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⑮
[연재소설] 설화(雪花) ⑮
  • 유석
  • 승인 2015.06.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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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할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미란에게 위자료를 내주고 다희와 함께 옛날 설화에게 돌아가고만 싶었다.
그것은 큰 모험이기 이전에 또 다른 고통의 가시밭길을 준비하는 최악의 선택이 될지도 모르는 일임에도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재혼남의 한계를 못 이겨 갈 때까지 가다 막다른 골목까지 들어섰다.
만약 그의 생각대로 이루어져도 설화가 거부하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라도 그녀를 바라보며 살고 싶은 생각이었다. 당시 설화가 남편과 한 마디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편의점 사업을 확장시키려다 거금의 빚을 진 댓가로 이혼했지만 웬 일인지 지금 그 기억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설화도 살아보려고 일을 벌이다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당위성을 내 세운 합리화가 그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어느 봄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기뻐했던 그 모습이 떠오르자  입가에 회심의 미소까지 흘러내렸다. 미란을 만나 들볶이다 쥐어 터진 상처마다 수많은 매화꽃 그리움이 피어오르자 아련히 보이는 강 저편에서 금방이라도 볼그라니 눈웃음치며 손짓하는 설화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화사한 봄소식에 라일락 향기가 피어나듯 그 향기 눈가의 처마 밑까지 다가오자 은연 중 어떤 기대감마저 일었다.
지나간 추억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 놓인 그의 운명이 더욱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웬 일인지 그의 어깨는 가벼워 보였다.
당시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설화에게 영웅이 된 기분 갔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부모로서 자식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 때의 자부심과 보람을 생각하자니 할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에 그리움의 날개를 달고 어딘가에 살고 있을 설화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만 싶었다.

과거 두 사람사이에도 그 누구보다 행복한때가 있었다. 한 때 그들의 사랑도 밤하늘의 별을 세어가며 사랑을 노래했던 남부럽지 않은 날들을 떠올리며 회상에 빠지기도 했다.
다만 지워지지 않는 슬픈 조각 하나 있다면 당시 갑자기 식어진 설화의 정이었다. 그녀가 비록 돈을 많이 갔다 버렸지만 10년 동안 두 아이 낳고 정들며 살았던 그 정을 어느 날부터 무 자르듯 야속하게 잘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조차 운명으로 여기고 싶었다. 당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돌파구가 없었던 만큼 그것에 대해 서로 면죄부가 되어 주기만을 바랐다. 그토록 설화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소식을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의 그림자조차 비쳐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것이 쓸데없는 망상임에도 현실이 되어 지기를 바라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낮을 구별 못한 채 돈의 올가미에 포로가 되어 가고 있는 그 모습들이 그의 눈에는 똑같이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설화가 10년 동안 사랑했던 그 마음만 변치 않았다면 당시 헤어질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희망일 뿐이었다. 현실은 그에게 열어줄 빗장조차 움직일 줄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매불망 기약 없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가 밤안개에 묻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밤잠을 설쳐대고 있는 모습이 사막의 조난자 모습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의 앞은 여전히 살얼음판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 누가 미란에게 돈을 건네고 다희를 데려가겠다면 곧바로 행동에 옮길 여자라는 것도 그를 불안에 떨게 했다.

한 때 가족들과 상의해 아이를 일찌감치 시설에 보낼 뜻을 비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어차피 혼인신고도 못하고 살 바에 다희와 함께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 들어가 생이 다하는 날 까지 살아볼 생각도 했었다. 그곳에서 조용히 미래를 설계하며 화가의 길을 가고 싶은 계획을 세워 놓기도 했었다.

악처의 괴롭힘에 끝내 희망이 무너지자 하루에도 수 없는 갈들이 그를 괴롭혀댔다. 그 무엇보다 자식들이 그리웠다.
어느 날 산새둥지의 새끼들이 산 뱀에게 잡혀 먹히자 자식을 차아 헤매던 어미 새가 단장이 끊어져 죽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금 그런 아비의 소리 없는 울음은 단장이 아니라 영혼의 뼈마디까지 녹아내릴 만큼 애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때로는 미란이 심정을 건드릴 때마다 생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통한의 그리움에 촉촉이 젖은 세월의 추녀 끝에 타들어가던 숯덩이는 이내 현실의 냉정한 고드름 속에 파묻혀 질식해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을 사람이 그 어디 있으랴. 시린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어야 할 재혼녀 미란으로부터 자신의 얇아진 그 사랑의 이불을 두텁게 덮어 주리라 믿었던 그였다. 허전한 마음에 홑이불보다 더 못한 자신의 벌거숭이가 된 현실을 바라보며 또 다시 한탄에 젖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스스로 포악한 심술에 식어진 옛 사랑의 심지에서 한 가닥 남은 밑불을 살려 제 스스로 불을 피워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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