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윤석열 정부의 신임 장관 후보자들의 과거 망언들이 줄줄이 발굴되며 자질 논란이 더욱 크게 번지고 있다. 처음 포문을 연 사람은 신원식 국방부장관 후보자였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모욕 망언, 12.12 사태를 혁명으로 추켜세운 망언, 문재인 전 대통령을 상대로 모가지를 딴다는 둥 매국노라는 둥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의 망언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매국노 이완용 두둔 발언까지 발굴되었다.
이런 신원식 후보자의 과거 발언들이 줄줄이 발굴될 무렵에 또 다른 후보자의 과거 발언도 발굴되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20일 경향신문 단독 보도 기사로 시작된 보도 내용에 따르면 김행 후보자가 강간 피해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위험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김행 후보자는 2012년 위키트리 유튜브 방송에서 “낙태(임신중지)가 금지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하고 도망쳐도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다 낳는다”면서 “너무 가난하거나 강간을 당해 임신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tolerance·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최대 6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필리핀 뿐 아니라 가톨릭 국가는 낙태는 물론 인공적인 피임조차도 금하고 있다. 김 후보자 측은 “여성이 자신의 제반 여건 하에서 출산 및 양육을 결정한 경우 그 결정과 모든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언급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창립한 온라인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의 2012년 유튜브 방송에서 강간과 낙태 등에 대해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 그녀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한 직후 촬영된 방송에서 “여성단체가 (낙태죄 합헌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이유는 헌재에서 합헌 결정을 했어도 우리가 쉽게 낙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임신중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필리핀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후보자는 “필리핀에서는 산모가 낙태를 하러 오면 의사가 신고해서 다 잡혀가고 징역형을 받는다”면서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해서 도망친 후 낳은 코피노들이 많은데, (낙태할) 방법이 없으니까 코피노를 낳아도 사회가 그 아이를 관용적으로 받아들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같으면 외국 사람이랑 잘못된 아이를 낳으면 버리거나 입양을 하거나 낙태를 할 텐데 필리핀은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강간은 범죄에 불과하고 강간으로 인한 임신은 강간 피해 여성이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계율을 이유로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생긴 아이라도 무조건 낳으라고 강권하는 것은 강간 피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이 논란에 대해 김 후보자는 “강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한 것”이라며 “임신을 원치 않지만, 예를 들어서 너무 가난하거나 남자가 도망갔거나 강간을 당한 경우라도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 사회적·경제적 지원 이전에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왜 싱글인 주제에, 강간당한 주제에 아이를 낳냐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보니 아이를 낙태하거나 버리거나 입양시키고, 그래서 한국에서 입양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후보자는 당시 방송에서 “낙태죄 합헌 판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여성계의 반발이고, 하나는 대부분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라며 “(낙태죄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을 가졌으니까 (태아가) 세상에 나와서 빛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면서도 “그 반대편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아이를 잉태한 여성의 인권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중립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2년에서 6년 사이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임신중지 수술을 하거나 지원한 의사와 간호사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러한 엄격한 낙태죄는 필리핀 여성들을 위험한 불법 임신중지 수술로 내몰고 있다.
필리핀 ‘안전한 낙태 옹호 네트워크’(PINSAN)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매년 126만 건의 불법 낙태가 이뤄진다. 매년 1,000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이 제도 밖 임신중지 수술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한다. 필리핀의 헌법기관인 필리핀인권위원회(PCHR)은 지난 1월 “낙태권과 신체자율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낙태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행 후보자의 과거 발언에 야당들은 즉각 비판 성명을 냈다. 20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낙태에 관한 인식은 여성의 인권을 짓밟고 여성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끔찍한 발상"이라며 "변명은 필요없다. 후보자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는 김행 후보자의 위키트리 방송 당시 발언에 대해 "이는 강간당한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행위이며 여성의 인권을 부정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발언"이라며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면 다 괜찮은 것인가. 여기서 여성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 또한 잉태된 아이의 인권과 미래의 삶에 대하여서도 무책임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근 영아유기 사건만 하더라도 생모는 처벌 대상이지만 생부는 어디에서도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며 "모든 것이 오직 여성의 책임인 이 사회에서 막다른 길에 내몰린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과 처지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날을 세웠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여성 기본권 부정과 반헌법적 입장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가장 결정적인 결격 사유"라며 "여성의 권리 증진에 앞장서야 할 여가부 장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하다.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장관 후보 지명 후 첫 번째 도어스테핑에서 임신중지권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그럴 듯한 미사여구라며, 사실상 임신중단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 것에 비추어보면 김행 후보자는 여성의 기본권과 헌법상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확고하게, 여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장관의 자리는 개인의 사적인 소신이나 생각을 관철하는 자리가 아니라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한 공적 역할을 공명정대하게 행해야 하는 자리"라며 "정의당은 헌법 위의 대통령에 이어, 헌법 무시 장관까지 우후죽순 나와서 사적 정치, 사적 행정이 횡행하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인권위원회도 "김 후보자는 매년 1,000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이 제도 밖 임신중지 수술의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알고는 있느냐"면서 "강간 등의 이유로 임신을 해도 출산을 강제해야 한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사회적 관용만 있으면 어떻게든 여성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할 말조차 잃을 지경이다"이라며 "여성을 오직 출산을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그야말로 여성인권과 여성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존중조차 결여된 자"라고 비판한 뒤 당장 지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굿모닝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굿모닝충청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