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시민이 청구한 토론회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세 개의 조례가 사라졌다. 대전시의회가 2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시민사회 3대 조례 폐지안’은,절차는 갖췄을지 모르나, 숙의와 공론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비껴갔다.
NGO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 시민사회 활성화 및 공익활동 증진 조례, 사회적자본 확충 조례 등 이른바 시민사회 3대 조례는 대전시가 지난 10여 년간 추진해온 민관 거버넌스의 제도적 기반이었다. 행정 효율성과 예산의 재편이라는 이유로 일괄 폐지된 이 조례들은, 그 자체의 존속 여부를 넘어서 ‘어떻게 폐지되었는가’라는 절차의 문제를 남겼다.
시민 989명이 서명해 청구한 토론회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공식적인 논의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에 의회는 표결을 강행했고, 행정부는 침묵했다. 정책에 대한 반대는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론의 기회마저 보장되지 않은 채 제도가 폐지되는 일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더욱이 조례 폐지를 주도한 이중호 의원(국민·서구5)조차, 토론회 생략에 대해 행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하며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토론회는 책임 있는 답변을 행정부에서 해주어야 한다”며, 숙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신중한 결정이 의회의 책무임을 분명히 했다. 조례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지우지 않았다.
대전시 역시 “토론회는 절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이며, 조례 폐지와는 별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청구한 토론의 장이 본회의보다 뒤늦게 따라잡는 형국은, 참여를 보장하되 결정에서 배제하는 전형적 ‘사후적 수렴’에 가깝다.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민과의 약속은 절차를 통해 지켜져야 한다. 정치와 행정이 함께 삭제한 것은 조례 문구만이 아니다. 시민의 질문권, 숙의의 공간, 절차에 대한 신뢰 역시 함께 폐기됐다.
지방자치가 지켜야 할 것은 조례보다 ‘과정’이다. 절차 없는 결정은 언제나 공동체의 뒷면에 상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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