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읽는 아침] 빨래
    [詩읽는 아침] 빨래
    • 김영수
    • 승인 2015.08.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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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 심언주 作

    어깨에 힘 빼고

    팔도 다리도 빼놓고

    얼굴마저 잠깐 옮겨 놓으면

    어디 한번

    구름이 다가와 팔짱을 끼어 보고

    바람이 구석구석 더듬다가 밀어 버리고

    달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

    핼쑥한 얼굴을 얹어도 보고

    훈장처럼 별들이

    붙어 있다

    사라진다.

    빠른 타자 속도로 빗방울이

    댓글을 남기고 간다.

    하늘도 땅도 아닌 곳에

    사람인 듯 아닌 듯

    떠 있으면

     

    ▲ 김영수13-14 국제로타리 3680지구 사무총장

    [굿모닝충청 김영수 13-14 국제로타리 3680지구 사무총장]1898년 1월13일 프랑스 일간지 ‘여명黎明’에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 1894년 12월22일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 넘겼다는 죄명으로 유대인인 장교 드레퓌쉬 대위에게 프랑스 군사법원은 종신형을 선고 했고 이에 에밀 졸라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항의문을 게재 하게 된 것입니다.

    단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집단적 편견의 희생양이 된 드레퓌시는 1906년 7월12일 무죄판결이 날 때 까지 무려 12년 동안 ‘악마의 섬’ 유배 등 모진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무죄인지 알면서도 권위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자와 국가주의를 앞세운 국수적인 자들에 의해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5월 분신자살한 김기설의 자살 방조와 유서대필 혐의로 검찰이 강기훈을 기소한 사건입니다. 1992년 7월 강기훈은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습니다. 이후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김기설의 유서 필적 감정을 재의뢰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07년 11월 김기설 유서의 필체와 강기훈의 필체가 다르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권고했고 2009년 서울고등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습니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강기훈의 유서대필 및 자살 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고, 검찰은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은 검찰 상고를 기각하고 강기훈을 무죄로 판정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흑인 남성 ‘글렌 포드(Glenn Ford 1949.∼2015)’는 1급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를 받고 근 30년 만에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출소 2개월 뒤 폐암 판정을 받고 1년여 간 투병하다 숨졌습니다. 

    더 어이없는 건 주 정부의 손해배상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생계와 투병 비용을 대야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도, 2002년 이후 올 6월 말까지 사형수로 형 집행을 앞두고 있다가 무죄로 석방된 사례만 115건이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렌 포드’를 기소한 당시 33살의 지방검찰청 수석검사 “스트라우드”가 자신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과오에 대한 장문의 글을 비록 지방신문이지만 게재해 반성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글렌 포드’를 직접 찾아가 사죄했습니다. 

    미국의 ABC 방송 ‘나이트라인’을 통해 방영된 방문에서 스트라우드는 “내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며, 무덤에 갈 때까지 그 오점이 씻기지 않을 것임을 안다”며 포드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일어설 힘이 없어 앉아서 그와 악수를 나눈 포드는 “하지만 옥살이가 끝이 아니었다”고 말한 뒤 어렵사리 진심을 털어놨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정말 못하겠어요. 정말요.(I’m sorry. I can’t forgive you. I really am. I really am.)”

    무더운 8월입니다. 어느 날이 중요하지 않은 날이 있을까 만은 8월은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애국지사와 지도자들이 거쳐 갔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도자들의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아픈 상흔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잘못된 것인 줄을 알면서도 칼을 휘둘렀던 사람들은 보라는 듯이 잘 살면서 “반성”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직도 빨래가 덜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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