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소설] 설화(雪花) (23)
    [연재소설] 설화(雪花) (23)
    • 유석
    • 승인 2015.08.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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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하고 싶었던 재혼의 사랑마저 송두리째 상실하다보니 억울함이 쌓였던 것이다.

    사랑의 착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사랑을 선택한 댓가에 대한 ‘자업자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린 아이 운명까지 가혹하게 짓밟는 현실이 훗날 스스로 천추의 한이 될 까봐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내일을 향한 희망의 넋두리는 비장함까지 들어 있었다.

    처음 만날 당시의 판단을 바르게만 했었더라도 그토록 악마의 날들이 숨겨놓은 징검다리 위에서 불안과 공포의 날들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또 하나의 대범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찢겨진 인생이 거리의 나뭇가지에 나부끼더라도 내일에 감춰진 승리의 그림자가 희망의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오는 그날을 위해 참고 기다릴 것이라는 그 마음이었다.

    그러기위해 인내의 심지에 더 강렬한 불꽃을 일으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끝없는 절망과 낙심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불행의 도화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 발 더 내디뎠다. 주저앉으면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 보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누구 하나 그의 편이 되어 줄 사람 없는 현실에서 자신을 끝까지 응원하며 한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오직 어린 딸이다보니 악천후 같은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견뎌온 지난날의 발자욱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용기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마음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없는 돌팔매를 얻어맞을 때마다 생살을 도려내가며 욕질해댔던 것도 주어진 운명과 화해의 끝자락에서 어떤 보상이 반드시 주어질 것이라는 긍정의 희망을 갖게 했던 등대 같은 존재였기에 믿고 이끌어왔던 끈질김에 대한 어떤 바람이었다.

    알고 보니 지금 깨닫고 있는 성찰의 시간도 어쩌면 금쪽같은 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그것이 미란이 쫓던 황금덩이보다 더 위대한 ‘다이아몬드’ 같은 깨달음의 보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하루가 지나도 사태는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신을 가다듬은 금희가 다시 찾아가 미란을 다그쳤지만 여전히 굽히지 않았다. 미란이 또 다른 남자와 돈에 미쳐 있다 보니 지수는 안중에도 없었다.

    금희가 더 억울해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이 틀어진지 오래되다보니 더 이상 논쟁할 가치도 없었다.

    가족들의 자존심은 무너졌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만 잘못을 돌릴 수만도 없었다.

    아직까지 남자의 능력이 우선시대는 사회적 현실에서 가장의 무능력에 대한 잘못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때문이었다.

    지수의 갈등은 더 했다. 다희를 생각해 그나마 어미로서 미란이 옆에 있어줘야 좋을 듯싶다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의미 없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시련의 담금질이 끝나는 그날까지 끌려가지 않으려면 당장 마음 내키지 않아도 끝까지 끌고 나가야만 했다.

    당장 그 앞에 어린 딸이 버티고 있는 것을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란은 그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잘도 쓰던 쌍욕과 폭언마저 줄어들었다. 그녀 자신도 굿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행동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술과 흡연은 여전했고 아이들을 편애하는 행동을 비롯해 남과 비교하는 습성도 버리지 않았다. 화제가 또 다시 전세방 이야기로 돌아가다보니 남자의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협박해대는 습관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과거 이야기를 꺼내들자 또 다시 방안에 냉기가 돌았다.

    “어떤 년이 그랬어! 내가 뒤 늦게 열매만 따먹을 여자이니 행복할 거라고…?”

    툭, 하면 그 말을 무기로 지수를 괴롭힌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날의 설화는 지금의 미란처럼 호의호식하지도 못했다. 당시 지수가 그렇게 살 형편도 못됐었지만 그럴만한 환경도 아니었다. 그런 설화는 궁핍한 살림을 하면서도 어린자식들을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친구 꼬임에 빠져 꽃집을 내겠다고 남편 몰래 제1금융권도 모자라 2금융권까지 대출을 받아 써 대는 바람에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사태가 겉잡을 수없이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 단란했던 가정이 기울면서 이혼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의 미란은 잘살든 못살든 지수의 월급으로 나 홀로 행복의 열매를 따먹고 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동네사람들이 한마디씩 한 것은 당연했다.

    어쩌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재혼남의 인생이 발가벗겨져 거리에 나뒹굴어 도 그녀는 굴러들어온 행복도 알아보지 못한 채 배부른 투정만 해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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