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준의 직설] 기계적 중립이야말로 가장 비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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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조선일보 5면의 기사. 기계적 중립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다.(출처 : 김규현 변호사 페이스북)
2일 조선일보 5면의 기사. 기계적 중립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다.(출처 : 김규현 변호사 페이스북)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기계적 중립'. 이 말의 뜻은 편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진정으로 어떤 것이 중립인지 따지지 않고 획일적으로 중간적 태도만을 고집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12.3 내란 사태에 들어 소위 보수 언론들이 마치 자신들이 공정한 척 '기계적 중립'에 가까운 보도 행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계적 중립'이야말로 가장 비겁한 태도다.

언론사들의 '기계적 중립'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예는 더불어민주당 측 주장과 국민의힘 측 주장을 같이 실어놓고 대결 구도를 붙이는 것이다. 양쪽 말을 다 싣는 것이 '중립'이라고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중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것은 '중립'을 가장한 '졸렬함'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유명 언론인인 故 송건호 씨의 논설문을 국어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내용이 아직도 대강 기억이 난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예시로 들었다. 당시 윤 의사는 물통 폭탄을 터뜨려 일본 육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을 폭사시켰다.

한국 측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선 독립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측에선 "천황 폐하의 생신 축하 행사에 폭탄을 던져 무고한 사람들을 폭사시킨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독립운동이라는 우리의 주장과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을 나란히 싣는 것이 과연 '균형잡힌 기사'라 할 수 있을까?

송건호 씨는 이를 예시로 들며 '가장 객관적인 기사는 가장 주관적인 기사'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필자 또한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현재 12.3 내란 사태와 윤석열 탄핵 정국을 거치며 대다수 언론사들은 이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12.3 내란 사태는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정을 파괴하고 윤석열 개인을 위한 독재정권을 수립하려 했던 반헌법적 내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런 윤석열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그런 반헌법적 작태를 옹호하는 궤변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내란 세력들의 궤변을 함께 싣는 것이 과연 '중립적인 보도'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위에 첨부된 사진은 조선일보의 2일 자 5면의 헤드라인인데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입법 독재'라는 말이 사전에 있는 말인지 먼저 따져묻고 싶다. '입법 독재'라는 말 자체가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멋대로 만들어낸 신조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조어를 싣는 것이 과연 중립적 태도인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윤석열의 호위무사' 노릇을 한 사람은 아마도 윤상현 의원일 것이다. 그가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국회 출입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취재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쓴 기사를 읽어보면 태반이 그저 '윤상현 가라사대' 기사에 불과했다. 윤상현 의원의 내란 옹호 발언을 그대로 실어주는 것이 과연 '객관적인 기사'인가?

필자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내란 옹호 기자회견에 모든 언론사들이 관심을 꺼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국민의힘 의원들이 극우 성향의 단체들과 목사, 승려 등 종교인들을 국회 소통관으로 불러 기자회견을 여는 이유는 언론사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재미를 붙여 자꾸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들의 궤변을 비판할 목적으로 취재를 하는 것이면 몰라도 기계적으로 싣는 것이 과연 언론사가 할 일일까?

'기계적 중립'의 기사가 위험한 이유는 거짓 균형(False Balance)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에서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면 마치 소수의 의견이 다수 정설과 맞먹을 정도로 팽팽히 맞선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고, 이것은 그 소수 진영에서 노리는 것이다. 대놓고 정론이 아닌 주장을 하지는 못하니 허위로 중립 여론을 형성한 뒤 자신들의 입지를 늘린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윤석열 탄핵 반대 세력들의 목소리를 나란히 실을 경우 그들이 마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내란 수괴 윤석열을 파면시켜 무너진 헌법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찬반이 엇갈리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라지만 실어줄 것이 있고 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고 독재정권을 수립하려 한 자들의 궤변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기계적으로 전하는 것이 과연 중립이고 객관인지 기자들 스스로가 생각해야 할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기계적 중립'은 절대 중립이 아니고 오히려 가장 '졸렬한' 태도다.

중립적이고 상대적인 태도가 좋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지키는 사회 규범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찬반이 갈리는 경우엔 여야 양쪽의 발언을 함께 싣는 것은 중립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규범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두고 찬반이 갈리는 경우엔 양쪽의 발언을 싣는 것은 절대 '중립'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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