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⑧
[연재소설] 설화(雪花) ⑧
  • 유석
  • 승인 2015.04.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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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재혼에 실패한 남자가 판단의 나뭇가지를 잘 못 앉은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고통 속에 희망의 부활을 알리는 재기의 날개가 그러하듯, 꿈틀거리며 일어나고자 하는 내일의 날개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하는데, 여전히 현실이 그를 외면하고 있어 인내의 시간은 더 필요했다.

누더기 같은 인생에 대한 구제를 바라고 있으나 주변에 건져 올려 줄 나룻배는커녕, 구명정 하나 띄워줄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불어왔는지 또 한해의 봄바람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미동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바람이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여줄 사랑의 훈풍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숨겨둔 반쪽짜리 '핫트'를 만지작거리며 시름을 달래자, 잃어버린 다이아몬드빛 사랑의 그림자 뒤로 일그러진 옛 설화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지나갔다.

지난날의 설화는 유난히 음악을 좋아했다. 그중 팝송들을 좋아했다. 미란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예전의 설화와는 달랐다. 그는 그것을 궁금해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너무 차갑고 냉정하기 때문이었다.

문득, 지난날 설화가 잘도 불렀던 팝송이 뇌리에 스치자 어느 해 봄날의 추억의 영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샛별이 아빠! 이리 좀 와 봐요. 작년가을에 우리가 뿌려놓은 야생화 꽃들이 함빡 올라오고 있어요! 지금은 반쪽짜리 봄의 여자가 되어버린 설화를 그리워하며 회상에 잠겼다.

그러기를 얼마나 흘렀을까. 적막감만이 맴도는 방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망중한에 빠져들은 자신을 발견하자 현실은 여전히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난파선이었다.

생각해보니 결국 두 사람의 부부관계와 종교문제도 재란이 꾸며놓은 술수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한, 그녀의 남자관계도 재란이 밖에서 즐기도록 유도했다는 것 까지 드러나게 되자 싸움은 전미영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가 아무리 빚을 많이 졌어도 남자가 여자를 위해 남자답게 책임지기를 바랐다.

그것이 진정한 가장의 몫이라며 몰아붙였다. 빚에 빚을 져서라도 딸의 뜻을 따라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부부간에 정도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이다 보니 이판사판이었다. 지금까지 미란한테 당했던 지난 일들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오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부부관계를 요구하면 미란이 보약을 들먹이며 관계를 맺는다며 그녀의 상습적인 행동을 싸잡아 들이대자, 전미영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로 두둔하고 나섰다.

“남들은 너보다 더한 형편에도, 장모한테 봄가을 합쳐 일 년에 두 번씩 보약까지 챙겨준다더라!”
가관이었다. 그 어미의 따고 뱃장식의 뻔뻔함이 두툼하다보니 그 뱃살만큼이나 염치도 모르는 욕망의 ‘카펫’이 순간에 거실에서 현관까지 깔아지고 있었다.

이어 혼수품 이야기까지 튀어 나왔다. 요즘 의례껏 주고받는 답례의 유행을 핑계 삼더니 혼인신고와 아이의 출생신고는 차후 문제라며 밀어붙였다.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는다는 것조차 모르는 그녀의 철면피 술수를 마냥 바라만 볼 수만은 없었다.

지수는 기가 막혔던지 할 말을 잃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장모의 말이 너무 충격적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자신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는 늪 속에 빠져들었는지, 한 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갑자기 극단적인 생각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도 처음부터 사랑의 날개가 부러져 자신의 운명이 사막의 땅에 불시착 할 줄은 몰랐다.

지독한 악처를 만나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수장되어 갈 줄은 몰랐고,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 날뛰는 사막의 전갈 같은 미란에게 벌거벗긴 채 뜯어 먹혀 만신창이가 되어 갈 줄은 몰랐다.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할 것 같은 현실이 길 잃은 조난자의 신세 같았다.

밤하늘에 좌표 없이 길을 찾아 헤매는 짝 잃은 외기러기의 운명처럼…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와도 잠 못 이룬 채 박제가 되어가는 비운의 사나이처럼… 그런 기구한 운명이 될 줄은 몰랐다.

그가 깨달았을 땐 이미 파도치는 창파위에 불안하게 떠다니는 마른 낙엽의 신세보다도 더 못한 운명이 되어 버린 뒤였다.
새벽의 별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헤어진 피붙이들의 눈동자들이 그 뒤를 따라 은하수처럼 다가오면… 그러다 날밤을 지새운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동토의 땅에서 짝 잃은 외기러기가 되어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몰골조차 보기 싫어졌다. 행여, 제 이름 받아 요람 밖으로 튕겨져 나온 날부터 험한 인생의 항로를 걸어오며 스스로 세상을 속여 가며 살아오지도 않았건만, 무엇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크나큰 태풍을 만나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지 그 원망에 대한 욕질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모순된 괴리가 낳은 사랑의 폭력을 맞고 변방으로 쫓겨난 불행한 사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한 없이 비통해 했다.

지난 날, 일 년 열두 달이 사랑의 명절 같았던 날들에, 설화와 마주보며 감아놓은 빛바랜 이야기 타래의 환영들이 미란이 쳐 놓은 서릿발 문발에 기대어 점점 사라져만 가고 있는 지금, 어쩌다 사랑의 날개가 부러져 나갔는지, 하염없이 떠도는 회한에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지독한 전갈을 밀쳐내고 어디론가 도망치고만 싶었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자유의 욕망은 그 어떤 해방의 이름보다 위대할 수도 있기에, 그 행복이 되어 줄 수 있는 어떤 끄나풀을 그는 찾아 나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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