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⑦
[연재소설] 설화(雪花) ⑦
  • 유석
  • 승인 2015.04.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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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입장을 전혀 생각지 않은 독선이었다.
흉허물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면서, 재란은 한 술 더 떠 다희를 낳아준 것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랐다. 오히려 미란이 불쌍하다며 없는 말 있는 말을 보태가며 쏟아 놓았다.

남자의 빚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중간에서 미란을 조정했다는 것까지 밝혀지자 또 한 번 가시 같은 증오심이 치밀어 올랐다. 이때 조건이 튀어 나왔다. 미란의 뜻을 따라 교회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가정의 화목과 평화였다. 가정평화를 이유로 종교를 핑계 대는 것이 가관이었다.

지수는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산을 만나게 되자 또 다시 후회가 밀려왔다
그토록 재혼녀가 돈만 찾아 댈 줄은 몰랐고,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앉자 제 마음대로 흔들고 있는 것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시련의 겨울이 혹독하게 다가오자 갑자기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전히 설화에 대한 미련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비록 불가능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그렇게 되어 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만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더라도 그렇게 되고만 싶은 것은 처절한 피해의식에서 일어나는 연민이라기보다, 지난날 꽃 진 대궁의 메마른 사랑의 밑뿌리에서 한 방울 남은 생명수 한 모금 흘려보내며 몸부림치고 있는 그런 심정이었다.

진정 거짓 없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회한의 그리움이었다.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닌 후회의 끝자락에서 나온 절대 절명의 기다림이었다. 그것이 그가 재결합을 이루고 싶어 하는 진정한 동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모한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작정 설화가 보고 싶어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처절함에 밀려오는 극박한 몸부림이었다. 결국 영원한 고통을 뿌리치기위해 참을 수 없는 현실에 이끌려 점점 기울어가고 있다 보니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설령 거기까지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차디찬 북쪽하늘의 은하수가 따뜻한 남쪽 나라를 그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듯, 단 한번만이라도 설화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리움에 대한 기다림이 무모하다 할 정도로 오다가다 이성의 상대로 만나 생각 없이 대리만족 하려했던 못난 남자가 악녀의 덫에 걸려 들다보니, 탈선이니 막장으로 들어갔느니 떠들어대며 손가락질당하는 자체도 두려운데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을 주최할 수 없었다.

스스로 못난이라는 것을 자인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순진무구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의 결함이 문제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를 일방적으로 단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누구도 벼랑 끝에 서 있는 그가 과거의 감춰진 삶의 진주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번째 선택한 가정도 파탄 나고 있다 보니 딱히 아무 곳이나 발을 내 디딜 수 없는 그로서는 그 선택이 회귀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어리석게도 미란을 만나기 전 세상의 모든 이혼당한 여자들이 재혼의 길에 들어서면 ‘동병상련’ 식으로 남자의 안식처가 되어줄 것으로만 믿고 있었다.

후에 원만치 못한 가정사와 함께 본능적인 욕망을 풀지 못하는 현실에서 당연, 욕구불만에 따른 충분한 타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무엇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해방 시키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암울한 현실 앞에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동정마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인생에 대한 부끄러움이 그의 목을 더욱 내리 눌렀다.

동정의 바라기 열남도 아니고 피폐한 현실의 거미줄에 감겨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폐인의 자화상은 시대의 아픔으로 돌리기에는 그의 앞에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큰 장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태성이 과감하지 못한 것도 그가 버릴 수 없고 숨길 수 없는 단점이라지만 주변인들이 그를 바라볼 때는 그런 뜻에서 일러준 것이 아니었다. 결코 막살라는 것도 아니었다.

이 시대는 적당히 즐길 줄 알면서 살아가야 자신에게 손해 안 보고 스트레스 덜 받고 살아갈 수 있는 현명한 길이기에, 주변사람들이 하루 빨리 탈출하여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권유했던 것이었다.

자신도 철저하게 고지식한 성격을 고수하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금희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가정도 가정이지만 남자의 본능적 욕구불만에 따른 안색을 바라볼 때 마다  치밀어 오르다보니 밖으로 나가 대리만족을 하도록 유도했던 것이었다.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 가기위해 극도의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홀로 최선을 대해 지켜내려 하는 것이 바보천치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상이 그러한 사람에게 동정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보 취급만 당할 뿐이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미란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여자일지도 모른다.

남녀 불문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부부도 돌아서면 남이라는 것을 미란은 일찌감치 깨달은 여자였기에 챙길 것은 다 챙겨가며 즐길 것은 다 즐기는 여자였다. 원초적으로 착한 본능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지수와는 전혀 다르게 제 마음대로 세상을 활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지수는 오히려 자신이 겪는 고통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그 어떤 시험과정인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어 주변사람들로부터 원망의 화살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동안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우려 뒤에는 희망의 싹도 함께 자라나듯, 결국엔 그도 오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서서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구명정을 기다리며 사랑의 고백을 해대는 밤찬 노숙자의 모습과도 같은 한 맺힌 차가운 고드름을 씹어가며 서릿발의 증오를 키우는 모습이 그러하듯 갑자기 미란에게 보복을 하고 싶은 생각이 칼끝처럼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설령, 설화가 살인죄를 저질렀더라도 무죄를 밝힐 만큼의 용기의 깃발이 펄럭이는 그리움이 자신도 모르게 꼬집어 뜯고 있었다.
현실의 거울이 되어야 하는 미란이 여전히 희망의 고개를 들지 앉자 설화에 대한 원망의 화살이 자신도 모르게 그리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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