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홀로 오를 생각이던 칠갑산(七甲山·561m)은 산악회 회원 몇 명이 동행하면서 한결 더 활기찬 산행이 됐다. 청양군 대치·정산·장평면에 걸쳐 있는 칠갑산은 지난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청양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총 3만2542㎢에 달하는 면적에 아흔아홉골과 사방으로 뻗은 산줄기를 품어 산세가 복잡하면서도, 울창한 숲과 계곡이 빚어내는 수려한 경관 덕분에 ‘충남의 알프스’로 불린다.
이날 코스는 천장호 주차장에서 출발해 출렁다리를 건너 정상에 오른 뒤 원점으로 회귀하는 길이었다. 가을 문턱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늦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 산길을 오르자 땀방울이 연이어 흘러내렸고, 숨이 차올라 발걸음이 버거웠다. 분위기를 살려보겠다며 달려올랐더니, 동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보더콜리 같다”며 별명을 붙여주었다. 힘겨운 길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기대했던 만큼의 탁 트인 조망은 다소 아쉬웠지만, 하산길에 만난 풍경은 그 모든 아쉬움을 덮었다. 칠갑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천장호(天長湖)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의 장관이었다.
천장호는 본래 농경지 관개를 위해 축조된 1200㏊ 규모의 인공호수다.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1979년 완공된 뒤 ‘청양 10경’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사계절 다른 빛깔을 보여주는 호반의 절경은 언제 찾아도 운치를 더한다. 특히 2009년 연결된 출렁다리는 길이 207m, 높이 24m 규모로, 국내 최장 출렁다리이자 동양에서 두 번째로 긴 현수교로 기록됐다. 다리 중앙에는 청양을 상징하는 고추 모형 주탑이 세워져 있으며, 건널 때마다 크게 흔들려 짜릿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전국 지자체의 출렁다리 경쟁을 촉발한 ‘원조’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최근에는 ‘네트 에코 워크’라는 새로운 체험시설이 들어섰다. 177m 길이의 그물망 다리와 타워를 건너는 코스로, ‘인디아나존스 코스’ 등 다섯 가지 구간에서 모험의 긴장과 천장호의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가족과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주변에는 용호(龍虎) 전설을 형상화한 조형물, ‘콩밭 매는 아낙네상’, 소원을 기원하는 잉태바위, 그리고 천문대까지 조성돼 있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힐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칠갑산은 산림청과 블랙야크가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이날도 인증을 위해 블랙야크 앱을 켰으나 오류 탓인지 제대로 등록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명산의 가치는 인증 마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자체가 들려주는 정취에 있음을. 바람에 실린 숲 냄새와 동료들과 나눈 웃음, 땀방울의 무게가 더없이 값졌다.
역사적 숨결 또한 칠갑산의 품에 깃들어 있다. 신라 문성왕 때 보조국사가 창건한 장곡사(長谷寺)는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천년 고찰로, 산세만큼이나 깊은 세월의 울림을 전한다. 한때 청양 동서를 가르던 험한 한티고개, 그리고 장곡사 인근에 조성된 350여 구의 장승공원도 칠갑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정상에서의 풍경은 다소 부족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걸은 원점회귀 코스에서 얻은 추억은 오히려 더 깊게 남았다. 천장호와 출렁다리의 장관, 그리고 ‘100대 명산’이라는 이름보다 더 소중한 산의 정취가 칠갑산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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