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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시는 내 인생의 처방” 삶을 사랑하는 박한라 시인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10.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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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20)
    대전문화재단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차세대 아티스타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은 개인 창작을 극대화 시켜나갈 수 있으며, 신진 예술가들은 서로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문화예술 인적 인프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7년 모두 24명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창작활동과 예술세계를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이 취재해 널리 알리고자 한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이십년 전 구름을 향해 꼬리를 들어 올린다
    지난 하늘로부터 헤진 털이 과거를 수신하고 있다

    햇살에 잘 말린 구름은 옛 사진첩에 앙금처럼 쌓여
    이미 신호의 귓바퀴가 부식되었다

    부드러운 털을 먹고 자란 무성한 시간은
    바람 가운데 오래 버려진 고양이를 낳았다

    보름달을 핥으며 서로 몸을 굴리던 하루들이
    생의 마른 비듬처럼 싸락눈이 되어 떨어진다

    고양이는 남은 털을 곧추세운다
    이제 계절을 탄 바람의 끝자락이 강신호로 내려올 것이다
            
     -박한라의 시 <고양이 안테나>중에서 일부

    시를 사랑하다
    눈부신 20대에 생은 멍들어 있었다. 푸른 잎새의 눈부심은 창백한 그림자로 남아있었다. 몸이 아파 6년여 동안 집에서 지냈다. 외출도 자주 하지 못했다. 그때 시가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가 간절했다. 대전문화재단 차세대 아티스타로 선정된 박한라 시인은 그렇게 시를 만났다.

    그녀는 지난 2014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양이 안테나’는 박시인의 등단작이다. 그 당시 시인은 당선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병으로 인해 개미 다리조차 튼튼해 보이고 부러웠던 시절,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을 때 오직 신과 시만 손을 건넸다. 이상했다. 약보다 시가 내 혈액을 돌아 나를 낫게 했다. 삶이란 이해되지 않으므로 오해할 수 있어 좋다. 그러므로 나는 시를 꾸준히 먹어야 오래 살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누구에게 처방을 받았듯이 더 큰 아픔을 주는 시의 처방을 내려주고 싶다.”

    시의 처방 덕분에 기운을 냈고 생의 의지가 조금씩 솟기 시작했다. 문학의 힘이라고 할까. 언어가 주는 치료의 감성 때문일까. 시의 세계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가를 돌아보는 것도 시인의 감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응모된 작품 중 눈에 띌 정도로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고양이 안테나>는 고양이털이 수신하는 주파수의 시적 발상이 신선했고 마지막까지 호흡을 놓치지 않고 시적으로 전개해 가는 완성도도 높은 작품이었다. "고양이는 털을 곧추세워 계절을 탄 바람의 끝자락을 강신호로 받아낸다" 같은 표현이나 "전파를 헤엄쳐 온 밤하늘의 음량이 점점 높아진다" 같은 시행은 숙련된 신뢰를 주었다‘며 심사위원들은 시인이 펼쳐갈 시의 세계를 응원했다

    논산에서 태어난 박한라 시인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시를 쓰며 대학강단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작품
    “좋은 시집을 비롯해 영화 소설 그림 사진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문화 텍스트들 접하면서 생각을 키워나갔어요. 김혜순, 김기택, 이재무, 이성복 시인을 좋아하고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는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영향을 뛰어 넘어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존재가 작가다. 시인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표현하면서 표현되지 않는’ 매력의 숨결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시의 언어를 찾는다.

    “등단할 때는 감각을 중요시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의 시 방향은 조금 달라졌어요. 현실을 표현하되, 현실만을 표현하지 않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기에 당대에 나타나는 현실을 담는다. 하지만 현실 너머의 ‘그 무엇’을 향해 시인은 눈길을 돌린다. 우리사회의 시인은 밑바닥에서 세상의 전제가 되는 정신이라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10월에는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달이다. 하지만 정작 시집 한권 소설책 한권 제대로 읽지 않는 모순에 빠져있다. 시를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박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가 생각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대부분 사람들은 정해진 현실에서 정해진 규정들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하지, 정해진 현실의 빈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낯설어 하고 있다고 봐요”

    그녀는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대학원 수업과정에서 문학회 활동을 많이 했고 여러 문인들과 교류를 했다. 앞으로 2-3년 후에는 첫시집을 발간하려고 작품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지만 아직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건 시의 언어다. 박한라, 그녀는 아직 시만 사랑하고 싶어하는 시인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낱말을 물었다 답으로 돌아온 건 기억 창문 감기 불가능 이었다. 기억은 삶을 지탱하는 긍정의 에너지다. 때로는 상처와 고통도 스며있지만 기억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그 색깔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창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이다. 풍경이 자리잡는 캔버스다. 여기와 저기를 나누는 경계이다. 때로는 현실과 이상의 접점이기도 하다.

    기억과 창문이 감성의 언어라면 감기와 불가능은 실제와 붙어있는 현실의 언어에 가깝다. 그 해석은 인터뷰를 한 작가의 해석이라는 점을 밝힌다. 아니면 독자의 몫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먼 훗날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삶을 사랑한 시인으로요”

    몸 안의 기후

    몸은 물과 얼음 사이를 펄펄 흘리며
    배고픈 색을 지어냈다

    나는 감각의 정상에 올라
    쌓인 감각을
    뿌드득 뿌드득 씹어 먹었다

    투명해지는 뱃속에서 첫 연인의 여운 같은 산통이 울렸다

    자신의 소리를 상상하다 아무도 모르게 지워진 산화자국 같이
    물러나는 온기를 잡기 위해 온몸을 세우는 이 결정은
    진저리 따위로 털어낼 수 없는 몸의 기후

    소금처럼 자라나는 하얀 신경들은
    눈이 눈을 받아내는 부대낌으로 더부룩하게 살아있다

    드디어 몸은 설산으로 늙어간다

    때로 낙엽은 귓바퀴 같아서 그 속을 후비다가 찾아낸 허기가 눈의 기원이다
    나를 전부 덮고도 날카롭게 바깥을 응시하는 눈부심이
    백색 비명을 지르듯 빈속을 찌른다

    결국 이 기후는 살며시 착상하듯 몸을 사윌 것이다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and3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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