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⑱
[연재소설] 설화(雪花) ⑱
  • 유석
  • 승인 2015.07.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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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탈선
그 날 밤, 야속한 시간들이 또 다른 음모를 꾸미려 경계의 사선을 넘고 있을 때 시간의 바퀴를 따라 굴러온 징크스가 결국 형돈의 입을 통해 다급히 터져 나왔다. 지난번에 이어 또 다시 미란에 대해 의심 살 만한 행동을 목격했다면서 그 확인 방법까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두고 본다는 것은 남자의 무능력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라며 다그쳐 댔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자 주변인들을 의식해서라도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날따라 의외로 일찍 귀가한 미란을 불러 앉히자 눈치 빠른 그녀가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변명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렇게까지 만들어 놓은 사람은 결국 지수라며 거침없는 화살을 쏘아댔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경제적 무능력까지 들먹이며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만나고 있는 사람은 경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쪽 나기는 원치 않는 눈치였다. 단순히 그 남자에게 돈만 뜻어 올 셈이었다. 그녀만의 계산된 의도였다.

그러면서도 또 다시 전세방 보증금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종잡을 수 없었다.
그것을 못해 준다면 차라리 제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았다.
온전한 여자가 아니었다. 돈의 유혹을 쫓아 사랑의 색깔과 선택의 폭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그녀는 이성의 치아는 빠져도 몇 개나 빠져 나가 있는 여자였다.

그 빠져나간 자리마다에 악취를 풍기며 튀어나오는 변병의 욕질은 혼자 보기에도 아까울 정도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서는 더 새는 법이다보니 틈이 벌어지기 전에 집안에 붙잡아 두려 했으나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이참에 다른 남자와 붙어 나가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망연자실 어린 딸을 바라보고 있자니 영락없는 산속에 내버려진 원시인 새끼가 따로 없었다.
머리는 헝크러져 마른 풀 섶 같아 금방이라도 라이터를 들이대면 홀라당 타버 릴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었고 제대로 씻기지 못한 몰골은 차마 눈뜨고 바라 볼 수 없었다.

갑자기 몽골 낙타들의 ‘마두금’ 사랑이 생각났다. 어쩌다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을 때 유목민이 이웃 마을에 사는 악사를 불러 그 나라 전통악기로 ‘마두금’을 들려주면 어미는 커다란 덩치답지 않게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며 새끼에게 젖을 빨린다는 것이었다.

하찮은 동물도 감정의 눈물이 있거늘 미란은 그 애틋한 눈물커녕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마저 인정사정없이 내던진 여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그녀의 악랄한 행동에 자신의 인생이 빠져 나올 수 없는 천길 낭떨어지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미란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앉아 있는 꼬라지와 피워대는 담배, 짙은 화장을 한 모습에서 영락없는 집장 촌 여자 그 모습이었다.

차라리 사창가로 들어가 어느 한 여자와 그동안 쌓인 욕구를 진하게 풀고 마주 앉아있는 모습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꿈보다 더 가혹한 현실 앞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이 없었다. 가뜩이나 안에서 줄줄 새는 거친 입담은 더 많이 거칠어져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튀어 나와 고개 숙인 남자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트렸다.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자 금희를 끌어들여 단판을 짓기로 했다.
일방적인 눈먼 사랑은 가시나무에 걸려있는 허수아비 옷가지만도 못하다 했던가.
평소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의 옷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그녀의 행동에 갈피를 잡지 못한 남자의 몰골은 뙤약볕 내리쬐는 사막의 벌판 한가운데서 길 잃어 조난자의 모습 같았다.

그를 더 괴롭히고 있는 것은 몸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유 없이 아파오는 두통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또 다시 깊은 갈등이 밀려왔다. 미란의 탈선도 한없이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만 어린 딸을 생각해서라도 주저앉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억울하고 분해 견딜 수 없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어야하는 생을 욕질하면서도 원망의 끝자락 그 어딘가에 기다리고 있을 신기루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슬럼프에 빠진 운명을 탓하는 자체마저 부질없는 짓인 줄을 알면서도 연달아 밀어 올리는 증오의 포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자로고 남자가 여자하나 거느릴 능력이 안 되면 혼자 살아야 한다지만, 그것도 나름이지. 저토록 남자 사정 봐주지 않고 씀씀이 헤푸게 쓰고 다니는 년을 누가 보통 여자로 인정하겠어!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이제 다 소용없는 일이여. 가지를 잘못 앉은 내 자신이 못난 놈이니까. 천추의 한으로 남아도 어쩔 수 없어…
한 겨울 서릿발처럼 마구 찔러대는 저 검은 전갈의 독침보다 무서운 독을 품고 있는 년을 당해낼 수 없는데 이제 와서 하소연을 한다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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