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이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대전 시민사회 한켠에서 잊혀졌던 장면 하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인사 논란이 아니다. 우리가 한때 뜨겁게 품었던 ‘기억의 윤리’를 끝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대전 시청 북문 앞 보라매공원에 앉아 있는 한 소녀의 침묵으로 이어진다.
2015년 3월 1일, 광복 70주년이자 제96주년 3·1절. 대전시는 시민 2377명의 참여와 함께 전국 최초로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역사 왜곡에 맞선 인권과 평화의 상징을 세우자는 대전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이 제도와 맞닿은 순간이었다. 제막식이 열린 그날, 보라매공원에는 판굿과 헌무가 울려 퍼졌고, 시민과 학생, 활동가, 정치인 등 5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소녀상은 단지 하나의 동상이 아니었다.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땅을 딛지 못한 맨발로 의자에 앉아 있다. 어깨 위의 새는 자유를, 꼭 쥔 두 손은 분노를, 발 아래의 그림자는 소녀가 된 할머니의 삶을 담고 있다. 그 곁의 빈 의자는 떠난 피해자들과, 함께 기억하자는 모두를 위한 자리였다. 그날 제막식에 참석한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소녀상에 꽃목걸이를 걸며 조용히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당시 잘못된 한일조약으로 풀지 못한 우리의 한을,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는 풀어야 하지 않겠나.”
김복동 할머니(1926~2019)의 발언은 단지 정치권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외침이었다.
권선택 전 대전시장은 15일 <굿모닝충청>과의 통화에서 “대전은 시민과 행정이 함께, 전국에서 가장 먼저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지자체 중 하나로 기억된다”며 “그 의미는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만든 역사라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문제이고, 반일을 넘어서 인권의 가치와 기억의 윤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며 “당시 시민들의 뜻을 행정이 끝까지 함께했고, 지금도 그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충남대학교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2017년, 충남대 총학생회가 국립대 최초로 학내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결의했고, 시민사회와 교수단체도 동참했다. 그러나 당시 대학 측은 ‘국제교류에 부정적 영향’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고, 이후 총장이 된 이진숙 당시 총장은 수년간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과 시민들은 2022년 8월 15일 밤, 교내 서문 잔디광장에 소녀상을 기습 설치했다. 다음 날 학교는 철거를 예고했고, 그 앞에서 학생들이 밤새 소녀상을 지켰다.
이와 관련해 이진숙 후보자는 “소녀상 설치 후 2022년 8월 22일 원상복구 공문을 발송한 경위는, 소녀상의 역사적 의미나 정치적 메시지와 관련해 이뤄진 의사결정이 아니었다”며 “국유재산법에 따른 관리자 동의 없이 설치된 것이어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적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당시 총장으로서 소녀상 설치 협의 과정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역사의식이 부재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날 학생들이 지킨 것은 단지 하나의 동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을 지우려는 질서’에 맞선, 침묵의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오늘날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대전의 시민들로 하여금 다시금 보라매공원 소녀상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대전 소녀상은 바람이 불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고,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으며, 외면당한 진실이 웅크리고 있다.
교육이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라면, 소녀상은 기억을 잇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마주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 소녀의 눈앞에, 오늘 우리는 떳떳이 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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