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원도심 매력을 찾아온 2016년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원도심 매력을 찾아온 2016년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47) 오래된 이야기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6.12.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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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다사다난, 매년 한해를 보내는 시점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2016년 올해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해도 될 만큼 격랑의 시기를 보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탄핵정국은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민주적인 시스템을 돌아보게 했다. 아직도 혼란은 진행 중이다. 양파껍질 까듯 새롭게 등장하는 사실들은 연일 충격과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든다.

원칙과 기본만 지켜졌어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은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원칙과 기본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재는 하나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원칙이다. 본질에 가까운 정신이기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아무리 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원도심의 매력은 도시를 지키는 하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2016년 한 해 동안 만난 사람과 찾아간 공간은 변하지 않는 정신과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바뀌거나, 공간이 다시 꾸며져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손때 묻은 흔적과 여전히 남아있는 숨결에서 원도심의 향기는 찾을 수 있었다.
한해를 마감하는 ‘그것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에서는 2016년에 만나본 사람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먼저 서예가 바우솔 김진호씨다

묵향으로 원도심을 지키는 김진호
대흥동 골목을 한가로이 헤매다 보면 힘 빼고 춤을 추는 붓 한 자루를 만날 수 있다. 그 붓의 주인은 서예가인 바우솔 김진호 씨이다. ‘글 무늬 붓 사위’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작업실은 찾기가 쉽지 않다. 한참 골목 사이를 떠돌았지만 건물의 바깥 어디에도 먹향 가득한 공간의 위치와 임자를 알려주는 표시는 없었다. 겨우 찾아내 계단을 오르다가 만나는 ‘선물 같은 하루 봄 봄’이라는 글씨가 담긴 작은 액자가 전부였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목수 일을 하셨는데 좋은 글씨를 가지고 계셨어.”
아버지는 집을 지으면 그 집의 대들보에 직접 글씨를 썼다. 어린 서예가는 그렇게 아버지의 글씨를 보고 미적인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난했던 집 안에 혼자 남겨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일밖에 없었다. 다섯 살에 한글을 배우고 바로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던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했던 시간의 덕이었다. 그런 그가 나이가 들어 교단에 섰고 해직이 됐고 다시 복직을 했다.

그에게 글씨는 혼자 디자인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글씨는 생각이기에 생각에 따라 글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 사람을 만날 때 글씨가 달라진다. 그래서 글씨는 생물이라고 힘을 주었다.

바우솔의 글씨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정식 교육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서예는 보통 도제식 교육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의 글씨가 가진 유일한 전범은 아버지의 글씨였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글씨의 풍모와 시간과 공간까지도 글씨 안에 포함하는 역동성은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지금 보면 예전 글씨에 부끄러운 것도 많아. 지금은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 그게 뭐냐하면 말이야.”

예전에는 붓에게 30%를 내주고 쓰는 이의 의지가 70%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랬기에 붓을 뭉개기도 하면서 자신을 이루는 근본적인 뼈대를 지키려 힘을 더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힘을 빼고 살살 붓이 가는대로 쓰면서 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씨체가 ‘아버지 바짓가랑이’ 체이다.

“나이 들어 힘없는 아버지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살 걸어가는 모습에서 따왔지. 붓에게 더 마음을 준거야.”

그의 글씨는 탄핵정국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집회현장에서 현수막을 글씨를 쓰는 붓사위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그의 글씨를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의지를 갖길 바랄 뿐이다.
    
 

나무밴드 김유신 그리고 김나무    
대전을 기반으로 긴 시간 동안 블루스 음악을 해온 나무밴드는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이름만은 잊을 수 없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장군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음악은 흑인 음악이다. 블루스는 핍박받는 고단한 자들의 음악이다. 노예로 미국에 끌려가 고향을 그리면서 힘든 일을 할 때 주거니 받거니 불렀던 노동요가 그 출발이었다.

“저는 블루스가 고단한 역사를 가진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전에 들었던 음악인 김유신의 말과 함께 나무밴드의 1집 ‘세상의 모든 블루스’의 음악들이 떠올랐다. 낭창거리는 블루스의 리듬에 얹힌 것은 우리 전통 국악의 목소리였다. 그랬던 그가 직접 희곡을 쓰고 연출을 하고 극단의 일을 하면서 연극인이 되었다

“대전에서 작은 매체의 기자로 2년, 타이어 공장 노동자로 2년, 그리고 공부한다고 산에 들어간 시간도 있고, 그렇게 20대를 보내면서 뭘 해야 될지 고민이 깊었어요.”

그는 이미 ‘느티나무’라는 노래패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느티나무라는 이름은 사람에게 그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그때는 그랬다. 모든 것이 내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었다. 그러나 한 순간 많은 공동체가 해체된다. 우리의 일이 아닌 내 일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때처럼 마음 복잡한 시기도 없었어요.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내가 즐거워하고 재주가 있는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나무밴드의 뿌리는 이렇다.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노래를 끌어올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가 선택해 끌어올린 음악은 블루스였다.

이 과정에는 음악이라는 예술 행위는 같을지언정 예술 전반으로 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술에, 음악에 미쳐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예술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믿거나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예술지상주의자는 아니다. 자신과 세상이 소통할 수 있는 타협점으로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필연이나 운명이 아닌 선택한 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연극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연극이 재미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참 재미있는 예술이라고 느꼈죠.”

많은 예술은 과정이 있다. 영화는 카메라의 앵글을 거치고 음악은 악기와 시스템을 거친다. 그러나 연극은 아무런 장치 없이 바로 관객 앞에 선다.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배우와 관객 외에는 그 무엇도 없다. 이런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진짜 예술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2016년, 그는 음악과 연극을 넘나들면서 희곡작가의 신분으로 대전작가회의 회원이 됐다. 장르는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로서 그의 창작활동을 계속 됐다. 물론 대전 원도심의 작업실에서 말이다. 이름도 분신과 같은 나무로 개명했다는 점도 밝힌다. 내년에는 어떤 작품들이 탄생할지 주목해 볼 일이다.

기타퍼포모 이광구
예전에는 그저 시내라고 불리던 도심이었던 원도심 일대는 도심의 역할을 신시가지에 나눠주어야 했던 부침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은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자리 잡고 활동하기에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자연스레 문화예술인들이 모였으며 또 그들의 조력자들도 곳곳에 자리 잡았다. 문화예술 생태계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구성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대흥동의 수많은 업소들 사이에서 그들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쉽게 눈에 띄는 소극장과 갤러리 외에 개인이나 그룹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물어물어 대흥동의 구석구석을 헤매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또한 쏠쏠한 재미이다.   

‘기타 퍼포머’를 운영하고 있는 이광구 씨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형 중국음식점 주위를 몇 바퀴 돌아 그가 일하는 공간을 찾아냈다. 그는 흔치 않은 기타 수리 전문가이다. 이렇게 기타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사람으로 원도심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물론 대전에는 몇 명이 활동하고 있고 수도권에는 많은 수리점이 있지만 그는 대전 원도심의 문화와 직접 호흡하면서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퍼포머(performer)라는 말은 보통 연주자로 쓰이는 말이지만 명인이라는 뜻도 있는 걸로 압니다. 전문적으로 기타를 고치는 일을 시작한 배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밴드음악을 했습니다. 지금도 손을 놓지 않았어요. 대학 때까지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1986년에 대전으로 이사 왔어요. 오래 음악생활을 했죠. 생업도 있어야했기에 여러 곳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최근까지 기타교습소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교육 사업에 많은 사람과 기관이 뛰어들었어요. 그러던 중 일산에서 기타를 만드는 후배가 내 손재주를 보고 기타를 고치는 일을 추천했죠. 그리고 여러 기술을 전수해줬습니다. 생업으로 택한 일이고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음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서 아주 재미있습니다. 음악 하던 사람이 재미없고 자존심 상하면 오래 할 수 없죠.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다는 말은 주로 소리와 관련된 것이죠. 저는 기타만 수리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나무를 쓰고 똑같은 부품으로 조립한 기타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나와요. 또 연주자들은 그런 소리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죠. 이런 요소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합니다. 일렉트릭기타의 경우, 함께 구성하는 장비의 종류가 아주 많아요. 수많은 앰프와 이펙터 등 장비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변수가 있습니다.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기타와 장비를 조합하고 잡아내는 일은 공부를 많이 해야죠. 그래서 단순히 고장 난 기타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2017년에는 고장난 기타의 새로운 탄생으로 그가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지, 여전히 원도심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들이 많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
동양예술의 정수인 전각의 세계를 만나게 해준 덕산 김윤식 선생, 록의 정신으로 현실에 저항하는 프리버드, 원도심을 비껴서있는 유성 사람들, 그리고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사연들, 대전의 스토리를 찾아 나선 스토리투어, 대전의 최고와 최초를 찾은 대전기네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대전의 뿌리를 찾아나선 대전여지도, 대흥동 주택가에 생긴 작은 미술관인 미룸이야기, 대전의 문화잡지 토마토, 골목안 사연과 중앙로 이야기 등등 스토리밥이 만난 사연은 참으로 다양하다. 제각각 색깔과 향기는 다르지만 그들은 저마다 대전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여 있다. 다르지만 같은, 같지만 다른,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대전의 원도심이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한 이유다. 2017년에도 그 이유를 만나기 위해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작가들은 대전의 구석구석을 찾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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