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심심치 않게 실언을 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잦은 사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비록 중국 노나라 미생처럼 목숨을 버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신뢰 형성에 있어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 정치인의 약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충청인과의 약속을 어겨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말로를 보인 대표적인 인물은 이명박 전 대통령일 것이다. 16번 가까이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공언했던 그가 갑자기 수정안 카드를 꺼내 들어 550만 충청인은 물론 온 나라가 들썩이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그도 2009년 11월 27일 특별생방송을 통해 “이 문제로 혼란과 갈등을 불러온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걸 잘했다고 하기엔 충청인을 비롯한 국가균형발전을 염원하는 국민의 배신감이 너무나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자신이 한 약속을 어겼을 때 국민에게 사과할 줄 아는 것도 한편으론 용기 아닐까 싶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충남지역 대선공약이 잇따라 파기되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논산 이전 좌초를 시작으로 서산공항 건설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하지 못해 500억 원 미만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서산공항의 경우 대선공약에는 ‘충청권 서해 관문 국제공항 건설’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한참 후퇴됐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특히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사업이 기획재정부 타당성 재조사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그 충격파가 큰 상황이다.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총사업비를 1236억 원으로, 대폭 삭감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오면서 실망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가덕도신공항(13조 원), 달빛철도(최대 11조 원) 등 타 지역 초대형 사업들의 경우 예타 없이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충남도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최고조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5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는 이런 점에서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충남도청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잇따른 충남지역 대선공약 좌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그나마 김태흠 충남지사가 ▲2차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 ▲국립치의학연구원 천안 설립 조기 발표 ▲아산 경찰병원 신속 예타 및 원안 통과 등 대선공약 이행을 강력 촉구했다지만 윤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서산~울진)와 제2서해대교 등 나머지 충남지역 대선공약들 역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대부분 좌초될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포신도시를 찾아 특유의 ‘어퍼컷 세레머니’와 함께 약속했던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도 ‘세월아 네월아’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니 황당하기도 하다.
이쯤 되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충청의 아들” 운운했던 후보 시절을 생각해 보면 배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연 자신이 한 공약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충남도는 김 지사의 지시에 따라 오는 12월 초쯤 이행이 불가능한 공약에 대해 도민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김 지사의 공약 대부분이 윤 대통령 대선공약과 중첩돼 있다는 점에서 정부여당을 향한 압박의 수위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충남도민의 정의로운 분노다. 대통령이 충남도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지역 숙원 해결은 갈수록 요원해질 것이다. 진정한 힘은 도지사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선7기 도정을 이끌었던 양승조 지사(전)는 서산공항 등 주요 현안 해결을 위해 청와대를 찾았을 때 “이러다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강력 경고했다고 한다. 13조 원이 넘는 가덕도신공항의 경우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는 반면 500억 원에 불과한 서산공항에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차원이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충남지역 11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8석을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거셌던 17대 총선 이후 민주당의 최대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2년 뒤엔 지방선거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의힘이 충남에서 ‘표 달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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