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한사군의 이름 3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한사군의 이름 3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41-한사군의 이름 3’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6.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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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세계민속궁대회 자료집.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기왕에 이렇게 된 거, 한 번 더 상상의 불꽃을 튀겨보겠습니다. 위의 『사기』 원문을 보면 ‘임둔’도 한사군 설치 이전부터 쓰인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도’나 ‘낙랑’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들이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낙랑’은 어렵지 않습니다. 앞서 알아본 적도 있죠. ‘평양’을 가리키는 말이고, 곧 우리말로 ‘박달’입니다. 한자말 ‘평양’은 우리말로 ‘박달성’이라고 했죠. 몽골어로 ‘즐겁다’가 ‘baxadal’이고 이것을 한자로 번역하니 ‘낙랑(樂浪)’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낙랑’을 같은 소리로 옮겨적은 것이 ‘노룡(盧龍)’입니다. 몽골어와 중국어로 용이라는 뜻까지 따라붙어 자연스럽게 만리장성의 시작점을 나타내는 지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임둔’과 ‘현도’만 남았네요. ‘진번’의 경우는, ‘진’이 음차이고, ‘번’은 방패막이로 뜻을 적은 말이라고 봅니다. 임둔과 현도도 이런 식의 이름이라고 본다면 ‘임’과 ‘현’에 초점을 맞추면 될 듯합니다.

먼저 중국 측에서 제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적은 것으로 본다면 ‘臨屯’의 상고음이 [bli̯əmti̯wən]입니다. [b]은 종종 떨어져 나가는지 학자마다 재구할 때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b]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이 현상, 어디서 많이 본 거 아닌가요? 전에 ‘불령지’와 ‘영지’를 얘기할 때 ‘불’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리야트’를 얘기하는 것이죠. 실제로 [bli̯əmti̯wən]의 발음을 잘 들어보면 ‘부리야트’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임둔이 소리를 적은 것이 아니고 뜻을 취하여 적은 말이었다면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임(臨)은 ‘다다를 림’ 자입니다. ‘다다를’에서 연상되는 부족 이름이 뭐가 있을까요? ‘달단(韃靼), 타타르’가 있죠. 달단은 말갈족의 일파이고, ‘실위’가 이들입니다. 고조선을 구성한 25 종족 중의 하나죠. 임둔의 ‘둔’과 달단의 ‘단’이 어쩐지 같은 말로 보이지 않나요?

‘현도’의 현은 검을 현(玄) 자입니다. 이것을 뜻 ‘검다’로 읽어서 개마(蓋馬)라고도 하는데, 임둔과 같은 발상으로 보면 이것은 소리를 닮은 두 말을 연결 지은 것에 불과합니다. 예맥 조선이 통치하던 지역이니 몽골어나 만주어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습니다. 검은 것을 북방어로는 ‘가라’라고 표현합니다. 이 소리와 비슷하게 나는 부족 이름 중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요? 저는 있습니다. ‘거란’이죠. 거란은 흉노전에 나오는 동호의 후예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그렇게 불렸겠지만, 중국 측에서 동호(東胡)라고 적었기에 거란(契丹)은 선비(鮮卑)나 오환(烏桓)보다 더 늦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같은 부족을 부른 이름입니다.

오환(烏桓)이 ‘까마귀 오’ 자인 것을 보면 ‘가라, 거란’과 관련이 있을 법도 합니다. 몽골어로 까마귀는 ‘kariye’입니다. ‘가라환, 가라한, 가라칸, 가라간’이라면 ‘거란’과 비슷하죠. ‘거란’의 한자 표기는 ‘契丹’인데, 그 부족의 발음을 존중하여 그렇게 읽는 것입니다. ‘가라한’은 우리말로 뜻을 보자면 하늘처럼 큰 겨레라는 뜻입니다. 거란에 대한 세계 여러 학자의 뜻풀이보다 우리말로 푸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들 언어의 전통이 우리말 속에 더 또렷하게 흘러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떫어하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우리말로 남의 말을 마구 갖다 붙여서 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낯빛에 나타나는 거죠. 저는 우리 역사를 규정한 어떤 사실을 우리말로 푸는 사람입니다. 오만가지 학술이론보다 언어의 직관이 훨씬 더 정확할 때가 많음을 평생토록 겪으며 산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직감 타령이 몹시 떫은 분들을 위해서 좀 더 정밀한 학문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래 드리지요.

중국 사서의 설명을 보면 오환은 오환산에 살아서 붙은 이름이고, 선비는 선비산에 살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합니다. 중국의 사관들이 뜻을 알 수 없을 때 설명하는 뻔한 수법인데, 이래서는 오환과 선비가 무슨 뜻인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일단 이들의 소리를 중국인들이 귀에 들린 대로 받아 적은 말이라고 보고, 상고음을 적어보겠습니다. 烏의 상고음은 [o] 또는 [ɑɡ]이고, 桓은 [ɡʰwɑn]입니다. 玄은 [ɡʰiwen]입니다. ‘玄=桓’이죠. 契의 상고음은 [kʰiad]이고, 丹의 상고음은 [tɑn]입니다. 거란의 상고음이 [kʰiadtɑn]이니 현도의 상고음  [ɡʰiwentʰa]과 비슷하죠. 이쯤이면 됐나요? 댓 발이나 튀어나온 주둥이를 이제는 집어넣으시죠. 하하하.

‘玄菟’를 우리는 ‘현도’라고 읽는데, 菟는 ‘도’가 아니라 ‘토’입니다. 서양에서는 거란을 ‘키탄, 키타이’라고 읽었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菟는 ‘키탄(Khitan)’의 ‘탄’을 표기하려는 말이었ᅌᅳᆯ 것입니다. 키타이=玄菟=거란. 키=玄=契=거. 타이=菟=兎=丹=란. 이것을 보면 우리는 현도가 오환을 나타내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라’는 검정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크다, 복판’을 나타내는 우리 고유어이기도 합니다. 몽골어에서도 가운데는 ‘gool’입니다. 윷말에도 있죠. ‘걸’. 쌍둥이를 우리말로 ‘갈래기’라고 하는데, 원래 중앙이란 갈라진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이고, 모든 곳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갈, 걸’이 복판의 뜻을 나타내는 겁니다. ‘진번’이 중국식으로 붙인 명칭이 아니라 조선 측의 이름이기에 나머지도 그렇게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한사군으로 명명된 이름 넷이 모두 조선 쪽에서 붙여쓰던 이름이었습니다. 고조선에 원래 있던 이름들을 그대로 써서 행정구역만 쪼개서 배당한 것이죠. 이름 재활용!

말이 나온 김에 선비(鮮卑)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선비와 오환은 늘 같이 나오는데, 동호의 후예이고 한나라 때 선비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수당 때까지는 실위(室韋)로 나오다가, 그 후에 서쪽으로 옮겨가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사비(師比), 서비(犀毗)라고도 하는데, 스스로는 ‘시버(錫伯, 錫韋)’라고 하여 현재도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남아있습니다. 시베리아(siberia)라는 말의 어근 시베르(siber)는 ‘선비’에서 온 것입니다.

‘鮮卑’는 상고음이 [si̯anpǐe]입니다. ‘선비’의 선(鮮)은 우리에게 낯익은 말입니다. 조선(朝鮮)과 같은데, 조선은 주신(珠申)과 같고, 이것은 ‘주르친’을 적은 것이며, ‘친’은 황금을 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르’를 떼고 남은 ‘친’에 접미사 ‘비’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아마도 황금 부족이라는 자부심으로 붙인 이름일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후예라는 자부심도 느껴지는 말입니다. 이것이 단음절로 굳어지면 진(辰), 연(燕)이 됩니다. 

제가 이들의 현재 상황을 들은 것은 활쏘기 때문이었습니다. 2007년에 천안에서 세계민족궁 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제가 학술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그때 중국의 활쏘기 현황을 중국 대표가 와서 발표할 때 시버족 얘기를 했습니다.(펑 후이: 중국 시버족의 전통 활쏘기) 원래 만주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청나라 때 용병으로 동원되어 서쪽으로 와서 현재의 자리에 산다고 소개하더군요. 이들은 활쏘기를 잘 해서 용병으로 기용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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