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⑤
[연재소설] 설화(雪花) ⑤
  • 유석
  • 승인 2015.04.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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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미란은 즐길 것은 다 즐기는 여자였기에 헛된 돈이 나가고 있는 것을 생각 할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뜯기는 돈은 별도였다. 그녀는 놀고먹는 습관이 몸에 배다보니 툭하면 단란주점 아니면 '나이트' 가기를 자주 원했다. 지수가 그녀를 도우미로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의 밥먹듯이 내 뱉는 쌍욕은 여전했다. 뭐? 네가 화가가 되겠다고…? 지금, 개 풀 뜻어 먹는 소리 하지 말 어! 그 말끝에 화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렇게 사소한 일로 싸움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애꿎은 화분들만 포탄이 되어 하나 둘씩 쓰러졌다. 남편에 대한 증오심으로 다희의 차별은 더해만 갔다.

막상 어린 딸을 생각하니 부녀는 매서운 얼음판 위에 벌거벗겨 던져져 오갈 데 없는 모습이었다. 또 한 번 지난날을 후회했다. 재혼의 사랑은 실패한 사랑에 대한 보상과 함께 식어진 심지에서 더 뜨거운 불꽃이 솟아 날 줄만 알았었다.

차디찬 심지가 여전히 뎁혀지지 않아 냉기만 돌고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지난 과거를 떠 올리며 후회했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딸을 시설에 맞기고 돌아서고 싶은 생각도 스쳤으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고아를 만들어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비참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자 무언가 또 다시 아른거렸다.

현실의 냉정한 정점에서 더 이상 얼어들어가지 않기 위해 봄을 알리는 훈풍을 기다려보았지만, 여전히 빙점에서 맴돌다 사라지기 일쑤였다. 어쩌다 매서운 강풍이 불어 닥칠 때마다 빙점에서 추락해 얼어들어가는 인생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지난날 설화와 처음 동해로 여행을 떠났을때였다. 두 사람은 정동진에 들러 반쪽으로 나누어진 '핫트' 모양의 ‘크리스탈’ 기념품 조각에 서로의 이름을 새겨 평생 헤어지지 말자는 증표로 나누어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삶이 괴롭고 고달플 때마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다행이 미란은 폭언을 하고 성질은 사나워도 남편의 개인소지품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 여자였다.

그런 안심도 한 순간 일뿐, 또 다시 갈등이 일었다. 이내 참을 수 없어 다희를 입양 보내고 미란과 헤어지고만 싶었다. 미란의 냉정한 행동에 이미 정이 떨어진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그의 마음을 잡아준 것은 오직 다희였다.

그런 딸에게 미래의 꿈을 이루어주지 못할 것 같아 가슴이 메어지자 어린딸이 더 불쌍해보였다. 인간에게 삶의 사탕이 달콤하면 당장 아니, 그 언제라도 자신의 뒤에 숨어있는 악마가 극도의 음모를 펼쳐놓을 가시망을 꾸며도 그것을 남의 일인 양, 운명의 수수께끼 장난쯤으로 알고는 무심코 넘겨 버리곤 만다.

삶의 쓴 맛은 자신의 업이 아닌 그 누가 시샘하여 유혹하고자 또 다른 달콤한 세계로 이끌어 내는 모함 같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는 현실이 최고의 행복으로 알고 있어야 함에도 극도의 고통이 따르다보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후에 잘못한 댓가에 대한 고통의 응보를 몇 배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눈앞에 펼쳐있는 올가미에 걸려있는 것은 눈에 보일 리 없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사랑의 거품에 빠져 들면 누구나 헤어나기도 힘든 줄 알면서도 나약한 인간이다보니 앞에 놓인 운명의 함정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미란을 만날 때도 그러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지금에 와서 운명에 항의하기조차 부끄러울 뿐이다.

운명이 그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삶의 틀에서 이탈하여 악마의 소굴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자유를 방종한데 따른 응보의 댓가는 이미 평생토록 잊지 못할 한의 상처가 되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다희는 못난 아빠로 인해 속죄의 제물이 되어야 했다. 하늘이 내려 준 마지막 시련의 관문으로 생각하자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늪을 건너야 하는 험난한 인생의 거미줄을 새롭게 다시 쳐놓고 언젠가 보복의 통쾌함을 기다리고 있는 한맺힌 독거미가 되고자 했던 것도 어쩌면 고통 속에 그가 걸어온 발자욱들이 보내는 매서운 눈초리였을지도 모른다.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깡마른 낙엽 속에 다희를 숨겨놓고 철저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차후 문제로 넘기다보니 당장 혼인신고가 급선무였다. 그래야 다희 출생신고가 원만히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누리가 유치원을 나갈 때 마다 그의 가슴은 메어졌다. 다희도 머지않아 유치원을 들여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싸움에 이어 두 사람의 감정이 한동안 끓어오르더니 결국  끝자락에서 마주보며 달려오는 기관차가 되었다. 갑자기 앞에 있던 게발 선인장 화분을 들어 날리더니 곧바로 지수의 화실로 뛰어 들어가 붓을 꺽어 버렸다.

두 아이들은 자주 보는 광경이라 놀라지도 않았다. 3살 더 먹은 누리가 다희에게 다가갔다. 네 아빠 때문이야! 갑자기 어린 뺨에 고사리 손의 폭력이 가해지면서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아이가 울음보를 터트리자 남자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때 갑자기 다희가 지수 품에 안겨들자 누리가 자신의 외할머니인 전미영에게 급 타전을 보내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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