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개신교 ‘흑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보수 개신교 ‘흑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보수 정권·개신교 유착 단면 드러낸 12.12만찬 회동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9.12.15 1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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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전두환·이순자 씨 부부가 서울 시내 고급 중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며 큰 파장이 일었다. 이 자리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원로목사도 모습을 비쳤다. ⓒ JTBC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지난 12일 전두환·이순자 씨 부부가 서울 시내 고급 중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며 큰 파장이 일었다. 이 자리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원로목사도 모습을 비쳤다. ⓒ JTBC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지난 12일 전두환·이순자 씨 부부가 서울 시내 고급 중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며 큰 파장이 일었다. 마침 이 날은 12.12.사태 4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날을 기리기라도 하듯 전 씨 부부 외에 최세창 당시 당시 3공수여단장, 정호용 당시 50보병사단장 등 신군부 ‘올드 보이’들이 영상 속 모습을 드러냈다. 

    여론은 공분했다. 무엇보다 전두환 씨가 광주5.18민주항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다, 법정에 서야 하지만 알츠하이머를 핑계로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영상을 찍은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도 1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12.12가 어떤 의미를 갖는 날인지 본인들도 당연히 자명하게 알고 있을 텐데 이게 우연히 이런 날짜에 오찬을 즐겼다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변명"이라며 "특히 군사 반란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 언도까지 받은 전두환 본인이 이 날짜를 망각하거나 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원로목사다. 김 목사는 늘 보수 정권 가까이에 있었다.  

    이 같은 인연은 박정희 정권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교롭게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씨가 탄핵으로 궁지에 몰리자 민심을 듣겠다며 불러들인 이가 바로 김 목사였다. 

    보안사 철통 경계 속 화기애애했던 두 사람 

    김 목사는 전 씨와도 오랜 인연을 유지해왔다. 김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에선 김 목사와 전 씨의 인연이 자세히 나와 있다. 김 목사는 전 씨가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휘하에서 차장보로 있을 때 교분을 맺었다고 한다. 

    잠시 당시 역사로 되돌아가보자. 12.12는 권력 내부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쿠데타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면서 급부상했다. 전 씨는 5.16 쿠데타 이후 이를 지지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가행진을 주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고, 줄곧 권력 내부와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건 10.26 직후였다. 

    한편 고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민주화 열망은 높아졌다.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당시)은 긴급조치를 해제하고 가택연금이나 수감 중인 야당 정치인을 풀어줬고, 그래서 민주화는 당연한 수순 같아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고 박정희는 군을 통치기반으로 했다.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한 뒤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는 척 했지만 말이다. 사실상 박정희는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은 데 불과했다.

    박정희 서거로 갑작스런 공백이 생겼지만, 권력은 여전히 군의 수중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군을 누가 장악하느냐였다.

    그 답은 40년 전 12월 12일 분명해졌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하는 신군부는 박정희 수사를 빌미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했다. 자연스럽게 군권은 신군부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전두환에게 다음 수순이 청와대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이후 사태전개가 그랬다. 12.12. 이후 전 씨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고 권력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 김장환 목사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이던 전 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였다. 앞서 언급한 김 목사의 전기는 당시의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5월 초 신록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김장환 목사의 인계동 집 정원에서 전두환 위원장은 실로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보안사 요원들이 집을 빙 둘러싸고 있어 바깥 분위기는 긴장이 감돌았지만 식사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1980년 5월은 신군부의 권력 찬탈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시기였다. 더구나 김 목사와 전 씨가 회동을 가진 시점은 광주5.18민주항쟁의 비극을 눈앞에 둔 때이기도 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김 목사와 전 씨는 보안사 요원들의 철통 경호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한 번은 전 씨가 광주항쟁과 관련해 김 목사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무법천지'라는 답변만 남긴 채 침묵했다. 

    1980년 8월 한경직·정진경·김준곤 목사 등 보수 개신교 지도그룹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당시)을 서울 시내 유명 호텔로 불러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고 그를 축복했다. 전두환 왼쪽에 앉은 이가 한경직 목사. ⓒ 유투브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1980년 8월 한경직·정진경·김준곤 목사 등 보수 개신교 지도그룹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당시)을 서울 시내 유명 호텔로 불러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고 그를 축복했다. 전두환 왼쪽에 앉은 이가 한경직 목사. ⓒ 유투브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개신교는 전두환의 부상 과정에서 실로 부끄러운 흑역사를 남겼다. 가장 대표적인 흑역사가 1980년 8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였다.

    한경직·정진경·김준곤 목사 등 보수 개신교 지도그룹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당시)을 서울 시내 유명 호텔로 불러 축복했다. 

    전 씨의 종교는 가톨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 씨는 재임 기간은 물론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보수 개신교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앞서 언급한 김장환 원로목사 전기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도 했고, 김삼환 원로목사가 시무하는 명성교회에 출석하기도 했다. 

    김장환 목사와 전 씨와의 유착 역시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흑역사다. 그랬으니 김 목사가 12.12. 40주년 만찬장에 얼굴을 비춘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12.12 주역에게 전 씨는 여전히 각하였다. 김 목사 역시 전 씨를 각하라 부르며 돈독함을 과시했다. 보수 개신교와 보수 정권의 유착이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상징적인 장면이라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와 추종자들의 '반체제'(?) 활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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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석봉 2019-12-16 14:03:28
    명망있다는 종교지도자들이 사리판단이 평신도 보다 못했어야...성령의 사람이 아님을 드려내어 증명해줬네~
    (마18:6 )그러나 만일 나를 믿는(하나님)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든지간에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