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사기』를 다시 읽다 1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사기』를 다시 읽다 1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36-사기1’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5.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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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까치의 사기 번역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우리말의 뿌리를 다루면서 상고사를 건드리다 보니, 30년 넘게 책꽂이에서 먼지 뒤집어쓴 채 빛바랜 사마천의 『사기』를 뒤늦게 또 꺼내 들었습니다. ‘조선 열전’을 읽으면서 보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우리 역사학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다시 한번 저지레가 환히 보입니다.

사람이 동쪽 동네에 놀러 갔다가 서쪽에서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땅 밑에 굴이 뚫린 것도 아닌데, 동쪽으로 놀러 갔으면 반드시 동쪽에서 돌아와야 하는 이치가, 유독 『사기』 조선 열전을 바라보는 역사학자들한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 역사에 참극을 초래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바보 천치가 아닐 텐데, 유독 조선 열전 앞에서는 바보 등신이 되어 앞뒤가 안 맞는 헛소리를 마구 해대는 것을 보고, 저도 다시 한번 구차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 또 주절거립니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조선 열전’을 보겠습니다. 원문을 제시하면 읽는 분들이 어려워할 것 같아, 1995년에 정범진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힘을 합쳐서 번역한 책(도서출판 까치)에서 그대로 옮겨옵니다. 길지만 앞부분을 인용합니다.

 조선의 왕 만(滿)은 원래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는 그 전성기 때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을 공격하여 연나라에 귀속시켜 관리를 설치하고 요새에 성을 쌓았다.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에는 요동(遼東)의 바깥 경계에 속하였다. 한(漢)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이 멀어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여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축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를 정하고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연왕 노관(盧綰)이 배반하여 흉노에 들어가니, 만이 망명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추결(抽結)을 하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가서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서 진나라의 옛 땅에 살면서 장(障)을 오르내리며 점차로 진번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과 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었고, 왕검(王儉)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때가 마침 효혜(孝惠), 고후(高后)의 시기로서, 천하가 처음 평정되었다. 요동 태수는 곧 만과 약속하기를 “외신(外臣)이 되어 만이를 보호하고 변경을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여러 만이의 군장이 들어와 황제를 뵙고자 하거든 금하지 말라.”고 하였다. 요동 태수가 이를 보고하니 황제가 허락하였다. 이런 까닭에 만은 병위(兵威)와 재물을 얻어 그 주위의 작은 나라를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臨屯)이 다 복속하였고, 그 땅이 사방 수천 리가 되었다. 
(만이 죽자) 왕위가 아들에게 전해지고 다시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니 꾀어들인 한나라의 도망친 백성들이 점차 많아졌고, 또 입조하여 황제를 뵙지도 않았다. 또한 진번의 주위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황제를 뵙고자 하면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봉(元封) 2년에 한나라는 섭하(涉河)를 시켜 우거를 꾸짖고 타이르게 하였으나, 끝내 그는 황제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섭하가 떠나 국경에 이르러 패수에 임하였을 때 수레를 끄는 사람을 시켜 섭하를 전송하던 조선의 비왕(裨王) 장(長)을 죽이고 패수를 건너 말을 달려서 요새로 돌아갔다. 마침내 돌아가 황제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황제는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는) 미명(美名)으로 인해서 꾸짖지 않고 섭하를 요동의 동부도위(東部都尉)로 임명하였다. 조선이 섭하를 원망하며 군사를 일으켜 습격하여 섭하를 죽여버렸다. 
이에 황제는 죄인들을 모아 조선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해 가을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을 파견하여 제나라 땅을 출발하여 발해(渤海)를 건너니 군사가 5만여 명이었는데 좌장군 순체(荀彘)로 하여금 요동을 나와 우거를 치게 하였다.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꼼꼼히 잘 읽어주십시오. 연나라가 이 지역의 핵심 세력입니다. ‘진번’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한사군의 이름과 똑같습니다. 조선이 망한 뒤에 한나라가 설치한 그 진번과는 이름이 똑같지만 다른 존재죠. 원래 중국이 아니었는데 연나라가 강성할 때 중국령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때의 중국은 전국시대였습니다. 이 시기는 일곱 제후국이 서로 우위를 다투던 때였고, 이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불렀으며, 우리는 시험용으로 이렇게 외웠습니다. 
진-초-연-제-한-위-조(秦楚燕齊韓魏趙). 
결국은 맨 서쪽에 쓸개처럼 붙어있던 가장 작은 진나라가 통일하여 진시황이 등장하죠. 이때 연도 망합니다. 다음 문장이 중요합니다.

 “한(漢)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요동의 바깥 경계에 속한 진번 조선)이 멀어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여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축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를 정하고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연나라 때는 진번과 조선까지 연나라에 귀속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나라가 망하고 지키기 어려우니까 (진번 조선에서) 철수하여 요동에 있던 옛날 요새를 고쳤는데, 그 경계가 ‘패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패수’가 과연 어디인가? 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렇죠? 안 그런가요? 저만 그런가요? 하하하. 그러면 이 패수가 어디인지 번역하신 분들이 설명을 들어보면 되겠습니다. 정범진의 번역 글은 원문을 번역하고 필요한 곳에다가 각주를 달았습니다. 그 각주에 이 패수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5)浿水 : 강 이름. 『史記』에서는 지금의 平壤市 북쪽의 淸川江을 가리키며, 혹은 大同江 혹은 鴨綠江을 가리키기도 한다. 김부식의 『三國史記』에서는 지금의 禮成江을 가리키며, 혹은 臨津江을 가리키기도 한다. 『隋書』 「高麗傳」에서는 지금의 대동강을 가리킨다.”

패수는 한 군데일 텐데, 거기를 가리키는 강들은 이렇게 많습니다. 이러다가는 한반도에 있는 모든 강 이름이 다 동원될 것 같습니다. ‘漢江, 錦江, 榮山江, 洛東江’까지 동원될 기세입니다. 그런데 정말 얄미운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작 중국놈들은 패수가 청천강이라는데, 한국놈인 김부식은 임진강이라고 하여 남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려서 어떻게든 한국사의 강역을 오그라들게 하려는 작태입니다. 바람의 풍선을 빼서 껍데기만 흐믈흐믈 남기려는 수작이죠. 껍데기만 남은 풍선도 풍선이라고 주장한다면 틀렸다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바람 빠진 풍선을 놓고서 풍선의 너비를 정하는 김부식을 정말 부관참시라도 하고픈 심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십시오. 『사기』 번역본에 달린 각주의 설명을 보면 정말 ‘옛날 놈’들이나 ‘요즘 놈’들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史記』에서는 지금의 平壤市 북쪽의 淸川江을 가리키며, 혹은 大同江 혹은 鴨綠江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썼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사기』에서 패수가 언제 청천강이라고 했다는 말입니까? 후대에 거기다가 주석을 단 놈들의 짓인데,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사기』의 주장이라고 냅다 질러버리니, 역사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사기』 원문에서는 ‘청천강’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패수’라고 했죠. 패수가 청천강이라고 비정(比定)한 것은 먼 훗날의 주석자들입니다.

위의 번역 책에서는 이것을 각주에 설명해놓았습니다. 이상합니다. 『사기』 원문의 글과 거기 달린 주석자들의 견해를 구분 못 한단 말입니까? 못한다기보다는 하기 싫은 거겠죠. 학계에서 통용되는 견해를 소개한 것일 겁니다. 한반도의 강 이름이 모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도 수많은 주장이 나와서 어느 하나로 합의를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쯧쯧쯧!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죠.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패수를 한반도의 어느 강에서 찾으려 든다는 것입니다. 왜 소수의견은 없을까요? 혹시라도 패수가 압록강 너머 요동 어디엔가 있었다면 어떡하려고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역사학계는 여기서 이미 배수진을 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패수’가 어디인지를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역사에 문외한인 문학도입니다. 1987년 문학 전문지를 통해 시로 등단한 시인입니다. 시인의 상상력이 더 나은지 역사학도의 사실 추구 정신이 더 나은지 여러분이 한번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앞서 본문 중에서 두 번째 문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연왕 노관(盧綰)이 배반하여 흉노에 들어가니, 만이 망명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추결(抽結)을 하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가서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서 진나라의 옛 땅에 살면서 장(障)을 오르내리며 점차로 진번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과 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었고, 왕검(王儉)에 도읍을 정하였다.”

위 인용문에서 밑줄 친 곳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한때 연나라 땅이었던 한나라의 동쪽 요새를 위만이 나섭니다. 이 요새는 조선과 연나라 사이에 지은 요동의 옛 요새입니다. 거기를 나와서 패수를 건넙니다. 그런데 거기가 ‘진나라의 옛 땅’입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해주십시오.

앞서 각주에 『사기』에서 말한 패수 즉 청천강을 기준으로 이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위만이 요새를 나와서 패수(청천강)를 건넜는데, 거기가 ‘진나라의 옛 땅(연나라 요동의 바깥 경계, 즉 연과 진번 조선이 만나는 경계선)’입니다. 이렇다면 진번 조선은 청천강을 건너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평양을 고조선의 도읍이라고 해도 이건 문제입니다. 고조선이 청천강 이남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앞서 제시한 조선 열전의 원문을 여러분이 한 번 더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잘못 읽었나요? 아니죠! 제가 제대로 읽었죠? 그렇습니다. 제가 문장 그대로 읽었고 풀이했습니다. ‘패수’를 청천강이 아니라 대동강이라고 하면 더 이상합니다. 만약에 패수가 대동강이라고 한다면 고조선은 황해도나 한강쯤에 있어야 합니다. 김부식의 말대로 패수가 예성강이라면 고조선은 경기도나 충남 어디쯤 있어야 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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