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지난 3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본인의 2호 혁신안을 발표했는데 그 때문에 영남 및 충청권의 중진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내놓은 2호 혁신안의 내용은 당지도부를 포함한 중진 의원,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계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나 험지 출마였다.
그 외에도 국회의원 10% 감축,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 국회의원의 법적 구속이나 상임위 불출석시 세비 삭감도 포함되어 있다. 언뜻 듣기에는 대단히 획기적인 혁신안인 것처럼 보인다. 기성 언론들도 인요한 2호 혁신안에 대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고 있다.
중진 의원의 불출마 내지는 험지 출마란 주장은 언뜻 봐서는 정말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린다. 최근 들어 정치권의 세대 교체 요구는 높아지고 있고 한 사람이 한 지역구에서 10년, 20년씩 오래 해먹다 보면 주민들의 피로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중진 의원들의 용퇴 요구는 충분히 나올 법한 내용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요한 2호 혁신안을 보다보면 뭔가 함정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기성 언론들이 제대로 파고 들지 않은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자리가 있으면 든 자리가 있다고 3선 이상의 당 내 중진 의원이든 소위 ‘윤핵관’이라 불린 인물이든 그들이 수도권 험지로 지역구를 옮긴다면 누군가는 그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
기성 언론들이 파고 들지 않은 인요한 2호 혁신안의 함정은 바로 그것이다. “누가 그 빈 자리를 채우느냐?”이다. 3선 이상 당 내 중진 혹은 윤핵관들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수도권 험지로 떠나고 나면 과연 누구로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하는 것인가? 이걸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총선이 1년 안으로 남은 그 시점부터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출신 혹은 검사 출신 인사들을 국회에 심으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론 그 때마다 국민의힘은 번번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을 높여준 사건이 최근에 3가지가 있었다.
먼저 첫 번째는 얼마 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였다. 본래 이 보궐선거는 전임 구청장이었던 김태우가 공무상 기밀누설죄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되면서 실시된 것이다. 따라서 김태우 전 구청장은 보궐선거의 귀책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김태우 전 구청장의 형이 확정되고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선거 출마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김태우 전 구청장은 사실상 요식행위에 가까웠던 경선을 거친 후 자신의 귀책사유로 인해 발생한 보궐선거에 그대로 재출마하는 코미디 같은 행보를 보였다. 이는 결국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고 윤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면 갖은 편법을 써서라도 선거를 치르게 할 사람이란 걸 말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하태경 의원의 뜬금없는 서울 출마 선언이었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8월까지만 해도 분명히 본인이 아직 부산 해운대구에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내년 총선도 당연히 본인 지역구인 해운대구 갑에서 출마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있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무슨 심경 변화를 일으켰는지 10월 초에 서울 출마를 선언했다.
기성 언론들은 ‘당의 어려운 사정을 위한 중진 의원의 용단’으로 포장했지만 과연 실제 속 사정도 그러한가? 하태경 의원의 뜬금없는 지역구 변경 그 이면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40년지기 친구인 검사장 출신 석동현 변호사에게 떠밀렸기 때문이란 것이 중론이다. 석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부터 그 지역구를 노리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어쨌든 이는 검사 출신 인물이 현역 의원을 지역구에서 밀어낸 사실이 확인된 첫 번째 사례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이철규 전 사무총장이 선임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인물인데 불과 19일 만에 다시 복귀했다. 그가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 김웅 의원(서울 송파구 갑)은 “결국 시키는 대로만 하는 윤심 100% 인사만 영입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의 개혁을 바라는 인물은 승선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 와중에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본인의 2호 혁신안으로 당지도부를 포함한 중진 의원,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계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나 험지 출마를 내놓았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친윤계 의원들이 아무리 ‘친윤’이라 해도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 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외부에서 들어와 갑작스럽게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이고 국민의힘의 성골(聖骨)이 아니다. 반면에 ‘친윤계’ 의원들은 오랫동안 정계에서 활동했던 정치인이고 현재 한시적으로 자기 편에 붙어 이익을 받아먹으려는 이익 집단에 가깝다. 한 인물의 정치적 철학과 신념을 보고 뭉쳤던 ‘친노’, ‘친문’, ‘친명’, ‘친유’, ‘친홍’ 등의 계파와 ‘친윤’, ‘친박’ 등은 여기서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선 그 친윤이란 무리들도 언젠가는 자신을 배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 인식할 수 있다. 특히 본인이 수사했던 박근혜 씨 또한 조원진 같은 골수 친박 몇 사람을 제외하면 탄핵 때 등을 돌린 바 있었으니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처럼 자신과 같이 검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검사 출신들이 윤 대통령에겐 더 믿을 만하고 또 대통령실이란 곳에서 같이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참모들이 더 믿음이 갈 법하다. 하지만 이들을 대놓고 ‘낙하산 인사’로 꽂을 경우 과거 새누리당의 진박(眞朴) 공천 시즌 2가 벌어질 수 있다. 2016년 새누리당의 진박 공천 당시 김무성 전 대표의 이른바 ‘옥새들고 나르샤’ 사건은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용산 대통령실의 진윤(眞尹) 낙하산 공천을 위한 사전작업을 혁신위원장인 인요한을 앞세워 이른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 아닌지 강력하게 의심이 된다. 현재 인요한 2호 혁신안에도 중진 의원 및 윤핵관 인사들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이후 누구로 그 빈 자리를 채울 것인지가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니 필자의 이 같은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의심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들 중에 선수가 3선 이상인 의원들의 명단과 지역구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5선 : 정우택(충북 청주시 상당구), 정진석(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주호영(대구 수성구 갑), 서병수(부산 부산진구 갑), 조경태(부산 사하구 을), 김영선(경남 창원시 의창구)
4선 : 권영세(서울 용산구), 박진(서울 강남구 을),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구 을), 김학용(경기 안성시), 이명수(충남 아산시 갑), 홍문표(충남 홍성군․예산군), 김기현(울산 남구 을), 권성동(강원 강릉시)
3선 : 안철수(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 유의동(경기 평택시 을), 이종배(충북 청주시), 박덕흠(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김상훈(대구 서구), 윤재옥(대구 달서구 을), 이헌승(부산 부산진구 을), 김도읍(부산 북구․강서구 을), 하태경(부산 해운대구 갑), 장제원(부산 사상구), 이채익(울산 남구 갑), 박대출(경남 진주시 갑), 조해진(경남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윤영석(경남 양산시 갑), 김태호(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한기호(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
이렇게 총 30명인데 이들의 지역구를 유심히 보면 그 중 절반 이상이 영남에 있고 충청도 농어촌 지역, 강원도 최전방 및 영동 지역, 경기도 외곽 농촌 지역 등으로 모두 보수 정당 강세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국민의힘 공천을 받으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기에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지역구다.
그런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선 이들 30명의 지역구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래서 인요한 2호 혁신안이 이름은 ‘혁신’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체는 진윤 공천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닌지 더욱 강하게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이들에게 ‘당을 위한 봉사’란 미명 하에 험지로 내쫓고 그 빈 자리에 검사 출신 인사들과 대통령실 참모 출신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투입하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기 딱 좋다.
하지만 그런 진윤(眞尹) 공천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앞서 언급한 30명 중에서 선제적으로 서울 출마를 공언한 사람은 하태경 의원 한 사람 뿐이고 나머지 인사들은 여전히 엉덩이가 무겁다.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에서 난데없이 자갈밭을 개간하라고 내쫓으려 한다면 쉽게 물러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과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뺄 것인지 박힌 돌이 굴러온 돌을 쳐낼 것인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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