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소설] 설화(雪花) ⑫
    [연재소설] 설화(雪花) ⑫
    • 유석
    • 승인 2015.05.20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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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2장 결빙의 시간들 - 자유부인

    미란은 궁지에 몰리게 되자 갈등이 일었다.

    초조함의 빗장이 삐거덕거리며 빠져나가면서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자 순간 모든 걸 팽개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만 싶었다.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금희가 돌아서려는데 미란이 알바 일을 나가겠다며 입을 열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나라도 벌어야 월 셋방 신세 면할 거 아냐…? 그렇다고 구질구질하게 식당 같은 데는 안 나갈 테야.”

    난감했다. 그것은 배짱이었다. 그럼, 어떤 데를 나가겠다는 거야…? 금희가 묻자 묵답으로 일관했다. 다희를 시설에 맡겨야 하는 문제가 걸림돌이 되다보니 그 돈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데다, 흔 하디 흔한 식당 같은데 나가봤자 별 소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핑계였다. 미란은 한 발 더 나아가 얼마 안 되는 돈 가지고 보육비 내고 나면 자신이 쓸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일침을 놓았다.

    가뜩이나 씀씀이가 헤푼 그녀로서 웬만한 일자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나, 주점에 나가서 서빙 볼거야! 또 다시 튀어나온 황당한 말에 금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지수를 만나기전까지 오랫동안 카페주점에 나가 일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술과 담배를 거리낌 없이 해 댔던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금희는 괜한 돈 이야기를 꺼냈다는 후회의 또아리에 스스로 꽁꽁 묶여가고 있었다. 미란이 자신이 벌어서 마음대로 쓰겠다는 생각에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찍이 제 남자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여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미란은 지금까지 자신이 하겠다는 것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행동에 옮긴 여자였다.

    때문에 일을 나가면 얼마동안 나갈지 한두 달 다니다 그만 둘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늘 제 멋에 살고 발장구치는 장난에 맞춰 바람 부는 대로 살기를 좋아하는 여자다보니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 누구에게든 구속당하지 않고 자유를 생명으로 여기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여자를 더 이상 건드린다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은근히 지수를 괴롭힌 것은 또 있었다.

    미란은 마음이 울적 할 때나 답답할 때면 지수를 졸라 직장에서 조퇴를 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바람을 쏘여 주기를 바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지수는 그녀의 뜻을 거절 할 수 없어 꼼짝없이 들어 주어야만 했다.

    그 결과 연말에 법적으로 정해진 휴가일수를 다 써버려 월급에서 휴가를 쓴 날수만큼 보수를 삭제하는 고통을 겪다보니 당연 그 달의 부족한 생활비는 카드를 긁어 채워주어야 했다.

    그래도 미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편의 자존심만 긁어대기 일쑤였다. 하루 벌어 열흘 먹니…? 가끔 빠져서 인생도 즐기는 거지.

    걸핏하면 직장 나가는 남자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꺽어 내렸다. 지수가 갑자기 치미는 신병 때문에 골머리를 아파하자 그녀가 또 다시 병원을 가보라며 다그쳤다.

    그의 병은 이미 치료할 수 없는 병이기에 대책이 없었다. 한 때는 그의 병이 신병이라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어야한다는 말까지 나돌기까지 했었다. 현실이 참담하다보니 때로는 그 길도 신의 뜻이라면 가고도 싶었지만 그 보다 무당이 되면 돈을 잘 번다고 하기에 차라리 그 길을 택해 미란에게 돈의 원수나 갚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생각했던 결과였다.

    문제는 그 길 또한 자신과 싸워 이겨내야 하는 외롭고 고달픈 길이기에 선뜻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금희가 미란을 다그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수의 앞날은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후 미란은 자신의 생각대로 아이들을 정리하고는 인근 도시에 있는 수원의 한 단란주점에 나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정이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집안에는 여전히 증오의 분진이 떠돌아 다녔고 그 속을 헤치며 살아가는 남자의 마음은 늘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불안과 초조함은 더해만 갔다.

    당연 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의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마음은 편했다. 우선 그 지긋지긋한 그녀의 돈타령 소리를 듣지 않아 좋았고 오후만 되면 나는 먹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며 어떤 형태로든 먹거리를 찾지 않아 좋았다.

    미란은 평소에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어 했고 지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 가 되고 싶어 했다.

    툭 하면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신경질을 부려대는 그 짜증내는 모습들을 보지 않아 좋았고 모기보고 칼 빼드는 식의 예민한 성격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하루 종일 들볶이지 않아 좋았다. 스스로 제 구덩이 파고 신세 들볶는 모습을 보지 않아 좋다보니 홀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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