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유성에 가면 과거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유성에 가면 과거를 만날 수 있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44) 을미의병의 효시 문석봉과 유생의 정신이 깃든 숭현서원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6.1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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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은 대전의 원도심에 흐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이 지면에 담았습니다 선화동 대흥동 은행동에 걸쳐있는 원도심 공간은 대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여전히 발품을 팔면 땅속에서 고구마 딸려오듯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전의 원도심 뿐만 아니라 도시 전역으로 걸쳐 시야를 넓히면 원도심과 어울리는 대전의 다양한 표정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도심의 이야기를 더욱 확장하려고 합니다. 먼저 유성으로 눈길을 돌려봤습니다. 온천과 과학도시로 알려진 유성에서 과거를 만나는 것 또한 반가운 일입니다. 문석봉 선생과 숭현서원의 이야기를 따라가 봤습니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문석봉 선생을 만나다
문석봉 선생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의 소식을 듣고 “천고에 없는 강상의 대변”이라고 분노하며 국모의 복수를 위해 의병을 일으켜 간적을 토벌하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같은 해 9월18일 바로 이 곳 충청도 유성에서 본격적인 의병 활동에 들어갔지요. 처음으로 문석봉 선생이 나섰기 때문에 을미의병의 효시라고 불립니다.

처음에는 문석봉 선생님이 을미의병의 효시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초 의병은 1896년 1월1일 경기도 이천에서 봉기한 이천의병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었죠. 그러나 이 것을 사학자들이 끈질긴 자료 추적으로써 마침내 문석봉 선생님이 구한말 최초의 의병장임이 확인됐고, 학계에 보고해 수정했지요. 국가보훈처는 1993년 8월15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사 교과서도 수정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사실 확인 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석봉 선생님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어요. 대구감옥에서 수감 중 감옥을 부수고 탈출해 다시 나라를 구하는 활동을 하다가 재수감되어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1896년 8월12일 현풍으로 낙향해 투병 중 그해 11월19일 46세 일기로 순국하셨습니다.

현재 문석봉 선생님은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전 유성구청은 2004년 유성시장에 ‘을미 의병의 효시 유성의병’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고 장군을 추모하고 있기도 하고요. 앞에서 유성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앞으로 유성시장에서는 문석봉 선생님의 기념비가 있는 곳을 한 번 들렸다 가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유성에서 들고 일어나 한 몸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고 다시 유성에 묻힌 문석봉 선생님. 지금 이 나라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얼마나 소중히 다뤄야 할 나라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 공간, 숭현서원
미래를 개척하는 과학의 도시 유성에 시간이 거꾸로 흐른 공간이 있습니다. 과거 유생들의 지혜와 선비 정신이 남아있는 서원인데요. 유성구 원촌동에 위치한 숭현서원으로, 도산서원을 포함해 대전 3대 서원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서원이 어떤 곳인 지는 다들 알고 계시죠? 이른바 선현들을 제향하며 넋을 기르고, 제자들이 학문을 연구하는 사설교육기관입니다. 미래의 과학과 과거의 선비 정신이 어우러지니 유성은 그야말로 시대의 지혜를 담은 고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숭현서원에서 모시는 유생은 모두 8명. 처음에는 수부 정광필,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선생의 위패를 모셨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됐죠.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 해 대전의 유학자들인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 송시영, 이시직 선생을 배양하며 모두 8명의 현인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유학자들이 여기서 학문을 연구하고 지혜를 찾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의정을 지내며 재상의 도량을 보인 수부 정광필, 조선 중종의 충신이자 향약보급에 앞장선 충암 김정, 인애와 덕행으로 백성을 교화했던 학자 규암 송인수 선생, 충청의 대표 유학자이자 기호유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선생, 회덕의 큰 선비이자 고결한 선비정신을 지녔던 동춘당 송준길 선생, 대의명분에 따라 강직한 삶을 살았던 유학자 우암 송시열, 병자호란 이 일어나자 오랑캐의 굴욕을 피해 강화도에서 순절한 야은 송시영, 나라를 향해 충절과 공덕을 쌓은 문신 죽창 이시직 선생이 숭현서원에서 제향하는 성현입니다. 숭현서원은 8분을 배향한 서원으로 ‘팔현묘’라고도 불립니다.

안타깝게도 숭현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를 맞아, 묘정비만 남게 됩니다. 이를 대전시가 1995년부터 2001년에 걸쳐 복원·정비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숭현서원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옛조상들을 보며 자신을 본다
푸르른 나무로 둘러싸인 서원은 선비들이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시를 읊조리렸던 영귀루. 광해군 9년에 건립한 선비들이 강학을 하던 강당 입교당, 숭현서원의 내력을 적은 숭현서원 묘정비,  숭현서원의 유생들이 귀거하던 서편과 동편, 등이 놓여 있는데요.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설원으로 뒤덮힌 도심 속 서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냅니다.

어느 계절이라도 좋습니다. 누구와도 좋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도심 속 과거의 지혜와 역사가 담긴 숭현서원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원촌교를 지나 솔로몬로파크로 가는 좁은 길, 그 안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과거의 공간 숭현서원. 선비들의 자취가 묻어 있는 곳곳 사당과 마당까지. 그 하늘과 나무 아래서 오늘날 나의 모습을 사색해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일 듯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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