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도박판에는 여러 가지 은어들이 있다. 이른바 사기 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타짜'라고 하며 그 타짜에게 당하는 사람을 '호구'라고 한다. 그리고 이 '호구'들을 도박판으로 끌어들여 타짜들이 '수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을 '설계사'라고 하는데 타짜들이 기술을 써서 자신들만 이길 수 있도록 짜놓은 패를 '탄'이라고 한다.
이 '탄'이 들어간 패는 일반인은 어지간해선 이것이 탄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며 100이면 100 모두 타짜들에게 수술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도박판에서만 있을 것 같은 타짜가 여론조사 시장에도 들어왔다. 여론조사 시장에 들어온 이 타짜의 이름은 명태균이다.
여론조사계의 타짜 명태균이 실시했던 이른바 '맞춤형 여론조사'의 비밀이 지난 11일 밤 JTBC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져 뭇 사람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물론 여론조사에서도 도박과 마찬가지로 '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이건 대부분의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알고 있는 수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명태균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또 대놓고 '탄'을 만든 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수법이었다. 기존 여론조사에서 '탄'을 만드는 것은 티 안 나는 수법을 통해서 만들었다. 우선 기존 여론조사에서 '탄'을 만든 수법은 무엇이었는지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현재 정치 지형을 볼 때 30~50대는 더불어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반면에 60대는 스윙보터 성향이고 70대 이상 노년층은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30~50대는 직장인들이 많은 반면 70대 이상 노년층은 시골에서 농사 짓는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 시간이 많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평일 낮 시간에만 여론조사를 돌릴 경우 직장인 비중이 높은 30~50대는 일하기 바쁜데 여론조사에 응답할 시간이 없으니 끊어버리는 반면 70대 이상 노년층은 여론조사에 쉽게 응답할 수 있다. 그럼 민주당 지지율은 낮게 국민의힘 지지율은 높게 나올 수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설문지를 티 안 나게 조작하는 방법이 있다. 설문 문항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좌우하는데 특정 정당에 불리한 이슈가 들어간 문항을 앞 순번에 배치하면 그 정당 지지층은 여론조사 응답 중 불쾌감을 느껴 전화를 끊어버릴 수 있다. 이렇게 중간에 끊어버린 응답자의 경우는 여론조사 결과에 산입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기존의 여론조사는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탄'을 만들었다. 하지만 명태균의 여론조사에서 등장한 '탄'은 정말 기상천외한 수법이었다.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명태균은 과거 출판사를 경영할 당시 각종 책자와 전화번호부 등을 만들었는데 이 때부터 개인 정보를 모아서 데이터를 누적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JTBC 단독 보도 이전에 뉴스토마토 김기성 편집국장도 지난 8일 명태균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 명부를 바탕으로 '여론조사'로 눈을 돌렸고 김 전 의원을 만나게 되면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출판업을 하면서 전화번호부를 만들 당시 모아뒀던 개인정보를 토대로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한 표본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표본을 조작하는 '탄'을 만든 건 명태균이 아마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명태균은 이런 식으로 '맞춤형 여론조사'를 실시해 국민의힘의 환심을 샀고 마침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눈에도 들 수 있게 됐다. 20대 대선과 8회 지선 당시 횡행했던 '여조라이팅'의 진원도 따지고 보면 이 여론조사계의 타짜 명태균이 만든 '맞춤형 여론조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보면 국민 대다수는 이 명태균이란 타짜에게 수술당한 호구들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도박판에서도 제아무리 타짜들이 현란한 손기술로 '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호구가 오지 않는다면 수술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판 설계사가 중요한 것이고 바람잡이가 중요한 것이다. 영화 <타짜>에서도 주인공 고니의 스승 평경장이 "물고기를 물 밖으로 끌어내는 것과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를 때려잡는 것. 그 중에 뭐가 더 어렵겠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명태균의 사례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명태균이 저렇게 '탄'을 만든 구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해도 언론들이 바람잡이처럼 떠들지 않으면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가끔 한 번씩 나오는 '튀는 여론조사' 정도로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들은 명태균의 '맞춤형 여론조사'를 요란스럽게 보도했고 이는 이후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사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 차는 불과 0.73%p 차였고 정의당 후보 심상정이 표를 분산시킨 덕에 윤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최소 윤석열 후보가 5~10%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빗나간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여론조사기관들은 아직도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언론이 해야할 일은 여론조사 결과를 단순히 기계적으로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분석해서 알려줘야 한다. 왜 언론들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명태균의 조사에 같이 바람잡이처럼 동조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명태균이 '여조라이팅'의 주범이라면 언론들도 거기에 편승한 공범이다. 기성 언론들은 이에 대해 반성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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