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윤석열 정부가 일종의 ‘국가비상금’이라 할 수 있는 일반예비비를 가장 많이 쓴 것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 및 해외 순방이었음이 2일 한국일보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히는 물가 관리는 그보다 후순위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보통 예비비란 예측 불가능하거나 다음 연도 예산 편성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시급하거나 이미 확보된 예산을 먼저 활용한 후 부족분에 대해 사용해야 하는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해외 순방이 과연 저 3대 원칙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예비비를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의 ‘재정 보완재’처럼 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윤석열 정부의 예비비 편성 내역과 사용조서 등을 살펴보면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 전후 1년 차에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것에 예비비를 가장 많이 쓴 것으로 확인됐다. 횟수도 가장 많았다. 용산 이전 경비 명목으로만 총 3차례의 예비비가 편성됐는데 4월 6일 행정안전부, 대통령, 경호처, 국방부에서 총 360억 4,500만 원의 예비비를 요청했고 4월 26일에 행안부, 대통령 경호처 요청으로 135억 6,300만 원이 국무회의에서 승인됐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7월 12일에 대통령실을 경호하는 경찰 경호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56억 8,472만 원이 추가 편성됐고 대통령실 이전 여파로 청와대 개방을 위한 운영경비 96억 7,000만 원도 추가편성됐다. 이 점을 고려하면 약 650억 원의 예비비를 쓴 것이다.
이미 재작년에도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위해 예산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각 부처의 예산을 끌어다 쓰는 ‘전용’을 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예비비로 650억 원이 더 들어갔던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496억 원이면 청와대와 국방부를 충분히 이전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던 것과 배치되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취임 한 달 후인 2022년 6월 21일에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379억 5,000만 원의 예비비가 지출된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불필요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발언을 일삼아 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는데 이 역시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기획재정부 등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이전에 745억 원(9월 27일)의 예비비를 편성됐고 구체적으로 사실상 국가정보원의 예산인 국가안전보장활동비로 6,300억 원,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500억 원(8월 16일), 해양경찰 경비함정의 유류비 지원에 303억 4,300만 원(11월 14일), 유가연동보조금 151억 1,800만 원(12월 27일), 9월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 지원에 활용된 재해복구 국고채무부담행위 조기 상환을 위해 5,696억 원 등을 썼다.
진짜 문제는 본예산을 정부 스스로 짠 첫 해인 2023년이었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며 지출을 늘리지 않은 윤석열 정부는 2022년 대비 5.1%p 늘어난 639조 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그 중 4조 6,000억 원을 예비비로 책정했다. 작년엔 재난 재해가 덜 발생하면서 정부는 4조 6,000억 원의 예비비 중 3조 3,000억 원을 쓰지 않고 남기며 역대 최저 예비비 지출액(세출 결산액 대비 0.3%)을 기록했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했다.
그러나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실상은 달랐다. 내역을 뜯어보면 사실상 ‘대통령을 위한 사업’ 곳곳에 예비비가 사용됐는데 정상외교 순방비용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정부는 2023년 한 해에 외교활동 지원을 위한 예비비만 6차례나 편성했다. 정상 및 총리 외교활동 경비 지원으로 총 328억 5,900만 원이 편성됐는데 운영비와 경호비 등 여러 제반 비용도 뒤따랐다.
해외 순방 프레스센터 설치 운영 경비 지원 명목으로 76억 2,700만 원,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경호에 50억 500만 원,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에 48억 9,600만 원,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운영비에 28억 2,000만 원 등 총 532억 700만 원을 썼다.
이는 작년에도 알려졌듯 애초에 편성된 정상외교 예산(249억 원)을 모두 쓰고, 그보다 두 배 많은 비용을 예비비로 추가 편성해 사용한 것이다. 그 사이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R&D 예산은 대폭 삭감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가 관리에 사용한 내역도 눈에 띈다.
집권 1년 차에 이어 고물가가 이어지자 과일 등 농산물 할인 지원에 225억 원을 썼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 위한 방사능 조사에 151억 9,900만 을 사용했다. 오염수 영향으로 수산업계가 타격을 입자, 수산물 소비 활성화에 800억 원을 썼고, 할인행사를 연장하면서 143억 원을 더 투입했다.
당초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 예산으로 5,281억 원을 준비했는데, 약 1,095억 원이 예비비로 더 쓰인 셈이다. 역대급 국가 망신 사례로 남았던 작년 여름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도 총 168억 원의 예비비가 쓰였다. 폭염 대비 물품, 의료 물자 지원 69억 53만 원, 콘서트 16억 6,000만 원, 학생들의 지자체 체류비용 82억 7,652만 원 등이다.
결국 이런 식의 예비비 편성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1년 차 때는 이전 정부가 짠 예산이기 때문에 새 정부가 추진하는 중점 정책에 대해 예비비를 편성하는 일이 있지만,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 아닌 '대통령실 이전'이나 '해외 순방' 등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에 예비비를 편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치 예비비가 대통령의 ‘내탕금’처럼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비비는 본예산을 짤 때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을 경우를 한정해 국회 심의를 나중에 받게 되는 것인 만큼 이를 이용해 자신의 정책 사업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산은 국회 심사 등 통제를 받는 게 기본인데, 대통령실이 통제받지 않는 창구로 예비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산에 대해 감사원과 국회의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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