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발해 2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발해 2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30-발해 2’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4.0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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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연구팀의 철령위 위치도 캡처.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인하대학교 연구팀의 철령위 위치도 캡처.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발해는 어느 나라의 역사일까요?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학파들이 보기에는 고구려 발해 모두 자기네 역사입니다. 중국사를 구성하는 지방 정권이라는 말이죠. 이런 식이면 발해는 러시아사도 됩니다. 그 지역의 일부가 러시아 소속이니 말이죠. 그러니 발해는 중국 러시아 한국이 공유하는 역사가 됩니다. 발해가 무슨 주식회사도 아니고, 최대 주주를 뽑아서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게 누구 탓일까요? 100% 한국의 역사학자들 탓입니다.

197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통일신라 시대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1985년에 26살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니, 1학년 교양 국사 시간에 남북국시대라고 가르치더군요. 남쪽은 신라 북쪽은 발해라는 식입니다. 그제야 발해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된 것인데, 그것도 강만길 교수를 비롯하여 국사학계의 극히 일부 학자들만이 그랬습니다.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펴낸 『한국사 개론』 책에서만 남북국시대였지, 당시의 다른 국사책에는 대부분 통일신라 시대로 가르쳤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니 우리 국사학에서 내팽개친 고깃덩이를 지나가던 개가 집어먹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발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에 있어서 발굴 조사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남들이 발굴하여 발표하는 것을 갖고 저게 우리 역사 맞나? 하며 멀뚱멀뚱 쳐다보는 일이 전부입니다. 발해는 중국사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측의 기록에도 자세치 않습니다. 발해는 당나라를 공격하기도 한 나라입니다. 이런 일 때문에 당나라가 대응한 부분만 조금 남아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혈통이나 가계 혹은 이들이 어떤 민족으로 구성되었는지조차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원철의 책을 읽다 보니, 서양 쪽의 자료와 비교 분석을 하여 발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새롭게 접하게 되었고, 이 정도면 발해사를 엮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때 남북국시대라고 규정하고 설명하던 한국사 개론을 배우면서도, 그 헐렁한 설명에 ‘이게 우리 역사라고 할 근거가 되겠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전원철의 책을 보니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많아서 충분히 발해 왕실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학자들이 조금만 성의를 보인다면 가능할 텐데, 우리 국사학에 실망한 경험이 40여 년 쌓이다 보니 그런 믿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제 기분 탓만은 아닐 겁니다.

저의 전공과 관심은 언어학이니 ‘발해’라는 말에 관해서만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발해에 대한 아쉬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단군과 기자’를 얘기하면서 저는 고구려의 기원을 부리야트라고 보았습니다. 부리야트에는 3가지 방언이 있는데, 그 중에서 코리 방언을 쓴 사람들이 고구려의 주체 세력입니다. 코리 방언 중에는 기징가 방언이 또 있습니다. 이 기징가가 중국 측의 기록으로 ‘기자’가 된 것이고, ‘기자’는 조선시대 『천자문』(1575년)에 왕을 뜻하는 말(긔ᄌᆞ 왕)로 적혔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몽골어를 쓴 사람들입니다.

‘기자’의 ‘기(箕)’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인데, 이것을 퉁구스어로는 ‘fiyoo’라고 합니다. ‘f’와 ‘p’는 서로 넘나듭니다. 그래서 ‘fiyoo’는 ‘*piyoo’로 재구되죠. 이 말이 향찰로 표기될 때 ‘부여(夫餘), 불내(不耐), 부리(夫里), 부루(夫婁), 발(發), 패(浿)’ 같은 문자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표기된 것들은 모두 어떤 대상의 소리가 퉁구스어 쓰는 사람의 귀에 들린 말입니다. 몽골어를 쓰는 사람들은 ‘코리, 구려, 고코라, 매크리, 묘구리’라고 했습니다. 같은 대상을 몽골어와 퉁구스어에서는 서로 다르게 부른 것입니다. 무엇을 이렇게 한 것일까요? 바로 ‘부리야트’입니다. 처음엔 부리야트 족 일부가 지배층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코리족이 부리야트를 대표하게 되면서 몽골어를 쓰는 부족들을 가리키는 명칭이 바뀐 것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만몽 초원은 한 덩어리입니다. 그곳에 이들이 뒤엉켜 살면서 이렇게 같은 대상을 서로 자기에게 맞는 말로 부른 것입니다. 몽골족이 나라를 세우면 그리로 몰리고, 퉁구스족이 나라를 세우면 그 밑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이죠.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 발해 시대까지 만주와 몽골 초원은 이런 식으로 움직입니다.

신라 영토는 삼국시대에 가장 넓은 영역이 한강 유역이었습니다.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고구려가 망하자 국토가 갑자기 요동 지역까지 확대되고, 당황한 신라를 배제하려고 당나라가 획책하자 신라는 반발하여 전쟁까지 불사하죠. 철령과 호로하를 경계로 하여 타협을 합니다. 철령과 호로하를 국사학자들은 근거도 없이 함경남도와 임진강의 연결선이라고 비정해버렸는데, 제가 살펴본 어원으로는 요녕성의 도시인 철령과 대릉하입니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덕에 신라는 요동까지 차지했는데, 문제는 거기서 고구려가 망한 지 불과 30년도 채 안 되어 고구려와 똑같은 나라가 다시 섰다는 것입니다. 진국, 즉 발해죠. 따라서 신라는 철령과 호로하(대릉하) 경계선을 지킬 수가 없게 되고, 한반도로 철수합니다. 어디까지 철수했을까요? 이에 관한 근거도 역사학계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원철의 책을 보니 발해는 개성 지역까지 차지했다네요. 그렇다면 신라는 삼국시대의 영역으로 다시 후퇴한 셈입니다. 기껏해야 임진강 유역까지 차지한 것인데, 결국 신라가 먹은 영토는 백제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니 국사학계의 ‘통일신라 시대’라는 구분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논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스승들의 논리를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게 그들의 신념이고 학설입니다.

나라 이름 ‘발해’를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이름은 진국(震國, 振國)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발해로 바꾸죠. 한자 표기로는 바꾼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말로는 똑같은 이름입니다. ‘진(震)’은 ‘벼락 진’ 자입니다. 벼락은 ‘별+악’의 짜임으로 ‘악’은 ‘나락’ 같은 말에서 보듯이 접미사입니다. 이름씨임을 나타내주는 문법 기능을 할 뿐,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니 震이 전하려는 뜻은 ‘별’입니다. 발해(渤海)는 ‘바ᄅᆡ’인데, ‘ㆎ’는 ‘아이, 아해(아ᄒᆡ)’에서 보듯이 접미사입니다. 결국 진국과 발해는 같은 소리를 서로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발해는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닙니다. 바다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죠.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동해라고 합니다. 황하가 흘러드는 바다라는 뜻으로 ‘황해’라고도 하죠. 그런데 중국의 산동 반도와 요동 반도가 감싸안은 안쪽 바다가 있습니다. 그 바닷가를 요동이라고 하죠. 이렇게 요동을 가슴팍으로 하여 오른팔 산동 반도와 왼팔 요동 반도가 감싸 안은 그 품 안의 바다가 바로 ‘발해’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발해일까요? 황하와 똑같습니다. ‘발수’가 흘러드는 바다라서 발해입니다. ‘발수’는 뭘까요? ‘패수’입니다. 그러면 이 지역에 왜 ‘발, 패’ 같은 말이 붙었을까요?

산동 반도는 동이족이 살던 곳이고, 북경도 그렇습니다. 그 위쪽 요동 지역과 요동 반도는 물론이지요. 우리가 ‘발해’라고 부르는 바다의 둘레 땅은 모두 동이족이 살던 곳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살던 땅이라는 뜻으로 ‘발’을 붙인 것입니다. 그 땅을 흐르는 큰 강은 ‘패수’가 되는 것이지요.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 중에서 ‘발, 패’ 같은 소리가 나는 겨레나 나라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부리야트가 바로 그들입니다. 기자조선의 지배층은 몽골어를 썼고, 부리야트는 몽골어를 쓴 부족입니다. 앞서 고구려가 고죽국에서 동쪽으로 밀리면서 대동강에 이르는 경로를 우리는 차례로 확인했습니다. 바로 이들 때문에 이곳의 바다 이름이 ‘발해’로 이름 붙은 것입니다.

발해라는 이름을 남긴 부족들이 마지막으로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발해’이고, 대조영의 그 나라에 ‘발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진(震)과 발해(渤海)가 나타내고자 하는 말은 ‘바르’이고, 이것은 부리야트의 준말입니다. ‘바르’에 접미사 ‘악’과 ‘ㆎ’가 붙어서 ‘벼락’과 ‘바ᄅᆡ’가 된 것입니다. ‘벼락’은 뜻을 취하여 ‘진(震)’으로, ‘바ᄅᆡ’는 소리를 취하여 ‘발해(渤海)’로 적은 것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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