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사기』를 다시 읽다 3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사기』를 다시 읽다 3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38-사기3’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3.06.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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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흥서국에서 나온 사마천의 사기 영인본 일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패(浿 [pʰuɑd>pèi(pʰei)])와 발(渤 [buət>bó(po)])의 소리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비슷하지 않나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고, 제 귀에만 그렇게 들리나요? 두 한자의 소리는 정말 비슷합니다. 피읖과 비읍은 우리말에서나 구분되지, 악센트가 살아있는 다른 나라 말에서는 거의 구별되지 않습니다. 마치 한 소리처럼 발음됩니다. 한자는 4성 체계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渤의 뜻은 ‘바다 이름 발’입니다. 특정 대상을 위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러니 소리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동북아 고대사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발해’는 무슨 뜻일까요? ‘발해’의 뜻은, ‘발하’가 흘러드는 바다입니다. 위의 음성 표기에 따라 ‘발해=패해’이고, ‘발수=패수’이죠. 왜 이럴까요? 패수는 고정된 강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중국인들의 인식이 점차 넓어지면서 그에 따라 옮겨간 물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요하(遼河:멀고 먼 물줄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요하라고 했지만, 그 요하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동이족)은 자신이 사는 강을 멀다고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뭐라고 표현했을까요? 제 겨레의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패, 발’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동이족 표현은 ‘밝’일 겁니다. ‘예맥’의 ‘맥’도 이것입니다. 또 이 뜻을 번역한 말이 조선(朝鮮)이죠. 중국의 동쪽이기에 해가 뜨는 곳입니다. 그래서 밝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그 땅에 대조영이 세운 나라 이름이 ‘발해’이고 ‘진(震)’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밝, 맥’ 겨레가 세운 나라라는 뜻입니다. 발해는 벼락(震)과 같은 소리를 냅니다. 5행 상 동방을 뜻하기도 하죠. ‘벼락’은 ‘별+악’의 짜임이고, ‘악’은 명사화 접미사입니다. ‘부뚜막, 오두막, 오르막’ 같은 말에서 볼 수 있죠. 게다가 ‘발조선(發朝鮮)’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것을 3조선 중의 하나라고 보는데, 뭐라고 하든 ‘발’이 ‘밝’의 표기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패수는 또 불수(沛水)로도 표기됩니다. 같은 말을 각기 다른 한자로 적은 것입니다. 發=渤=浿=沛.

이러한 낱말을 낳은 부족의 이름을 동이족에서 찾자면 ‘부리야트’를 들 수 있습니다. ‘부리야트’는 주나라 낙읍에서 성왕이 대회를 열 때 참가한 오랑캐 이름에 있는데, 불령지(不令支)나 영지(泠支)로 기록되었습니다.(『일주서』 왕회편) 이들은 황하 하류 지역에 살다가 중국이 팽창함에 따라 동북쪽으로 계속 밀려나면서 곳곳에 지명을 남깁니다. 그들이 따라간 바다 ‘발해’도 ‘부리야트’를 적은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 살던 바다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강에 대해서 중국 측에서 이름을 붙이면 ‘요하’가 되고, 동이족이 이름을 붙이면 ‘패수, 발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패수(발수)는 동이족이 요동 반도 동쪽으로 완전히 밀려날 때까지 지금 요하의 서쪽에 있게 됩니다. 대릉하, 난하, 조하, 백하, 영정하가 모두 패수이자 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중국의 외연 확장에 따라 점차 동쪽으로 밀려난 것이죠. 따라서 그 발하가 어디에 있든, 발하가 흘러드는 바다는 ‘발해’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라면, 우리가 황해라고 부르는 그 바다는 발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 ‘황해(黃海)’라는 말도 황하가 흘러드는 바다라는 뜻으로 붙은 것입니다. 패수가 흘러드는 바다는 패해(渤海)가 되는 것처럼. 그러므로 발해는 황해가 아니라, 요동 반도가 감싼 안쪽의 바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발해라는 말이 패수가 요동 반도 안쪽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중국인들은 강과 하를 구분해서 썼습니다. 남쪽에서는 주로 강(江)이라고 했고, 북쪽에서는 주로 하(河)라고 했습니다. 양자강은 남쪽을 대표하는 강이고, 황하는 북쪽을 대표하는 강입니다. 그 위로 가면 백하, 난하, 대릉하, 요하, 태자하 같은 이름이 보이죠. 조선 후기의 천재 연암 박지원은 중국의 강과 하에 대해 맑은 물은 강이라고 하고 흐린 물은 하라고 한다고 했는데, 그럴 듯은 하지만 어쩐지 뒤가 찜찜합니다. 황하만 흐리지 다른 물은 그렇게 흐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하’는 옛날의 동이족들이 쓰던 말 같습니다. 아니면 지역에 따라서 달리 불렀던가.

이런 물줄기에 대해서 조선 쪽에서는 ‘수(水)’라고 했습니다. 물줄기라는 뜻입니다. ‘시엄수, 엄체수, 압자수, 아리수, 한수’라는 식입니다. 그러니 ‘패수’는 조선 쪽에서 붙인 물줄기 이름일 겁니다. 조선 쪽에서 붙이면 ‘패수’가 되겠지만, 똑같은 발음으로 중국 쪽에서 붙이면 ‘발하’가 될 것입니다. 발하(渤河)=패수(浿水).

우리나라에서도 큰 물줄기를 ‘강’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정착한 뒤의 일일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는 물줄기를 ‘수’라고 했습니다. ‘시엄수, 엄체수, 아리수, 패수, 한수’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물줄기 이름(水)이 한자로 ‘하’가 아니라 ‘강’으로 교체된 것은, 소리값에 대한 우리 겨레의 무의식이 작용한 탓입니다. 물줄기의 우리말이 ‘가람’이기에, ‘하’보다는 ‘강’에 더 가까워서 입으로 말하기에 편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바로 옆 동네에서 쓰이는 ‘하’를 버리고, 굳이 중국 남부에서 유행한 ‘강’을 갖다가 붙였을 리가 없습니다.

하천(河川)이란 말을 보면 ‘하’는 물줄기의 크기에 따라서 붙은 것 같고, 강산(江山)이라는 말을 보면 ‘강’은 그 주변을 흐르는 산과 짝하여 불린 이름 같습니다. 이런 개념으로 조선 후기에는 우리만의 독특한 지리 개념인 『산경표』가 만들어지죠.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반도의 등뼈가 백두대간입니다. 이걸 일본제국주의가 난도질하여 토막살인한 끝에 붙인 이름이 ‘산맥’이라는 개념입니다.

강과 관련된 우리 겨레의 말버릇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모여서 흐릅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세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우선 물이 줄기를 만들죠. 이것이 ‘물줄기, 물(水)’이죠. 이 물줄기는 흐르는 땅의 양쪽을 반드시 가릅니다. 이래서 ‘가람’이 되는 겁니다. ‘가람’은 ‘가르다’의 어간 ‘갈’에 접미사 ‘암’이 붙은 것입니다. 이렇게 땅을 둘로 나누면, 그 갈라진 곳은 깊이 파입니다. 그렇게 파인 것을 ‘골’이라고 하죠. ‘골짜기’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고구려에서는 ‘홀(忽), 골(谷)’이라고 했습니다. ‘미추홀, 홀승골’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물이 골짜기를 만들고 땅을 둘로 나누면, 나뉜 그곳에는 반드시 모래가 쌓입니다. 퇴적물이 생기는 거죠. 그게 ‘모래톱’입니다. ‘톱’은 ‘손톱, 발톱, 톱, 톱밥’ 같은 곳에서 보듯이 가장자리에 생긴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넓은 퇴적물을 ‘내’라고 합니다. ‘냇가, 시냇물’ 할 때의 그 내입니다. 물줄기를 따라서 난 흙과 땅을 말합니다. 이 내를 고구려어로는 ‘나(那), 노(奴)’로 적었습니다. 번역하면 ‘양(壤)’이 되죠. ‘평양(平壤)’이 그것입니다. 퇴적물인 이 내가 널찍하게 벌어지면 ‘벌, 벌판’이 됩니다. 이것을 한자로 적으면 ‘발(發), 불내(不耐), 부리(夫里), 부여(扶餘), 바라(婆羅), 버들(柳)’입니다. 이런 벌판이 높으면 ‘닭’이 됩니다. ‘달, 다라, 들, 돌’로 변화되는데, 한자로 ‘달(達), 양(陽), 돌(石, 梁, 濟), 독(石), 다라(多羅)’라 쓰입니다.

‘패수’와 ‘발해’를 이렇게 보면 평양의 위치는 저절로 정해집니다. 『사기』에 적힌 패수를 기준으로 보면 지금의 요녕이 바로 고조선의 평양입니다.(학자마다 그 근처의 다른 도시를 지목하기도 함.) 패수가 지금의 대동강이 아니라는 것은 제가 처음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통렬하게 파헤쳤습니다.

이상한 건 역사학자들입니다. 우리처럼 무식한 일반인이 맨눈으로 보기에도 문장을 제대로만 읽으면 이렇게 저절로 진실이 드러나는데, 어찌하여 역사를 전공하여 그것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학자들의 눈에는 이 사실이 뜨이지 않을까요? 석사 박사를 거친 사람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학자들이 바보 등신도 아닌데, 다 알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을 겁니다. 그 절박한 사정이 무엇일까요? 제 스승의 학설을 뒤집어엎을 수 없는 한국 역사학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 스승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게 무슨 반역죄나 배신을 때리는 것으로 취급되다 보니, 스승이 무식해서 저질러놓으면 그걸 바꾸지 못하고 처음부터 잘못된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겁니다. 잘못 꿰인 첫 단추를 아무도 풀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학계의 분위기입니다. 첫 단추 패수를 청천강에 잘못 비정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앞서 보았듯이 패수를 한반도 안으로 들여놓으면 북방의 초원지대를 뒤덮고 호령하던 고조선은 손바닥만한 크기로 졸아듭니다. 이런 현상을 가장 즐겁고 애절하게 바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조선을 한입에 삼키려던 일본놈들이겠지요.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은 일본 역사학자들입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실증주의 식민사관을 심었고, 그것을 보고 배운 사람들이 충실하게 뒤따랐습니다. 그러니 이런 궤변이 우리나라 역사학의 공식 학설로 자리 잡은 것이고, 서울대학교 학파로 전국 대학의 강단이 뒤덮여버리고 나니, 그것을 반박할 만한 배짱을 지닌 사람이라고는 국사학과가 아닌 중국사 전공자 딱 1명이었던 겁니다. 중국의 상주사(商周史)를 전공한 단국대학교의 윤내현이 그 딱 1명이죠.

예수는 나귀 타고 도착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분노하여 판을 뒤집으며 ‘회칠한 무덤!’이라고 외쳤는데, 한국 고대사 연구의 꼬락서니를 보면 역사학계에는 이런 예수가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지 그게 다 궁금합니다. 어쩌면 100년 전의 단재가 예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 사후에 기독교가 나와서 유대교의 버르장머리를 고쳤지만, 한국은 단재 사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한국의 역사학은 아직도 회칠한 무덤의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1980년대 이후 국수주의 역사학이 단재를 교주로 모실 자격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재의 그림에 멋대로 개칠한 것이 국수주의 역사학입니다.

이러니 현실에서 역사 문제만 나오면 황당무계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겁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창녀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토착왜구’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정치인들까지 있어서, 역사학이 왜곡한 과거가 우리의 앞날까지도 식민시대로 되돌릴 수 있음을 또렷이 보여줍니다. 고대사는 단순히 고대사가 아니라 우리 역사가 맞닥뜨린 현실의 벽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회칠한 무덤 한국 역사학이여!”를 외칠 광야의 요한과 나귀 탄 예수는 어디쯤 오실까요?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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