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023년까지만 해도 명실상부한 ‘윤석열의 황태자’였다. 검사 시절부터 거의 ‘영혼의 단짝’처럼 호흡을 맞춰왔고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 연루되어 한 전 비대위원장이 위기에 몰렸을 때 그를 구명(救命)해준 사람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에 오른 이후 그를 법무부장관에 기용하며 지금의 정권을 구축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22대 총선을 앞두고는 아예 그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투입시켜 여당 장악 임무까지 맡겼다. 분명히 이 때까지만 해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명실상부한 ‘윤석열의 황태자’였다.
하지만 예부터 ‘권력은 피를 나눈 형제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 더 이상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윤석열의 황태자’라고 하기엔 뭔가 어폐가 있어 보인다. 지난 4일 국민의힘에서 벌어졌던 일은 이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윤석열의 황태자’에서 ‘폐태자’로 전락했음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4일 국민의힘은 총선 백서 TF(태스크포스)가 22대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하는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각 정당이 으레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설문 문항이었다. 이 문항들은 노골적으로 ‘한동훈 죽이기’ 의도가 담겨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해당 설문지의 문항에는 한동훈 전 위원장의 메시지와 지원유세가 선거에 도움이 됐냐, 한 전 위원장 원톱 체제가 효과적이었냐는 등 한 전 위원장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그 밖에 한 전 위원장의 '이조심판론' '운동권청산론' 등이 도움이 됐는지도 묻는 질문도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한동훈 책임론'을 부각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한 친한계 인사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TF 위원장인 조정훈 의원은 인재영입위원으로 총선에 적극 관여한 사람"이라면서 "인재영입위에 대한 문항은 왜 빠졌냐, 객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백서TF 측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총선백서TF 관계자는 "모두가 참여한 회의에서 객관적으로 질문을 수집한 것"이라며 "김건희 여사 이슈, 정부의 상황 대응에 대한 문항도 있다"고 설명하며 ‘한동훈 죽이기’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 설문조사에는 ‘한동훈 죽이기’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고 보인다.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16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했던 것과 같이 22대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자신에게 없다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또한 총선 이전부터 김경율 비대위원의 소위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을 두고 대통령실 측에서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노골적으로 비대위원장 사퇴를 종용하기도 한 바와 같이 이미 그 때부터 두 사람의 사이는 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후에도 차기 당 대표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에선 한 전 비대위원장의 지지도가 여전히 높다는 것이 드러났다.
자신의 황태자라 믿고 여당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낙하산으로 투입했더니만 갑자기 위세를 부리며 반기를 들었고 그 반기를 든 사람을 여전히 당원들이 뜨겁게 지지한다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즉, 이제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한동훈이란 인물은 자신의 황태자가 아니라 숙청 대상이 된 것이다.
총선이 끝난 후 갑자기 검찰이 그토록 오랫동안 파묻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딸 입시비리 의혹을 들춰내려 하는 것도 의심쩍다. 2023년까지 황태자였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너는 이제 황태자에서 폐위됐다”는 걸 알리고자 하는 것으로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즉,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올 생각 말라고 그 동안 감춰뒀던 검찰 캐비닛의 X파일을 꺼내 협박 중인 것이다.
지난 2일 있었던 채 상병 특검법 표결 당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직 윤석열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은 약화됐다고 보긴 어렵다. 찬성표를 던질 것처럼 공공연하게 떠들었던 안철수, 조경태 의원 등이 궁색한 핑계를 갖다 붙이며 본 회의장 퇴장에 동참한 것이 그 증거다.
다시 말해 백서에 한동훈 저격성 질문을 넣은 것도 어느 정도 ‘대통령실 눈치 보기’가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22대 총선 참패는 어디까지나 “한동훈 책임”이지 “내가 잘못해서 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총선 참패의 책임을 모조리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몰빵’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때 ‘윤석열의 황태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졸지에 폐태자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윤석열과 한동훈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비록 당 대표에 낙선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당대회에 등판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만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할 경우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잊히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은 ‘총선 패배의 원흉은 한동훈’이니 그 책임을 물어서 패군지장(敗軍之將)인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참수하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참수’란 진짜 목을 베어 죽인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는 정치판에 발도 못 붙이게 철저하게 매장시킬 것이란 뜻이다.
한낱 필부(匹夫)도 궁지에 몰리면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사람 심리인데 하물며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고 권력을 가져보기도 했던 한 전 비대위원장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으니 살기 위해서라도 우선 전당대회에 등판하고 설령 당 대표가 못 되더라도 유의미한 득표율을 거두어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그걸 쉽게 허용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이번 채 상병 특검법 표결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 회의 보이콧을 하는 것을 통해 아직 자신의 여당 장악력이 죽지 않았다고 믿고 윤핵관 등을 동원해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수를 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한동훈의 목줄’은 현재 신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인 황우여의 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입장에선 빨리 전당대회가 열려야 자신에게도 길이 보이는데 만일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비대위 구성이 다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당대회를 연기하거나 최대 6개월의 임기를 활용할 경우 혹은 전당대회 규정을 고칠 경우 그 사이에 한 전 비대위원장이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대 정치에서 6개월이란 기간은 대단히 긴 기간이고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를 가지고 늑장을 부릴 경우 이미 폐태자로 전락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더 이상 ‘부활의 길’은 없는 것이고 자신이 손발을 써보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완전히 숙청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참 이런 걸 보면 권력이란 것이 정말 피를 나눈 형제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옛말이 정말 그대로구나 싶으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용인술에 탄식이 나온다.
저작권자 © 굿모닝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굿모닝충청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