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 결과를 두고 거센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백현동 용도변경 발언과 관련해 재판부가 국토교통부의 '외압'을 보여주는 공문들을 무시하거나 왜곡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또 재판부는 이 대표가 "의무조항 때문에 용도변경했다"고 거짓말 했다고 판단했지만, 실제 발언도 이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국토부 행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의 구성 요건 자체가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 국토부 외압 아니라 성남시 스스로 변경?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한성진 부장판사, 주심 이학인 판사, 배석 박명 판사)는 지난 15일 1심 선고에서 "백현동 부지에 대한 준주거지역으로의 용도지역 변경은 성남시의 자체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할 것이고, 이는 성남시장인 피고인이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판결문 92쪽).
그러면서 "피고인이나 성남시 담당 공무원들이 국토부 공무원들로부터 이 사건 의무조항에 근거해 용도지역 변경을 해주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며 협박을 당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판결문 93쪽).
이 대표가 2021년 10월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용도변경을 요청한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응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허위사실 공표라는 검찰 쪽 주장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토부가 백현동(식품연구원) 부지를 특정해 보낸 3개 공문 내용을 보면, 중앙정부에 절대적인 '을(乙)' 입장인 성남시로서는 국토부의 단순 요청이 아니라 외압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정황과 성남시가 국토부가 강조하는 의무 조항에도 용도변경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정황 등이 여럿 드러난다.

권력감시 탐시보도그룹 <워치독>이 입수한 2014년 5월 21일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을 보면, 국토부는 당시 성남시가 공공기관 지역 이전을 위해 부지매각에 협조해야 했던 국토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과정평가원, 한국식품연구원 등 총 5곳 가운데, 용도변경이 필요한 기관으로 '식품연구원'을 지목했다.
이어 중요표시(※)와 함께 "용도변경 필요기관은 국토부, 지자체간 협의를 통해 종전 부동산에 대한 용도를 변경해 민간매각 추진"이라고 적으며, "공공기관 지방이전 시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보낸 10월 1일 공문에서도 국토부는 성남시에 "용도변경 민간매각 협조"를 촉구했다.
당시 국토부가 식품연구원 부지에 대해서만 따로 매각 협조 공문을 보낸 만큼 이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공문 근거로 내세운 공공기관이전특별법 43조 6항은 "국토부 장관은 지방자치단체에 (…) 요구할 수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 도시·군 관리계획에 반영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강제 의무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남시는 2014년 11월 17일 국토부에 '공공기관 이전부지 용도번경 관련 질의'라는 공문을 보내 "백현동 부지는 판교테크노밸리와 연계해 연구개발(R&D) 또는 벤처 단지 등 첨단산업 조성을 위한 예정 용지인데 한국식품연구원이 '주거지역 용도변경'을 요구하고 있어 시의 계획과 상충된다"며 "성남도시기본계획에 저촉됨에도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 가능하냐"고 질의했다.
당시 성남시가 국토부에 보낸 공문에서 "시의 계획과 상충된다"고 표현한 것으로 미뤄봤을 때, 당시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정책' 압박으로 인해 부지를 빨리 매각하고 떠나야 하는 식품연구원이 아파트 등 개발이 용이한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하려 했으나, 성남시가 지역 발전을 위해 이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2015년 1월 26일 세 번째 공문을 다시 보낸다. 국토부는 공문 제목부터 '종전 부동산 용도변경 등 협조요청'이라고 명시하면서 "성남시 소재 종전 부동산의 효율적 이용과 원활한 매각을 위해 용도 변경, 건축물의 층수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이전 공공기관의 건의 등이 있다"며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기초지자체인 성남시 입장에서 중앙정부인 국토부의 반복되는 "적극 협조 요청"은 상당한 압박이 됐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20일 결심 공판에서 "(박근혜 정부) 총리실에서 연초에 국책사업에 협조 안 하면 인적 문책한다,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는 등의 공문을 보내 직원들이 회람했다"며 당시 정부의 압박과 관련한 정황을 언급한 바 있다.
이 대표는 '협박'이라는 표현도 "이런 식으로 (국토부가) 압박을 하더라,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하더라 표현한 것이지, 구체적인 얘길 한 게 아니"라고 했다.
■ 재판부, 외압 증거 무시하고 자의적 판단
그러나 재판부는 앞서 제시한 2014년 5월 21일자 공문과 10월 1일자 공문에 대해 "국가균형발전법과 혁신도시법(의무조항)을 표시했는데, 모두 국토부가 공공기관 지방이전 및 종전부동산 매각을 추진 중임을 밝히면서 그 근거규정으로 표시됐을 뿐이고, 성남시에 대한 협조 요청의 근거규정으로 표시되지 않았다"며, 두 공문이 압박의 증거가 아니라고 검찰 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줬다(판결문 85쪽).

'종전부동산 용도변경 등 협조요청'이라고 적힌 2015년 1월 26일 국토부 공문에 대해서도 "이 사건 의무조항에 따른 용도지역 변경과 관련된 압박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선고 과정에서 완전히 무시했다(판결문 96쪽). 국토부가 외압으로 비칠 만한 문구를 담은 공문을 보낸 적 없고, 성남시만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라 한 적 없기 때문에 성남시 자체 결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국토부가 2014년 12월 9일 성남시로 보낸 공문을 하나의 증거로 내밀었다. '중전부동산 용도변경 질의에 대한 회신'이라는 제목이 달린 12월 9일자 공문에는 '국토부의 종전부동산 매각 관련 협조요청 문서'에 대해 "혁신도시법 사항이 아니"라며, "시에서 적의 판단(알맞을 때 결정)해야 할 사항임을 알려드린다"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국토부는 2014년 9일자 공문에서 이전 국토부의 협조요청이 이 사건 의무조항에 따른 것이 아님을 명백히 했다 (…) 구체적인 용도지역을 특정하지 않은 채 용도지역 변경이 가능하다고만 회신했다(판결문 86쪽)"면서, 재차 식품연구원 부지에 대한 준주거지역으로의 용도지역 변경은 성남시가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국토부 같은 중앙정부와 성남시 같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절대적 갑을 관계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린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부는 겉으로는 공문에서 '성남시에서 적의 판단하라'고 했지만, 다른 세 차례의 공문에서 "용도변경 민간 매각 협조"를 계속 촉구했기 때문이다. 또 공공기관이전특별법이 의무조항을 두고 있어 지자체가 국토부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 밖에 재판부는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변경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목표로 확정된 2014년 3월 12일 지역발전연석회의 자료에 부동산 민간매각 추진과 식품연구원과 관련해 성남시 도시관례계획 변경 추진 등이 명기돼 있음에도, "변경될 용도 지역이 특정되지 않았고, (…) 의무조항을 이용하는 것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며, 이를 무시했다.
■ 일방적인 증언 취사 선택하며 정치 판결
재판부가 판단 과정에서 한쪽의 증언만 지나치게 취사 선택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성남시 담당 공무원들은 모두 국토부가 이 사건 의무조항에 근거해 용도지역 변경을 해주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를 문제삼겠다고 압박 내지 협박한 사실이 없다거나 그런 말을 못들었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적었다(판결문 97쪽).
판결문 내용대로 '국토부로부터 용도변경 압박을 느끼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한 성남시 공무원들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법정 증언도 있었다.

권석필 전 성남시 교육문화환경국장은 지난 6월 14일 법정에 출석해 "당시 일선 공무원들로부터 용도변경 문제로 중앙에서 성남시 공무원 직무유기로 문제삼을 수 있단 소문을 들었다"면서 "듣기도 하고, 간부회의 같은 것도 하고 모임할 때도 대화하기도 하고 결재 과정에서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다.
용도변경 담당 성남시 주무과장 ㄱ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모호하게 법정 증언한 점도 석연치 않다. ㄱ씨는 불법 용도변경으로 입건돼 검찰로부터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구속 기소된 민간건설업자 정바울 씨의 "국토부 외압 없었다"는 법정 증언 역시 검찰 압박으로 오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성남시장이던 피고인(이재명)의 취재 요청에도 불구하고 관련 언론보도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국토부 외압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적었다(판결문 98쪽). 그러나 용도변경 문제 관련해 성남시 내부 속사정을 전달한 언론보도도 있었다.

<SBS>는 2013년 3월 22일 「성남시 "공기업 부지 활용해 기업 유치 계획"」 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성남시는 공기업이 이전하는 자리에 대기업 본사나 연구개발 센터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성남시의 이런 입장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개발이익에 눈 먼 업자들이 개입할 경우 공기업 부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개발되면서 지역경제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성남시는 대기업 본사나 연구개발 센터가 들어와주는 걸 가장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에서 국토부 외압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토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부지 민간매각 과정에서 성남시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내부 속사정을 언급한 보도로 볼 수 있다. 또한 해당 인터뷰는 이 대표가 2021년 국정감사에서뿐만 아니라, 성남시장 시절부터 용도변경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음을 보여준다. 국토부의 압박으로 부득이하게 준주거용지로 용도변경했다는 이 대표 쪽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 의무조항 발언도 없는데…교묘하게 짜깁기
재판부는 검찰이 이 대표의 발언을 교묘하게 왜곡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그대로 인용했다.

이 대표는 재판의 대상이 된 지난 2021년 10월 20일 국정감사에서 "(…) 나머지 백현 이 부분은 아파트 분양하겠다고 해서 저희가 해주지 않고 버티다가 국토부가 식품연구원에만 별도로 협조요구 공문을 보냈는데 그것은 법률에 의한 요구여서 어쩔 수 없이 용도변경 해줬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의무조항을 근거로 용도변경을 국토부가 압박했지만 몇년 간 안 해주다가 식품연구원에 대해서만 따로 용도변경 요구 공문이 와서 해당 사안이 '법률에 의한 요구'라 용도변경을 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발언 전체를 보지 않고, 검찰이 발언 앞부분에서 언급한 '의무조항'과 맨 마지막의 '용도변경 해줬다'만 짜깁기해서 '의무조항 때문에 용도변경 해줬다'고 했다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인용해 판결했다. '법률에 의한 요구라서 용도변경 해줬다'는 말이 '의무조항 때문에 용도변경 해줬다'로 둔갑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떤 표현이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인지 여부는 일반 선거인이 표현을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하여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발언의 의미를 명백히 하는 데에도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함이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짜깁기한 발언을 두고 선거인의 인상을 판단한다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대법원도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확장 해석을 금지하고 있다. "주관적 사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상 표현의 해석에 고려할 것은 아니다 (…) 발언의 목적을 추론하고 다시 이에 따라 발언의 의미를 새기는 것은 사후적 추론에 따라 발언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에 해당하여 문제된 표현을 접한 일반 선거인의 관점에서 표현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는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대법원 2024. 10. 31. 선고 2023도16586판결 등)"
■ "국토부 행위는 선거법 처벌 대상 아냐"
이 밖에 '국토부 행위' 자체가 공직선거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직선거법 제250조 1항은 허위사실공표죄의 공표 대상을 '출생지, 가족관계, 신분, 직업, 경력 등. 재산, 행위, 지지여부'로 한정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후보자의 자질, 능력에 관련된 후보자의 행위만 처벌대상'이라고 한정하고 있다(헌법재파소 2018헌바223 결정).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사안은 헌재 판결 취지에도 완벽하게 위반되는 판결"이라며 "'국토부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라는 것은 국토부의 협박, 즉 제 3자의 행위다. 제 3자의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안의 법원 판결은 명백히 헌법재판소 판례, 그리고 대법원 판례에 의해서도 명백한 무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최고위원은 "양형도 매우 부당하다"며 "20대 총선, 21대 총선 때 선거법 위반 사례로 처벌된 사례를 전체 다 전수조사를 해봤더니 허위 사실 공표로 징역형을 판시한 사례는 단 한 건이다. 모두 무죄 내지 벌금형이 선고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징역형으로 판결 선고된 사안도 허위 사실 공표와 기부 행위 등 복합 범죄, 중대 범죄의 사례의 경우에 단 한 건만 징역형을 선고했다"며 "이 대표에 대한 이번 1심의 징역형 선고는 사상 초유의 행위로, 이것은 사법부의 명백한 정치 판결"이라고 단언했다.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허재현·김성진·조하준·김시몬 기자 watchdog@mindlenews.com
☞ 탐사보도그룹 <워치독>은 리포액트 허재현 기자, 시민언론 민들레 김성진 기자, 시민언론 뉴탐사 김시몬 기자,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가 만든 권력 감시 공동 취재팀이다.
저작권자 © 굿모닝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굿모닝충청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