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윤용 시민기자]

대한민국 방위사업청(방사청)의 출발점은 영광이 아닌 위기였다. 2003년 말, 군납비리 의혹에 전직 품질관리소장과 국방부 장관까지 수사가 확대되자 노무현 정부는 국방획득 구조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비리 수사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 당시 군 조직 내부의 폐쇄성과 사업 구조의 불투명성이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범한 2004년 3월 출범한 국방획득제도개선위원회는 민·관·군이 함께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국방개혁 추진 조직이었다. 여기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외청”이라는 개념이 처음 제안되었고, 국방획득을 국방부 장관의 지휘체계에서 분리해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6년 1월 1일, 방사청(DAPA)이 개청했다.
초대 김정일 청장을 시작으로, 4대까지는 육사·해사·공사 출신의 군 예비역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이는 개청 초기 ‘군의 사업 구조 이해’를 중시했던 분위기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중반 이후 기조는 완전히 달라졌다. 원가·효율성·경쟁 원리가 강조되면서 5대 장수만, 6대 노대래 등 행시 출신 경제 관료들이 연이어 임명됐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유지되어, 7대 이용걸, 9대 전제국, 10대 왕정홍, 11대 강은호 등 정통 관료 라인이 방사청을 이끌었다. 이 기간 방사청은 ‘조달 기관’적 성격이 강화되었고, 제도 정비와 절차적 공정성이 강조됐다. 예외적으로 7대 장명진 청장은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으로, 기술 기반 프로젝트 관리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임명으로 평가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인사 흐름은 다시 한번 급격하게 바뀌었다. 12·13대 엄동한·석종건 청장이 모두 육사 출신으로, 군 작전·전력 이해도가 높은 인사들이 선호되었다. ADD를 국방부 직속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방사청이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무기체계 연구개발(R&D) 업무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게 당시 명분이었다.
이렇게 보면 지난 20년 동안 방사청장 13명 중 군 출신 6명, 관료 출신 6명, ADD 출신 1명이라는 흥미로운 균형이 형성된다. 즉, 방사청은 정치·안보 환경에 따라 ‘군 중심 → 관료 중심 → 다시 군 중심’으로 흔들리며, 그 정체성 자체가 시대 변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온 기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임명된 이용철 신임 청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사실 방사청의 탄생 과정 전체를 깊숙이 경험한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2비서관, 법무비서관을 지냈고, 이후 국방획득제도개선단 단장, 방사청 개청준비단 부단장, 초대 방사청 차장까지 역임했다. 즉 방사청의 ‘설계도’를 그린 사람 중 한 명이자, 실제 개청 조직을 만든 실무자였다. 그런 그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방사청을 이끌게 된 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초기의 개혁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징적 메시지로도 읽힌다.
이 청장은 17일 취임사에서 “방산 수출 200억 달러, 글로벌 점유율 5%”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방산을 산업이 아닌 ‘국가전략 수단’으로 규정하며, 방사청의 전략적 역할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국내 방산업계 최대 난제로 떠오른 KDDX 사업자 선정이다. 2030년까지 6척의 6000톤급 구축함을 국산 기술로 건조하는 해군의 숙원사업이지만, 군사기밀 유출 사건 이후 업계 간 갈등이 깊어지며 사업은 표류 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전력화 속도’를 이유로 수의계약을 주장하는 반면, 한화오션은 공정성을 위한 경쟁 입찰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해군의 입장, 방사청의 제도적 원칙, 방산업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느 한쪽의 판단이 방산 생태계 전반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신임 청장이 어떤 해법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방사청의 정체성과 미래 방향까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방사청 20년의 역사는 단순한 조직의 변천사가 아니다. 국방비리 척결, 투명한 획득체계 구축, 방산 수출 확대 등 시대의 요구가 반영된 국방개혁의 연대기이다. 특히 ‘제2의 개청’을 언급한 이용철 청장의 시도는 방사청이 다시 한번 체질을 바꾸려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그의 경험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당면한 KDDX 갈등과 글로벌 경쟁 환경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난제들이다. 신임 청장을 맞이한 방사청이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모두가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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