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컬처 픽] 택배·배달 '미닝 아웃' 트렌드는 왜?

플랫폼 노동자 간과하면 사회 전체가 위험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다른 기사 보기
  • 입력 2025.07.31 10:36
  • 수정 2025.07.3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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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뜨거운 열기는 상상 이상인데 오토바이·스쿠터, 자전거 배달 노동자는 온몸으로 그 열기를 받아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캡처/굿모닝충청=노준희 기자)
도로의 뜨거운 열기는 상상 이상인데 오토바이·스쿠터, 자전거 배달 노동자는 온몸으로 그 열기를 받아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캡처/굿모닝충청=노준희 기자)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특송(2022)’은 무엇이든 신속하고 빠르게 배달하는 콘셉트가 중심이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무슨 일이 있어도 제때 안전하게 배달하기 때문에 원하는 수요가 줄을 선다. 다른 택배 인력이 꺼리는 물품일수록 오히려 선호된다. 물론 비용은 그에 상응하지만 말이다.

영화 ‘청설(2024)’에서는 식당 부부 아들이 스쿠터를 이용해 도시락을 배달해 준다.

노동자라기보다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상당히 부담이 덜할 수 있다. 부모님은 애써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하니 언제는 그만둘 수 있다.

이런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율 선택이 언제든 가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영화 ‘84제곱미터’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다. 물론 생계형은 아니다. 대신 영끌을 했기 때문에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부담이므로 그만둘 수 없다.

이런 상황과 비슷한 영국 영화 속 주인공이 있다.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2019)’의 주인공은 자신의 노력만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84제곱미터 주인공보다는 나은 건 주택담보대출 계약금을 모아야 하므로 배달 일에 뛰어든다는 것. 빚을 지지 않기 위해 돈을 모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를 하며 남의 배설물을 치우는 아내를 생각하면 쉽게 그만둘 수 없다. 그야말로 전업 배달 노동자이다.

한편, 영화 84제곱미터 주인에게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고 자전거가 있을 뿐이다. 오토바이의 스피드에 당할 수가 없고, 어떤 때는 그 위세에 눌려 자빠지기도 한다.

비나 눈이 온다면 더욱 불리하기만 하다. 오로지 자신의 육체 근육에 의존해야 하기에 피로도가 훨씬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차량보다 자전거가 나을 때도 있다. 바로 러시아워 상황이다. 차량은 안전하고 빠를 수 있지만 도로가 막힌 상황이라면 절대적으로 불리하기만 하다.

이 차량 사이를 자전거는 유리하게 극복할 수 있다. 더군다나 자전거 전용 도로가 지정된 곳이라면 더욱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차량이건, 오토바이·스쿠터, 자전거라도 폭염이 기승인 나날에는 모두 쉽지 않다. 역대 최고의 폭염 속에서 배달 라이더는 열폭의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도로의 뜨거운 열기는 상상 이상인데 오토바이·스쿠터, 자전거 배달 노동자는 온몸으로 그 열기를 받아내야 한다.

더구나 자전거는 자신의 근육까지 가동해야 하니 낮에는 못하고 야간에나 시도할 수 있다. 차량 택배 노동자는 짐칸이 크기 때문에 들고 오르내려야 하는 하중 무게가 근골격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택배 배달에 관한 ‘미닝 아웃(Meaning Out, 소신 소비)’ 움직임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의미’라는 뜻의 'Meaning'과 '벽장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Coming Out'의 합성어인 미닝 아웃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자기 생각과 의도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이다.

주로 상품이나 서비스 소비 영역에서 회자가 많이 되었다. 자신의 효용을 위해 무조건 소비하기보다는 사회적 효용 후생을 더 생각하는 가치 소비 현상이 대표적이다.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거나 공정 무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선호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택배 배달에 관한 미닝 아웃의 출발은 전달 속도에 있다. 미닝 아웃 트렌드의 참여자들은 총알, 로켓을 강조하는 급속 전달에 대항하여 슬로우 푸드에 버금가는 슬로우 배달 택배를 원하는 것이다.

사전에 당일 배송이나 새벽 배송을 하지 않거나 빨리 받지 않아도 되니 일반 배송을 원하는 뜻을 밝힌다.

배달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에 불매 운동을 벌이는 적극적인 사례도 있다. 로켓 배송, 총알 배송과 같이 속도전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몬스터 폭염에 배달 노동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목숨을 잃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택배 노동자에게 엄청나게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 자체의 존재감이나 가치는 매우 간과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게 목숨을 잃어가는 구조가 심화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원래 제목은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어요(Sorry We Missed You)’이다. 빠른 배달로 편익을 제공해 주는 택배 노동자들을 놓쳤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택배업체 점장은 “수많은 집 다니면서 얼굴 본 고객 중에 진심으로 자네 안부를 물은 적 있느냐”라면서 “그들은 가격과 배송, 손에 쥐는 물건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 쳐도 일반 사람들에게 어떤 악영향이 있을까? 택배 노동자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정도의 메시지만 생각할 수 있을까?

드라마 ‘트리거’에서는 문백이라는 빌런이 이러한 현실을 악용하기도 한다. 자기 택배밖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이 빌런은 택배를 총기 유포의 수단으로 보고 대한민국을 총기 난사의 왕국으로 만들어 버리려 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카이스트 미래 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카이스트 미래 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마약 운송 수단으로 다뤄지는 모습은 너무나 흔하게 등장했다. 만약 택배 노동자의 인권과 존재감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그들이 사전에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데 택배 상자 안에 뭐가 있든 알 바 아니게 된다. 긴급한 때가 아니라면 배달 라이더의 죽음을 부르는 빠른 배송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우리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희생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폭염을 계기로 배달 미닝 아웃이 부각되었으니 이를 매개로 슬로우 택배 문화가 확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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