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단] 염치불구(廉恥不拘)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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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이시원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사퇴여부를 둘러싸고 추측이 무성하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이하 한덕수)이 끝내 사퇴를 하고 대선후보의 길에 공식적으로 나섰다. 권한대행으로서 한덕수의 임기는 1일 자정을 기해 종료되었다.

한덕수가 사퇴하기에 앞서, 같은 날 공교롭게도 대법원은 더불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후보의 공직선거법위반 상고심 결과를 발표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는 선고를 내렸다. 더불어 민주당은 사법부 쿠데타라는 반응을 보였고, 상고기각을 예상 하였던 많은 시민들은 이게 무슨 경우인가하고 의아해 하였다.

국민의 힘은 기다리기나 했듯이 이재명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내란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내란잔당으로 의심되는 한덕수가 공식적인 대선행보를 선언하고 대법원이 선거법위반 사건을 파기 환송하는 선고를 내림으로써 다시 내란후유증의 혼동에 빠져들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부터 국무총리직을 수행해온 한덕수는 지난해(2024년) 12월 14일 윤석열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되었다. 권한 대행이 된 직후, 그는 위기에 처한 국정을 안정적으로 균형 있게 이끌어가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임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권한 대행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역시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올해(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그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 다시 대통령 권한 대행의 국무총리로 복귀하였다.

그는 4월 4일 윤석열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결정을 선고 받은 뒤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하여 다음 정부가 차질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4월 8일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면서 밝힌 입장의 표명에서도 차기 대선과정을 공명정대하게 관리해 나갈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밝혔다.

국민들 또한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서, 내란세력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든 그에게 다음 정부가 구성될 때 까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의 소임을 다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밝혀왔던 차기 대통령 선거의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책무와 안정적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팽개치고 그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몰염치를 선택하였다. 몰염치를 넘어 염치불구의 극치, 염치불구의 끝판왕임을 자초하였다.

대학 졸업 후, 공직자의 길을 선택한 한덕수의 이력과 경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다. 그는 지난 50여년의 기간 동안 주요 경제부처의 요직과 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경제와 통상의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수행하는 행운을 누렸다. 압축적인 성장과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거듭해온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정부를 넘나들며 장관, 대사, 총리 등 소위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가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중용되어 온 점은 능력있는 기술관료(technocrat)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출세주의와 기회주의적인 처신에 능했으면 정권을 넘나들며 그토록 오랫동안 정무직 공직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이력과 경력 그리고 행적은 카멜레온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한 인물의 변신을 실감나게 그려낸 전광용 작가의 「꺼삐딴 리」를 연상케 한다.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꺼삐딴 리」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소련군의 점령하에 있던 북한에서도, 그리고 미국이 좌지우지하던 남한에서도 성공을 거듭한 인물이다. 한덕수를 기회주의적인 변신과 성공을 거듭한 소설속의 인물 「꺼삐딴 리」와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필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은 윤석열 정부에서, 제2인자의 지위에 있었던 한덕수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대선판에 뛰어든 그를 염치라는 한국적 윤리의 잣대에서 평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염치는 개인의 행동이 타인이나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게 만드는 윤리적 기준이자 사회적 감각력으로 작동하여 왔다. 염치는 체면, 명예, 도리 등을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부끄러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심리적 메카니즘이다.

즉, 한국사회에서의 염치는 단지 수치심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도덕성을 지키게 하는 내부의 규제 장치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린다’든가 ‘염치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등등의 표현이 자연스러운 것은 그 만큼 염치가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주위에는 남의 시선이나 체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생존을 위해 염치없는 짓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이 저지른 내란으로 고위공직자들의 민낯이 들어나는 경험을 하였다. 그 고위공직자의 대표적 인물이 한덕수이다.

그는 윤석열이 파면된 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해야 할 책무를 맡았음에도 때로는 애매한 행보로, 때로는 권한대행의 역할로서는 걸맞지 않은 행보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또 그 자신이 탄핵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던 인물이 이제 와서는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공식적인 선언을 하여 정국을 더욱더 미궁에 빠뜨리고 있다. 선출직 공직자로서 어떤 역할도 해보지 못했던 그가 혼란스러운 정국상황을 발판으로 삼아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는 국무총리라는 공식직책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일시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는 윤석열 내란 일당이라는 혐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가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되어 이 나라의 국정운영을 담당하게 되면 윤석열 정부의 연장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난 3년 가까이 무능력, 무책임, 무소통으로 일관한 정부의 국정 운영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국정운영의 제2인자가 한덕수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던 중 대선출마를 준비하고 이를 실행한 것은 국민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이시원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이시원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그는 대선출마를 준비과정에서 국무총리실 소속 공무원들을 동원한 의심도 받아왔다. 그가 2일 대통령 출마 공식선언을 하면서 밝힌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그동안 혼란스러운 정국상황을 수습하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준비에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염치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염치불구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그에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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