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12.3 내란 사태의 수괴로 지목돼 결국 임기 중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죄 혐의 재판에서도 전혀 반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 주장했던 이른바 '계몽령' 주장을 이번에도 반복하고 나섰다. 이 와중에 숱한 논란을 일으킨 지귀연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신원을 확인하던 재판부가 직업을 직접 말하지 않게 해 뒷말을 낳았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에서 열린 내란 수괴 혐의 재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100여 분 동안 온갖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선 그는 이 자리에서도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를 '메시지용'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계엄군을 동원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공격한 것도 '영장주의 위반'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아울러 계엄군으로 하여금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와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업체인 여론조사 꽃을 점령하도록 한 것 역시 자신이 지시한 바 없다고 주장했으며 사실상 '한국판 킬링필드'를 계획해 큰 충격을 낳았던 노상원 수첩에 대해서도 "노상원이란 사람에 대해 저는 전혀 아는 바 없다"며 선 긋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열린 재판에서 40분 동안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으며 혐의를 부인했던 윤 전 대통령은 오후 재판에서도 장광설을 늘어놨다. 그는 삼청동 안가에서 조지호 경찰청장 등과 회동한 것에 대해선 10~15분 정도 짧은 만남에 불과했고 계엄 선포 후 국회 질서유지를 위해 보낸 병력 숫자가 워낙 소수였기에 경찰에 협조를 부탁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게 체포명단을 하달한 것 등에 대해서도 "국정원 차장과는 평시엔 전화통화할 일 자체가 없다"며 "국정원에다가 지시할 일이 있으면 기관장인 원장을 통해서 하지 1차장, 2차장, 3차장과는 통화하는 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작년 12월 3일 당시 본인이 조태용 국정원장이 미국 출장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1차장이었던 홍 전 차장에게 직무대리로서 국정원 관리를 잘 하고 있으란 뜻으로 한 번 전화했을 뿐이란 식으로 주장했다. 또 홍 전 차장의 주장은 이미 거짓말이었음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자세하게 드러났다고 본인이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에 대해서도 "평소의 주례공무원 회의와는 달랐지만 보통 1시간 정도 하는데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총리,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을 빼면 한 20~30여가지 사안에 대해 20~3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굉장히 짧게 안건 내고 이의 없으면 넘어가는 식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계엄 문제에 대해선 상당히 많은 국무위원들의 자기 의견을 아주 심도 있게 들었기 때문에 역대 어느 국무회의보다 논의 활발했던 국무회의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하자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아울러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비상입법기구 설치 예산 편성 지시 등을 한 점에 대해선 자신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며 자신이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밖에 계엄포고령에 관해선 "어떤 현실적 실행조치가 아니라 하나의 규범"이라고 주장하며 "상위법인 헌법과 헌법에 저촉되는 그 자체로 효력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포고령에 상위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저희가 사전에 법률 검토를 못한 시간과 보안 때문에 하지 못한 점은 있지만 이건 규범이기 때문에 계엄포고령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어 "이것에 따라 사람을 처벌하거나 제재를 바랄 수 없는 점이란 걸 말씀드리고 싶다"며 "수사단 설치 문제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계엄포고령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계엄군을 국회에 보낸 것 역시 '국회 봉쇄'가 아니라 '질서와 통제'라는 취지의 발언도 반복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속해서 특유의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혐의를 부인하고 나서자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도 "5분 정도로 정리해줄 수 있겠느냐?"며 발언을 제지하기도 했다. 이에 윤갑근 변호사가 '피고인의 유일한 권리'임을 내세워 진술 시간을 충분히 달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또한 "제가 지금 쭉쭉 건너뛰면서 중요한 말씀만 드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속해서 장광설을 이어갔다. 그는 마무리 발언에서도 거듭해서 자신이 일으킨 12.3 내란 사태를 두고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라며 이미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도 부정된 논리를 그대로 들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윤 전 대통령은 "계엄은 늘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합동참모본부 계엄과가 있고 매뉴얼이 있고, 여러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해 마치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가 '계엄 훈련'이었다는 취지의 상식 밖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자신의 그 '계엄 훈련'으로 인해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궤변이란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할 지경이다.
아울러 "세상에 내란을 하는 사람들이 방송으로 미리 계엄 선포를 하고 내란을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주장하기도 했고 "계엄 실시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전권을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어느 장관이나 일반 국민보다도 수백, 수천 배 외교, 안보 국정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판단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며 '통치 행위'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의 12.12 군사 반란 사태 당시 대법원은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등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했을 경우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 본인의 탄핵심판에서도 같은 논리로 탄핵된 궤변인데도 또 다시 '통치행위' 타령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윤 전 대통령은 "국회가 사법통제로서 계엄 해제 결의를 했을 때엔 대통령이 그걸 즉각 수용해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데 무슨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전시 사변 아니면 계엄 선포하게 되면 그게 전부 내란이란 말이냐?"고 목청을 높이며 "내란을 방송으로 전국민, 전세계 공고해놓고 국회가 이제 그만 두라고 해서 당장 그만 두는 그런 몇 시간짜리 내란이란 게 도대체 인류 역사상 있는 건지 저는 되묻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본인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반 년 전 지구 반대편의 볼리비아에서 '3시간짜리 쿠데타'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역시도 궤변에 가깝다. 이렇듯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법정구속도 되지 않았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결정 및 재판 촬영 불허 결정 등을 내려 여론의 질타를 받은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에게 “1960년 12월 18일생, 직업은 전직 대통령이고. 주거가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어 논란을 일으켰다.
생년월일과 직업은 재판장이 먼저 언급한 뒤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주거지만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답하도록 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판장이 직업을 언급한 대목에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는 퇴임이나 파면 뒤 형사 재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들이 인정신문에서 직접 직업을 답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근혜 씨의 경우 2017년 5월23일 첫 공판 인정신문에서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무직입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씨도 2018년 5월23일 첫 공판 인정신문에서 “무직”이라고 직업을 직접 밝혔다. 내란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의 첫 공판에서도 ‘직업이 무엇이냐’는 재판장의 질문과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각각 오갔다.
그야말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비상식적인 특혜의 연속이 아닐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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