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⑥
[연재소설] 설화(雪花) ⑥
  • 유석
  • 승인 2015.04.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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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박서방! 이럴 바에야 일찌감치 헤어져!”
 “나도 그러고 싶지만, 당장 돈이 없어 이러고 있는 거예요!”
 되받아치는 말에 멈칫거리자 미란이 바톤을 이어 받았다.
 
“그건 네 사정이야, 이 병신아! 지금 네가 옛날 네 마누라 빚 갚아주느라 허둥대고 있는 판에, 나를 밥해주고 빨래만 해주는 도우미쯤으로 알고 있는 거야…? 네가 여자라면 그렇게 살고 싶겠어…?”
 “다희는 생각 안 해…?”

 “저 계집애도 엄연히 네 새끼야!”
 “그래…?”

 “그렇지 않구, 네가 뿌린 씨 아녀…?”
 “….”

 “그래, 잘 됐어! 이래저래 너희들은 함께 살 수 없으니까, 일찌감치 헤어져! 게다가, 지금 저 계집애 출생신고는커녕,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있는데, 더 이상 뭘 두고 보겠다는거야. 나구장창 눈만 뜨면 쌈박질하며 사는 것들이…”

두고 봐도 두 사람의 심지에서 회복하려는 불씨가 피어오르기는커녕, 매일 싸움질만 해대는 모습을 지켜보던 전미영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딸에게 잿밥을 먹일지언정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자 무게를 견지지 못했던 요람의 저울추가 스스로 어미의 품으로 기울고 있었다.

제 삼자가 듣기에도 백번 천 번 옳은 말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매번 미란이 발목을 잡으며 내놓으라는 위자료 3천과 양육비 때문이었다. 보상금은 1년에 천만원씩 제 마음대로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 말한 대로 지수가 도우미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3년을 넘게 생활해온 그로서는 희망이 없었다.  두 모녀의 무책임한 폭언은 스스로 어린 다희마저 포기한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확고한 결단 끝에 갈라서는 것도 아니었다. 미란은 여전히 자신의 욕망을 다 채워나가는 여자였다. 그 와중에 좋아하는 옷과 음식 등 여행을 즐기는 여자였고, 밖에 나가 눈에 들어오는 꽃이라도 발견하면 언제 어디서든 사들고 들어와 자신의 취미를 만끽하는 여자였다.

반면에 남편이 이루고자하는 화가의 길은 극구 반대했다. 매번 그 주제에 환쟁이의 꼴이 보기 좋겠다며 통째로 자존심을 깔아 내리기 일쑤였다.

그 말은 과거 어려운 가정에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가고 있는 그의 가슴에 화살을 내리꽂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는 미란은 스스로 악처임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지수는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도 미란에게 해 줄 것은 다 해 주었다. 그녀의 등살에 안 해 주고 살수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커플반지는 물론, 계절마다 갈아 끼울 수 있는 팔찌와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그가 해 줄 것은 다 해주었다. 그가 금전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것 이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낳지 않은 누리까지 부양해왔다.

그것이 가혹한 형벌이 되어가면서, 깊은 늪에 빠져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싸움은 끝나지 않아 급기야 전미영의 가세로 재란 까지 끌어 들였다. 그녀 역시 허구한 날 싸움질들만 해대는 두 사람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화살은 지수에게 먼저 날아갔다. 돈도 많이 벌어다주지 못하면서 주제에 하는 꼴이 눈에 차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미란을 감싸고돌았다. 헤어진 설화의 빚 갚아주느라 혈안이 되어있는 남자에게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미란을 옹호하고 나섰다. 설명을 해 주어도 목소리만 높일 뿐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만 더 차갑게 얼어 들어갔다. 일방적으로 남자의 잘못으로만 돌리면서 가혹하게 밀어부치자 남자는 또 다시 치밀어 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남자의 사정을 알고 만났으면 현실을 이해하고 고통을 함께 나눠 받으며 참고 살 줄 알았었는데, 어쩌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화근을 불러들인 것을 놓고 가슴을 내리쳤다.

뒤늦게 사랑의 가지를 잘 못 앉은 댓가의 형벌은 너무나 가혹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처가 일으키는 삭풍은 말 그대로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그해 겨울 달콤한 백설의 정체 속에 숨어 들어와 가증스런 음모를 펼쳐 놓을 줄 꿈에도 몰랐다.

당시 물에 빠진 남자의 운명은 떠 나간 설화의 자리가 되어 주고 있었기에 의지와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었었지만 미란의 영악한 간교를 당할 수 없었다. 그 가증스런 수법으로 남자를 차가운 얼음장으로 밀어 넣은 채 돈에 굶주린 한 마리 전갈이 되어 나구장창 자신을 괴롭혀 댈 줄은 몰랐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었던 남자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욕에 불타는 꼬리를 흔들어가며 순진무구한 남자에게 독을 쏘아대는 전갈이 되어 자신의 야윈 몸을 철저하게 파먹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날이 갈수록 악처의 욕심은 하늘을 찔렀고, 하는 짓은 갈수로 태산이었다. 그녀는 부족한 남자의 경제력을 탓하며 비수를 내리꽂히는 말을 서슴없이 해댔다. 결국 진퇴양난에 이르자 포기하고 어디론가 홀가분히 도망치고 싶었지만 당장 그럴 수도 없었다.

어린 딸을 생각해서였다. 자나 깨나 다희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혼인신고가 급선무였다. 그에게 다희는 어떤 책임감보다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있는 그에게 한 가닥 반딧불 같은 작은 희망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딸은 그에게 불안한 현실을 거두어내는 유일한 등대이며, 내일 날에 상상 속 ‘율도국’ 같은 둥지의 존재였다.

거꾸로 돌아가는 악마의 시계바늘 사이에 끼어 꼼짝달싹 못하는 포로가 된 상황에서 말 못할 경제력에 돌파구가 없자, 아픈 머리가 더 무겁게 내리 눌렀다. 미래가 안개 속에 갇히다보니 복잡한 고뇌의 갈등 또한 풀어질 줄 모르고 꼬여만 갔다.

“이 세상 여자들은 다, 돈 쓰는 재미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거 몰랐어…? 특히나 재혼한 여자들에게는.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 왜 태어났어…? 먹기 위해 태어난 거 아냐…?”

가관이었다. 악처의 본질은 시도 때도 없이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고, 두 자매가 나구 장창 먹자타령만 해 댔던 것도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친김에 못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먹자타령을 꼬집어 뜯어 훑어 내리자

반박이 들어왔다. 마음껏 써보라며 내어 줄 수 있는 넉넉지 못한 남자의 아픈 곳만 찔러대며 헐 뜻었다. 남자가 한 주일에 일이십 만원 쓰는 것은 보통이라며 가뜩이나 망가진 자존심을 통째로 짓밟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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