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코리아 패싱은 한국인을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다. 특히 한국에서 공연을 하지 않고 일본을 거쳐 싱가포르나 홍콩 공연에 나서는 해외 팝 가수들을 볼 때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팝 가수들은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어 한다. 한국은 7위 정도의 음악 시장 규모를 갖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들은 한국의 공연 문화도 좋아한다. 떼창이 대표적이다. 콜드플레이도 한국 팬들은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더 사랑한다고 했다.
그들이 한국을 지나치는 것은 제대로 된 대중음악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중 패싱이라는 단어도 있다. 공연장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K팝 가수조차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공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K팝 음반 판매량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17.7%, 음원 이용량은 7.6% 감소했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음반과 음원 시장이 커졌고 대신 엔데믹에는 콘서트 시장이 폭증했다.
전체적으로 흐름은 공연 라이브 무대로 변했다. 과거에는 음반과 음원 판매량이 주요 시작이었지만, 댄스 음악 특히 K팝이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며 콘서트 투어가 최대 매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국내 최대 기획사인 하이브의 공연 매출은 올해 1분기에만 252% 급증했다. YG엔터테인먼트 역시 292% 증가했다. 본격적인 공연 시즌 매출액은 더 증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탄소년단이 해외 투어를 할 경우 1500억 원 정도의 매출액을 기록하는데, 세븐틴이 1600억 정도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공연 방식이 촘촘해졌다. 정규앨범이 아니더라도 3~4곡의 미니 앨범, 1~2곡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해외 투어 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팬미팅 콘서트라는 양식도 생겼다.
대중음악의 티켓 매출액은 약 3000억 원이 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위 10개 공연이 만석이 넘는 공연이었다. 대형 공연장의 매출액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2024년 상반기 기준 42%가 대형 공연장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우리나라 대형 대중음악 공연장은 부족하다. 1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전문공연장이 없다.
서울 올림픽 공원의 KSPO돔(체조경기장)과 고척 스카이돔은 스포츠 경기장이기 때문에 스포츠 경기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더구나 고척 스카이 돔은 천장에 무거운 구조물을 달 수 없어 공연 연출에 한계가 있다.
영종도에 새로 생긴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다목적 공간이라 농구·복싱과 같은 스포츠 경기와 공연을 같이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지향한다. 다만, 국내 최초의 건축음향 설계 방식을 적용해 음악 공연에 최적화를 기했다.
하지만 영종도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KSPO돔(체조경기장)에 몰리는 현상이 큰데 이미 올해 공연을 지난해에 신청해야 하고 심사도 받아야 한다. 신청도 사전에 30%의 대관료를 지불할 수 있는 제작사가 할 수 있다.
잠실 주경기장은 5만 명 정도의 돔 투어 공연이 가능하지만, 리모델링 작업으로 인해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다른 전국의 10개 공연장과 함께 잔디 보호 등의 이유로 2025년부터 대중음악 공연을 받아주지 않는다.
고양종합운동장이나 인천 문학 경기장 등도 4만 명 정도가 가능하지만 역시 음악 전문공연장이 아니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일본은 스타디움(7만 명), 돔(5만 명), 아레나(1만~2만), 슈퍼아레나(3~4만 명) 등이 40여 곳에 이른다. 미국은 150개의 아레나 공연장이 있고 유럽도 130개 넘는다.
콘서트는 단순히 티켓 매출액이 아니라 복합경제 효과를 낳는다. 이를 ‘엔터투어먼트 효과’라고 한다. 쇼핑·교통·음식·숙박·명소 관광 등에서 지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 효과를 언급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공연에서 경제 효과는 3~4억 싱가포르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960억 원에서 3940억 원 정도다. GDP의 0.2%를 끌어 올린 효과였다.
이 때문에 정부조차 아낌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며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을 유치하려 했다. 처음에는 ‘정부가 나서서 무슨 짓이냐’라고 비판이 있었지만, 경제 효과 이후 주변 국가들이 테일러 스위프트에 러브콜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공연장 건립이 진행되고 있다. 여러 안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창동에 아레나 공연장을 짓고 있는데 2027년 완공된다. 고양시에 지으려던 아레나 공연장은 불발되었지만, 4만2000석 규모로 다시 추진하겠다고 경기도가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는 2035년 완공 목표로 수도권에 5만 명 정도 수용 가능한 복합공연장을 공약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국회가 세종으로 이전할 경우 의사당을 공연장으로 전환하자는 제언을 했는데 이전은 불확실한 면이 있다.
업계에서는 기존 시설을 전환하자는 제언도 했다. 올림픽 공원 내 벨로드롬( 자전거 경기장, 테니스 경기장)만이 아니라 핸드볼 경기장, 올림픽 홀을 음악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복합예술공연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공연 쿼터제의 경우 스포츠계의 입장도 반영해야 한다. 스포츠팬이 더 많고 종목도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과제가 있다. 여기에서 제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도 대중음악 공연과 클래식 공연이 같이 이뤄질 수 있는 복합예술공연장이 될 필요가 있다. 거꾸로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에 오페라나 클래식 연주회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2026년 착공하게 되는 여의도 공원 제2의 세종문화회관은 대중음악 공연과 클래식 공연이 이뤄질 수 있게 좀 규모를 아레나 급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4000~5000석 공연과 1만 명 공연을 할 수 있는 컨버터블 공연장이면 될 것이다.
이미 영종도의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이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런 방안들이 당장에 수요를 해결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래서 야외전문 음악 공연장도 생각할 수 있다. 페스티벌 공연도 젊은 세대가 즐기기 때문이다. 최소한 봄부터 가을까지는 운영이 가능하다. 더운 여름에는 야간 공연으로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제대로 된 대중음악 공연장이 없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나 팬심의 소외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 문화 향유의 문제와 닿아있다. 나아가 공연 전문 제작사와 제작 인력의 육성과 발전에도 저해가 된다.
공연 음악 산업의 발달과 음악 공연계의 일자리 창출은 미래 세대의 비전과도 연결된다.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며 자신의 자아실현을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열망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다. 이점이 새로운 시기 문화예술산업의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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