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4일 한겨레가 단독 보도로 KBS가 최근 기자들에게 전두환 씨의 호칭을 ‘씨’에서 ‘전 대통령’으로 바꾸도록 강제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한겨레의 해당 기사를 살펴보면 KBS 방송뉴스 책임자가 소속 기자들에게 “전두환의 호칭은 앞으로 ‘씨’가 아니라 ‘전 대통령’으로 통일해달라”고 일방적으로 공지했다고 한다.
전두환 씨는 이미 12.12 군사반란으로 법적 처벌을 받는 내란의 수괴였기에 노태우 씨와 함께 문민정부 시절부터 ‘전 대통령’이 아닌 ‘씨’로 호칭하도록 정해져 있었는데 이를 어긴 것이라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박민 사장 취임 이후 급속도로 우경화되고 있는 KBS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에 따르면 4일 오후 4시 41분 경에 KBS 기자들이 사용하는 내부망인 보도정보시스템에 김성진 통합뉴스룸 방송뉴스주간 이름으로 해당 내용이 담긴 공지가 올라온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 주간은 이 공지에서 “‘전 대통령’은 존칭이 아니라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에 대한 지칭일 뿐”이라며 “김일성을 주석으로 부르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부르고, 김정은도 국무위원장으로 부르는데 전두환만 씨로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겨레가 웹 검색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KBS는 2018년 여름 무렵까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다가 이후부터 ‘전두환 씨’라는 호칭을 섞어 사용했고 최근에는 후자로 보도 방침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위 공지가 올라오기 약 2시간 전 보도된 ‘전두환 추징금 55억 추가 환수…867억 끝내 미납’ 기사에는 “고 전두환 씨”가 주어로 쓰였다.
문제의 발언을 한 김성진 주간은 과거 2021년에도 사내 게시판에 “전두환 씨,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일성 주석, 이순자 씨, 이설주 여사. 우리 뉴스에서 쓰는 호칭입니다. 이런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책임있는 분의 답변을 요청드립니다”라고 쓴 적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김 주간은 박민 사장이 취임한 작년 11월 13일 통합뉴스룸 방송뉴스주간 자리로 발령받았다. 김 주간은 부임 일주일 뒤 편집회의를 통해 ‘한중일→한일중’, ‘북미→미북’ 등 표기 방침을 수정하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이는 대개 극우 세력들이 하는 행태인데 소위 자유진영 국가 표기를 앞세우고 구 공산권 국가 표기는 뒤로 배치하는 것이 이들 주특기였다.
익명을 요청한 KBS 기자는 한겨레에 “전두환과 같은 민감한 인물의 호칭 문제는 그 자체로 편집권 문제이기 때문에 기자들 간 논의를 통해서 정한다. 이렇게 강제하는 경우는 없다”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극우 성향의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의 논조 자체가 우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KBS의 강제 지침은 기자의 자율적 기사 작성을 박탈한다는 것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역사를 부정했다는 것에 있다.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는 12.12 군사반란의 주역으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이미 내란 수괴임이 확정되었다. 따라서 집권 자체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문민정부 시절부터 ‘전 대통령’이란 호칭이 삭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대통령’이란 호칭을 쓸 경우 전두환과 노태우 두 사람에게 합법적인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12.12 군사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대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런 KBS의 시도는 역사 퇴행에 가까운 반동적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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