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가 사라진 토론회였다.
지난 28일 오후 2시부터 충남도의회 303호 회의실에서 열린 ‘충남학생인권조례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 얘기다.
박정식 의원(국민·아산3) 요청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조례의 존폐 여부를 놓고 찬·반 양측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됐지만 고성과 야유, 막말로 얼룩졌다.
홍성현 부의장(국민·천안1)과 교육위원회 편삼범 위원장(국민·보령1), 구형서 부위원장(민주·천안4) 등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박 의원의 인사말과 축사, 충남교육청 김지훈 학생인권센터장의 조례 설명, 발표 자유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박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일선 교사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한편에선 학교가 인권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토론회는 조례 폐지에 대한 찬반 양측의 의견을 듣기 위해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김지훈 센터장은 “조례 제정 이후 학생과 보호자들이 학생 인권 침해에 대한 상담과 권리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통로가 개설됐다”며 “센터는 단순 민원 처리 기관이 아닌 학교 구성원들의 중재와 상호 존중 의식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순간까지 현장에 있던 방청객들은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찬성 측과 반대 측이 각각의 이유를 들며 조례에 대한 입장을 밝힌 주제 발표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폐지 찬성 측인 울산교원단체총연합회 신영철 연구자문위원은 “조례 제정으로 학교의 규율이 무너지고 교사들은 신고 대상으로 규정되고 있다”며 “조례는 1960~70년대 해외에서 발생한 좌파들의 학생권리운동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현행 조례는 비교육적인 면이 많다”며 약 25분간 조례 폐지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한국가족보건협회 김지연 대표는 더 강한 어조로 조례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행 조례 15조(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학생은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언급하며 “청소년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교육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청소년의 성관계를 허용한다는 것은 윤리나 도덕, 생명과 가정 중심의 성품교육보다는 피임 위주의 교육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뒤 “독소조항을 제거해도 조례가 있는 한 언제든 추가될 수 있다. 따라서 조례 폐지가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청객들은 조례 폐지 찬성을 주장하는 주제 발표에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보냈다.

반면 조례 폐지 반대 측 주제 발표에 나선 전북교육청 염규홍 인권보호관은 조례로 교권침해가 늘고있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론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교권침해는 학부모와 동료 교직원 등에 의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학생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중은 높지 않다”며 “교권의 보호는 학생인권을 위해 중요하지만 조례를 폐지한다고 해서 교권이 보호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염 보호관은 이어 “아동학대 신고 역시 조례 때문이 아니라 아동학대 관련 법률에 의한 것이다. 기초학력 저하와 조례의 연관성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조례를 폐지하는게 정말 답인지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입장의 홍동중 박신자 교장은 조례 제정 후 학교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를 소개했다.
박 교장은 “조례 제정 후 학교가 인권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학기당 2시간씩 인권교육이 진행 중이다. 이것이 현장에서 뿌리 박혀 학교와 지역의 문화를 바꾸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례는 학생의 인권이 교육과정에서 존중, 보호, 실현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법”이라며 “이제 싹이 피었다. 꽃을 피워야 한다”며 조례 유지를 촉구했다.
그러자 방청객들은 “궤변이다” 등을 외치며 야유를 보냈다.


토론 순서는 점입가경이었다. 토론자들끼리 충돌은 물론 방청석에서 야유 소리가 더 커진 것.
특히 일부 방청객들은 ‘가정파괴, 교권붕괴, 비교육적인 조례 폐지’, ‘개정이 아닌 폐지가 답이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당초 도의회는 토론회 개최를 안내하면서 ‘토론 방해행위(야유, 피켓사용 등) 시 퇴장조치 될 수 있다’고 안내한 바 있다.
제한토론에서 폐지 찬성 측은 조례에 성적 지향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가 있는 점을 거론하며 공격을 이어갔고, 반대 측은 이를 방어하는데 집중했다.
특히 김 대표의 질의에 박 교장이 “저는 올해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교장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답하자 방청객들은 “무자격자야, 자격 없어. 무식하다”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박 의원이 “토론 방해행위를 자제해달라”며 중재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일부 방청객들은 “더이상 궤변을 풀어대지 말라”며 조례 폐지 반대 측의 발언을 끊는 모습도 있었다.

확대토론은 방청객들이 토론자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충남교사노동조합 최재영 위원장과 공주대 김영춘 전 부총장이 현행 조례의 문제점 등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최 위원장은 “조례로 인해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취지로 토로했고, 김 전 부총장은 “후끈한 토론을 통해 당면한 교육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제한 뒤 “교권침해 시 처벌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들은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답변에 나섰고, 특히 김 대표는 “수업 시간 자는 얘들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집중을 못하고 있다. 조례는 폐지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방청객들은 “맞습니다”를 외치며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토론회는 예정된 시간을 30분 넘긴 5시 5분쯤 마무리됐다.
박 의원은 정리 발언을 통해 “토론회를 통해 제시된 의견이 정채게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올해 안에 토론회를 한 번 더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편 이 조례는 2020년 7월 의원 발의로 제정됐다.
하지만 최근 폐지 주민 발의가 청구됐고, 도의회는 청구인 서명부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결과는 9월 중 나올 예정으로, 존폐 여부도 같은 달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조례 폐지 찬·반 측 시민사회단체 충돌은 물론 도의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간 전면전이 예상되고 있다.
앞서 충남교육청 이병도 교육국장은 27일 가진 정례 기자회견 중 관련 질문에 폐지안의 의회운영위 수리를 전망하면서 “교육청 자체적으로 조례 개정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며 “조례를 폐지할지, 부분적으로 개정할지 도의회와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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