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지난 29일 밤 뉴스타파가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이른바 청부민원의 조직적 공모 흔적을 발견해 보도했다. 그간 류 위원장은 “자신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200여 건의 관련 민원을 그 내용과 접수 시각, 신청인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전수 분석한 결과, 누군가에 의한 민원 기초 글 작성과 배포, 민원 접수 시기 지정 등 조직적 개입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동일한 내용의 민원 글을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접수한 사실이 드러났고, 각 그룹의 유일한 공통점은 류희림 위원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류 위원장이 이 같은 조직적 민원 신청 사실을 전혀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먼저 민원 내용을 보면 당시 방심위에 접수된 방송 심의 관련 민원 277건 중 정당 및 언론 시민단체가 무더기로 접수한 62건을 제외한 215건의 민원 글은 대부분 3가지 유형의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뉴스타파는 이들 텍스트가 가족과 지인, 관련 단체 등 여러 그룹에 다단계처럼 전파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방심위는 이 텍스트에 기반해 작성된 이른바 ‘복붙 민원’들을 근거로 긴급 심의를 결정해 결국 KBS, MBC, JTBC, YTN 등 방송사 4곳에 총 1억 4,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문제의 이 215건 ‘복붙 민원’은 모두 하나 같이 지난 대선 당시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를 심의해 달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뉴스타파는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러 그룹에서 거의 동시에 이들 민원을 방심위에 넣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번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뉴스타파가 지난 9월 4일에서 18일까지 보름 동안 방심위가 접수한 민원 215건의 내용을 분석한 세부 결과는 아래와 같다.

먼저 지난 9월 4일 오후 5시 38분에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공동 대표를 역임한 수구 단체 미디어연대 간부 박 모 씨가 방심위에 민원을 넣었다. 작년 3월 7일 뉴스타파 녹취록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 기사가 나간 이후 이 때까지 약 1년 반 동안 뉴스타파 인용 보도와 관련된 민원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박 씨가 민원을 낸 시점은 그 날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과방위에 출석해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각 방송사의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는 발언을 한 직후였다. 이 점부터 뭔가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박 씨의 민원 신청이 있고 다음 날인 5일 오전 10시 3분까지 관련 민원이 총 71건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날 10시는 바로 방심위의 ‘방송 소위’ 회의가 열리는 시점이었다. 방심위는 그 날 회의에서 전 날부터 쏟아진 민원을 근거로 뉴스타파 녹취록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 기사에 대해 긴급 심의를 결정했다.
이로 볼 때 거의 동일한 민원 내용이 반복적으로 들어온 이른바 ‘복붙 민원’의 시발점은 박 씨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류희림 위원장과 미디어연대란 단체에서 같이 활동했고 또 방심위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인물이기도 하다. 뉴스타파 측에서 입수한 박 씨의 민원 내용은 이렇다.



자세히 살펴보면 “신학림씨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가짜뉴스를 마치 사실인냥 보도한…” 과 같은 문장의 기본 골격이 같은 민원, 즉 '민원 텍스트 유형①' 해당하는 민원 글이 71건(9월 4~5일 접수) 가운데 43건에 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달라진 건 오직 민원 신청자와 피신청 방송사가 KBS, MBC, JTBC, YTN 등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
뉴스타파는 9월 4일 오후 5시부터 5일 오전 10시까지 민원을 신청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봤는데 ▲류희림 위원장의 조카와 동서 등 가족(8건) ▲류 위원장이 대표를 지냈던 미디어연대의 간부(3건) ▲류 위원장이 경주문화엑스포 대표 시절 인연을 맺은 예술단 대표와 그 가족(8건) ▲류 위원장이 재직했던 YTN 관계자(7건) 등이 확인됐고, 이들이 낸 민원은 모두 26건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즉, 첫 이틀 동안 접수된 '복붙 민원' 43건 중 26건은 류 위원장 관련 그룹에서 신청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각 그룹은 구성원이나 활동 지역이 모두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은 류 위원장과의 연관성 뿐이었다. 이 때문에 '민원 작성용 텍스트 자료'를 만들어 배포한 컨트롤 타워가 있었고, 여러 그룹에 동시에 배포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그리고 뉴스타파 측에서 분석 기간을 넓혀 9월 4일에서 18일까지 들어온 민원 215건을 분석했는데 청부민원의 실체가 더욱 선명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선 “신학림씨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당시 윤석열후보와 관련된 가짜뉴스를 마치 사실인 냥 보도한데…" 라는 내용의 문장이 들어가는, 즉 '민원 텍스트 유형①'에 기반한 민원 내용이 무려 124건에 달하며 이 기간에 접수된 전체 민원의 58%를 차지한다.
유형① 민원 글 중에서“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다음에 물음표(?) 부호가 동일하게 잘못 들어간 사례도 23건으로 확인됐다. 자료 전파 과정에서 누군가 잘못 쓴 물음표가 그대로 전달됐거나, 민원 내용이 담긴 파일을 개별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인 양'을 '사실인냥'으로 틀리게 적은 것을 그대로 '복붙'한 사례 또한 다수 확인된다.
특히 류희림 위원장이 대표로 재직한 경주엑스포 관계자와 류희림의 동생이 운영한 대구 A 수련원 관계자 등 전혀 다른 그룹 소속의 민원 글이 아래처럼 동일한 오류를 범한 것도 눈에 띈다.

두 번째로 눈에 많이 띄는 동일한 민원 글, 즉 '민원 텍스트 유형②'는 KBS '주진우 라이브'를 심의해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유형②는 모두 12건 확인됐다. 민원 신청자는 류희림의 친인척 3명, 경주엑스포 관계자 4명, 대구 A수련원 관계자 1명이었다. 역시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그룹인데 민원 내용은 일치한다.
세 번째는 MBC '피디수첩'을 겨냥한 민원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형③은 모두 10건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3가지 민원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민원은 69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민원 중 일부는 '복붙 민원'의 문장 구조와 똑같았다. 이는 지금까지 파악된 민원 그룹 외에 또 다른 그룹의 존재 가능성을 말해준다.

뉴스타파는 류희림 위원장 주변 인물을 4개 그룹으로 나누어 분류했다. 그렇게 나눠보면 ▲류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류 위원장의 전 직장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관계자들 ▲류 위원장의 동생이 운영하는 대구 A수련원 관계자들 ▲류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지낸 미디어연대와 그가 재직한 방송사 관계자 등이다.
뉴스타파는 이들이 낸 민원 내용을 분석했는데 우선 류 위원장의 동생이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는 대구A 수련원 관계자 4명이 낸 민원은 100%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위의 대구 수련원 측 민원 내용은 경주엑스포 등 다른 그룹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복붙 민원'은 이렇게 그룹과 그룹을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미디어연대 간부가 낸 민원과 거의 같은 문장의 민원 글을 올린 YTN과 경주엑스포 관계자들. 경주엑스포 관계자와 오탈자까지 똑같은 민원 글을 올린 류희림 위원장의 처가 식구들도 확인됐다.
MBC와 JTBC를 각각 심의해 달라고 두 건의 민원을 낸 사람도 있었는데, 이 사람의 민원 글은 물음표를 제외하고 류희림 위원장이 대표를 맡았던 경주엑스포 직원 김모 씨가 KBS 뉴스를 심의해 달라고 낸 민원 글과 일치했다. 모두 ‘청부 민원’의 유력한 증거들이다.
뉴스타파는 이상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류희림 위원장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4개 그룹은 동일한 내용의 민원 작성용 텍스트를 누군가로부터 전달 받았고, 이를 그대로 베끼거나 일부를 수정해서 방심위에 민원을 신청했다고 추론했다.
저작권자 © 굿모닝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굿모닝충청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