만 잔뜩 부풀리며 우리나라는 왕조마다 왜 이 모양인가 하는 회의감만 느꼈습니다. 이것이 틀린 역사 지식으로부터 발생한 열등감과 좌절감임을 안 계기는 20살 때 읽은 문공사 판 700원짜리 『조선상고사』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그라들었던 국사 열등감은 팽팽히 부풀어올라 열기구처럼 저를 싣고 둥둥 떠다니다가 지금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역사학자와 역사학계를 향해 어원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40여 년 만에 환갑 진갑을 지난 늙은이가 되어 젊은 학자들이나 들어보라고 쓴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늙은 학자 놈들은 제 말을 들을 것도 없습니다. 저의 젊은 날에 똥물 튀겨놓은 그놈의 학설들일랑 뒈질 때 몽땅 제 무덤으로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말을 하다 보니 자꾸 딴 길로 새곤 합니다. 저에게 억눌린 감정이 많아서 그런 것인데, 환갑 진갑 다 지나서 주둥이 꽉 다물고 다음 세상으로 그냥 가야 할 일이나, 어쩌다 지방 신문사에서 멍석 한 번 깔아주니 거기서 살판 내느라고 이렇게 나불거립니다. ‘주둥이’는 드라비다어 ‘cuņțu(부리, 아랫입술)’에서 온 말입니다. ‘살판’은 남사당 소고잡이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을 말합니다. 둥글게 돌아서 ‘살’(‘사리다’의 어근)이고, ‘판’은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앉은뱅이, 떡보, 먹보.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서 3수를 말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는데요,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서 이런 현상이 아주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가야를 굳이 빼고 고구려 백제 신라로 ‘삼국’을 정의하는 것이나, 기자조선의 준왕이 남쪽으로 도망가서 삼한이라고 한 것이나 다 이런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중원(中原)에서 화하족이 웅크리다가 양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북경과 남경을 둡니다. 역대 왕조가 번갈아 가며 삼는 수도가 셋(長安, 南京, 北京)입니다. 이것은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나타난 현상입니다.

북방의 초원지대에서 주인노릇하던 흉노도 그렇습니다. 가운데 선우가 있고, 서쪽으로 우현왕, 동쪽으로 좌현왕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하는데, 선우는 운중에 있고, 좌현왕은 상곡에 우현왕은 상군에 있다고, 『사기』 흉노 열전에 나옵니다. 상곡(上谷)은 ‘수리골:오리골’을 한자로 적은 것이고, 상군(上郡)은 ‘수리고을:오리고을’을 한자로 적은 것입니다. 둘 다 ‘왕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선우가 사는 곳은 운중(雲中)입니다. 선우가 있는 도읍은 용성(龍城, 龍庭)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왕을 용으로 여겼으니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 용성이 있는 현(고을) 이름이 운중입니다. 운중은 ‘비구름의 속’을 뜻하는 말인데, 선우가 있는 현의 이름이 왜 운중일까요? 용은 비구름이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우가 있는 곳을 ‘雲中’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또 이맛살을 찌푸리는 역사학자들 표정이 환히 보이네요. 문학에서는 그렇게 표현한다는데 그게 그렇게 떫을 일인가요? 주변의 시인들에게 물어보세요. 제 말이 거짓말인가? 저의 풀이를 들으면 아마도 다들 감탄할 겁니다. 문학은 역사의 짝입니다. 과거의 어떤 행위가 기록을 만나면 역사가 되고, 상상력을 만나면 문학이 되는 겁니다. 문학과 역사는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 죽었을 때 하늘에서 황룡이 내려와서 모셔갔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치면 ‘꼰대 유학자’쯤 되는 김부식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 조에 그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을 하늘의 아들(天子)이라고 여겼으니, 이런 이들이 보통 사람처럼 곱게 죽는 것은 더 이상한 일입니다. 하하하. 왜 청룡이 아니고 황룡이었을까요? 노랑(黃)은 중앙을 뜻하는 색입니다.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이 세상의 중앙이라고 여겼다는 뜻입니다. 오직 황제만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고구려 왕은 스스로를 천자라고 여긴 증거입니다.

흉노는 방위 개념이 뚜렷해서 이들 세 왕 밑에는 각기 오방기를 펄럭이며 나타나는 부족들이 있습니다. 전후좌우, 동서남북이 따로 영역을 갖추어 다스리다가 중앙의 왕이 명령을 내리면 출동하는 방식이죠. 사마천의 『사기』 열전 흉노전에, 흉노의 통치 조직은 만기(萬騎)를 한 단위로 하는데, 모두 24장(長)이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이 24가 24절기와 일치한다는 것과 그 이유는 나중에 따로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선우를 뺀 수가 24이니, 1을 더하면 25가 됩니다. 5×5=25. 여기서 흉노족의 인구도 간단히 추산할 수 있죠. 남자가 25만 명이니, 한 가장이 처와 자식을 3명 거느렸다고 한다면 본인 포함 4명이니, 25×4=100만 명입니다. 처자식이 4명이면 총인구는 125만 명입니다. 5명이면 150만, 6명이면 175만……

고조선은 어떨까요? 똑같을 겁니다. 통치 영역이 중원보다 훨씬 더 넓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진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지도를 펼쳐보면 장성 안쪽의 영역보다 그 바깥의 초원지대가 훨씬 더 넓습니다. 그 넓은 지역에는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수많은 종족이 흩어져 삽니다. 이들 중에서 이동이 가장 잦은 겨레는 ‘몽골, 터키, 퉁구스’ 말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나머지 부족은 이들의 방계 부족이거나, 아니면 이들과 필적할 수 없는 피지배 민족이죠. 만주와 한반도에 펴져 살던 길약이나 아이누가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이 드넓은 지역을 통솔하는 우두머리 세력이 있다면, 그 우두머리를 멀리서 돕고 호응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증상을 또렷이 보여주는 것이 흉노족의 좌현왕 우현왕 제도입니다. 이들은 말이 살찌는 가을 무렵, 대림(蹛林)에 모두 모여서 가축 수와 인구수를 조사합니다. 이렇게 조사를 마친 뒤에는 무엇을 할까요? 영하 40도의 맹추위가 다가오는 겨울을 위해 조용히 흩어질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흉노가 아니지요. 말이 살찌고 각궁이 짱짱해지니, 중국의 변방을 노략질하여 겨울 양식을 두둑이 쟁여둡니다. 우리가 가을날의 좋은 날씨를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하는데, 이것은 흉노족의 노략질이 시작될 징조를 나타낸 말입니다.(『한국의 활쏘기』)

사회구조는 고조선도 흉노와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중국과 마찰이 격화되는 기자조선의 경우는 지배층이 몽골어를 썼습니다. 흉노의 전성기 아래에서는 그들의 일부가 되어 움직였기 때문에 흉노와 거의 비슷한 제도를 갖추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기자조선도 『천자문』에서 왕으로 표기한 ‘기자(王)’ 밑에 또 다른 두 기자를 설정할 수 있죠. 즉 좌(左) 기자와 우(右) 기자입니다. 이들을 ‘기자’라고 불렀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복판을 다스리는 기자 곁에는 거의 독립된 방식으로 넓은 지역을 갈라 다스리는 버금 통치자(아ᄎᆞᆫ임금)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을 보면 중앙의 우두머리를 ‘단군’이라고 하고, 좌우의 아찬임금을 ‘기자’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삼국유사』 ‘왕력(王曆)’에서 주몽을 ‘단군의 아들(檀君之子)’이라고 표현했겠지요. 새로운 고구려의 왕을 ‘단군’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런 ‘좌-복판-우’ 3구도의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 삼한입니다. 기자조선의 준 왕이 남쪽으로 내려가서 삼한을 세웠죠. 서쪽의 마한, 동쪽의 진한, 서남쪽의 변한. 북방 유목민의 일반화된 통치방식이 그대로 옮겨간 것입니다. 고조선이 망한 자리에서 일어난 최초의 지도자인 단석괴도 동부와 서부를 두어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구역과 더불어 나라를 세 조각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심지어 단석괴라는 이름의 뜻은 ‘단군의 후손’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조선이 망한 자리에서 일어난 왕조가 이러하니, 그 전의 왕조인 고조선이 이러했을 것음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 기자조선도 마찬가지 구조였다는 추정은 절대로 무리가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결과입니다. 실제로 『위략』에 보면 삼한에 우거수(右渠帥)라는 말이 나오니, 이것이 기자의 또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만조선의 손자 우거(右渠)도, 기자조선 시절의 ‘우거수’를 지내서 붙은 이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장안, 북경, 남경’처럼, 고조선에도 이런 도읍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우리가 앞서 알아본 고조선의 수도 ‘신시, 아사달, 금미달, 장당경’은 이런 식의 도읍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단군이 나이 1,908세가 되어 장당경에서 아사달로 돌아가(!) 산신이 되었다는 표현은 이런 이동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고조선에서 말하는 도읍은 적어도 세 군데는 있었을 것이며, 이곳을 옮겨다니며 중국과 항쟁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고조선의 도읍지는 중국 사서에 ‘험독(險瀆)’이라고 나옵니다. ‘험독, 검독’으로 기록된 중국 사서의 모든 기록을 찾아내면 모두 4군데입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읍 이름과 짝을 맞추면 다음과 같습니다.(『고조선 연구』)

요녕성 심양 동남쪽 본계(本溪) 시 : 평양성

대릉하 서부 연안의 북진(北鎭) 동남 : 장당경

난하 하류 동부 유역 : 백악산 아사달

평안도 평양 : 아사달

참고로 독(瀆)은 언덕을 뜻하는 ‘달, 닭’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향찰 표기죠. ‘둑(堤), 두둑, 언덕’ 같은 말에 자취가 있습니다. 기역(ㄱ)은 어떤 때는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데, 기역이 받침으로 남은 말이 ‘독도(獨島)’입니다. 이것은 ‘돍섬’을 리을(ㄹ)이 떨어진 형태로 적은 향찰 표기입니다. 돌섬이라는 뜻이죠. 리을(ㄹ)이 떨어지고 기역(ㄱ)이 남은 사례입니다. 그래서 일본인들도 이 섬을 ‘다케시마(竹島)’라고 읽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다케시마’에는 대나무가 없습니다. ‘다케’는 대나무가 아니라 ‘독’으로 돌을 뜻하는 말입니다. ‘돍섬’을 일본식으로 읽다 보니 뜻밖에도 독도가 한국 땅임을 저절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둑도 그런 경우입니다. 바둑은 ‘밭(田)+독(石)’의 짜임이죠. 독(瀆)도 마찬가지여서 ‘험독, 검독’은 신이 사는 언덕을 뜻합니다. 결국 ‘박달’의 다른 표현이죠.

기자(왕)는 맨 처음에 중국 쪽에 바짝 붙은 만리장성 근처(천진 시의 영평부 기자유적 또는 난하)의 도읍에 있었을 것이나, 한나라 무렵의 공세로 동쪽으로 더 옮겨갔을 것인데, 이것은 좀 더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대릉하 언저리일 것입니다. 『자치통감』에 백제가 나오는 진평과 요서 지역이라고 봐도 됩니다. 백제가 예맥족이어서 예맥족에게 초점을 맞추고 좇다 보니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서기자는 전투가 활발하게 벌어지는 만리장성 밖 갈석산 쪽에 있게 되고, 우두머리가 있는 복판 기자는 대릉하에 있게 되며, 동기자는 요녕의 심양(本溪시, 또는 蓋州나 海城: 학자마다 조금씩 다름.), 조금 더 멀리는 만주 지역이나 한반도(평양)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이렇게 구도를 설정해놓으면 고대사에서 온갖 모순을 일으키는 사실들은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