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정부가 8일 국무회의에서 조기 대선 일자를 6월 3일로 정하며 모내기 철에 대선이 실시되는 이른바 '모내기 대선'이 확정됐다. 따라서 본지에서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독자들이 대선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하고자 하는 뜻으로 갖가지 이색적인 기록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역대 최다 득표 수 차 대선은 19대 대선
1948년 첫 번째 대선이 치러진 후 대한민국은 2022년까지 총 20번의 대선을 치렀다. 이 중 1대 대선과 4대 대선, 8~12대 대선을 제외한 나머지 13번의 대선이 모두 국민이 직접 선출한 직선제 선거였다. 이 중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득표 수 차이가 가장 컸던 대선은 지난 2017년 5월 9일에 치러졌던 19대 대선이었다.
당시 1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1342만 3800표/41.08%)와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785만 2849표/24.03%) 간 득표 수 차이는 무려 557만 951표 차였고 득표율 차이는 17.05%p 차였다. 이 선거는 박근혜 씨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파면되면서 실시된 헌정사 최초 궐위로 인한 선거였기에 보수 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나빴고 이 때문에 이렇게 큰 격차가 났다.
두 번째로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득표 수 차이가 컸던 대선은 2007년 12월 19일에 치러졌던 17대 대선이었다.
당시 1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1149만 2389표/48.67%)와 2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617만 4681표/26.14%) 간 득표 수 차이는 531만 7708표 차였고 득표율 차이는 22.53%p 차였다. 이 때 기록된 '득표율' 차이는 현재까지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지금까지 치른 대선 중 가장 큰 격차다.
역대 최소 득표 수 차 대선은 5대 대선
반대로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득표 수 차이가 가장 적었던 대선은 1963년 10월 15일에 실시했던 5대 대선이었다. 당시 1위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470만 2640표/46.64%)와 2위 민정당 윤보선 후보(454만 6614표/45.09%) 간 득표 수 차이는 불과 15만 6026표에 불과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득표율 차이 역시 겨우 1.55%p에 불과했다.
이 선거는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통해 권력을 차지하고 불과 2년 만에 치러진 선거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승을 했던 것이다. 신승의 배경에는 당시 윤보선 측에서 박정희를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펴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 이어졌던 점이 컸고 또 한편으론 박정희가 '민정 이양' 공약을 저버린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두 번째로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득표 수 차이가 적었던 대선은 바로 2022년 3월 9일에 실시했던 20대 대선이었다. 당시 1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1639만 4815표/48.56%)와 2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1614만 7738표/47.83%) 간 득표 수 차이 역시 불과 24만 7077표 차에 불과했다.
역대 최대 득표율 차 대선은 2대 대선
득표수가 아닌 득표율을 기준으로 가장 큰 격차가 났던 선거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8월 5일에 치른 2대 대선이었다. 이는 헌정사 최초의 직선제 대선이었는데 사실 이는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치른 2대 총선에서 이승만 지지 세력이 대거 탈락하고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서 간선제로는 이길 자신이 없어 발췌개헌이란 꼼수를 통해 이뤄낸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 바로 부산정치파동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어거지로 직선제를 관철시킨 후 치러진 대선에서 자유당 이승만은 득표 수 523만 8769표, 득표율 74.61%를 기록해 79만 7504표(11.35%)를 득표하는데 그친 2위 무소속 조봉암 후보를 득표율 63.26%p, 득표 수 444만 1265표 차로 크게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득표율 차이가 가장 큰 대선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로 득표율이 가장 컸던 대선은 바로 다음 1956년 5월 15일에 치러진 3대 대선이었다. 이 대선 역시 본래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로 명시된 당시 헌법에서 '초대 대통령은 예외로 한다'는 부칙을 억지로 삽입한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의 영향 아래 치러진 선거였다.
당시 이 대선은 자유당 이승만, 민주당 신익희, 무소속 조봉암 3파전으로 치러졌는데 민주당 후보 신익희가 유세 이동 중 급사하면서 양자구도로 재편됐다. 4년 만의 리턴 매치에서 이승만은 504만 6437표(69.98%)를 득표에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2위 조봉암 후보 역시 216만 3808표(30.01%)를 득표해 지난 대선보다 격차를 많이 좁혔다.
하지만 절대적인 격차는 득표율 39.97%p로 여전히 컸고 득표 수 역시 288만 2629표 차였다. 이는 당시 민주당 지지층이 신익희의 급사로 인해 충격을 받아 투표에 참여하긴 했으나 조봉암에게 투표하지 않고 '무효표'를 행사한 것이 컸다.
역대 최소 득표율 차 대선은 20대 대선
반대로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득표율이 가장 작았던 선거는 앞서 언급된 2022년 3월 9일에 실시했던 20대 대선이었다. 당시 1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1639만 4815표/48.56%)와 2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1614만 7738표/47.83%) 간 득표 수 차이는 불과 24만 7077표였고 득표율 차이 역시 0.73%p 차에 불과해 가장 득표율 차이가 작게 났다.
임기 내내 레임덕이 없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답게 문재인 정부의 지지세가 만만찮았고 보수층은 정권 탈환을 위해 총 결집을 했기에 격차가 적었던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대선 경선에서 패배했던 이낙연 후보 측이 결과에 불복하며 잡음을 낸데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끝까지 완주를 하며 일정 부분 표 분산을 일으키는 불운이 겹치며 결국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다.
두 번째로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득표율이 작았던 선거는 1997년 12월 18일에 치러진 15대 대선으로 당시 1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1032만 6275표/40.27%)와 2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993만 5718표/38.74%) 간 득표율 차이는 불과 1.53%p 차였고 득표 수 역시 39만 557표 차에 불과했다.
이 선거는 한나라당 입장에선 상당히 불운했는데 IMF 사태가 터진 직후에도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만큼 정치 지형이 보수 우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불복했던 이인제 후보가 탈당 후 국민신당이라는 새 정당을 차리고 무려 492만 5591표(19.2%)나 잠식해 버리며 간발의 차로 석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선 패배자가 탈당 후 출마하는 것을 방지하는 '이인제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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