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우리가 익히 알듯, 이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 법이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을 담은 표현이다. 사법 시스템이 각종 범죄 행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른바 사법 불신을 내포하기도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이 사적인 복수 수단을 취하는 내용의 드라마 영화가 내세우는 명분도 이런 맥락에서 공감을 얻는다. 설령 법이 가까워도 문제가 해결되고 결과는 만족스러울까?
법정에 이르기까지 큰 비용이 들고 시간도 소요된다. 몇 년에 걸쳐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사이에 마음고생도 상당하다. 생업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수도 있다.
법적인 정의가 실현되어도 갈등 상황이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당사자 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기도 한다. 법적인 판단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상처와 고통이 더욱 커진다.
더구나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는 사람, 가까운 이들 간의 갈등에 법적인 수단이 개입되면 관계는 더 파탄 나고,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불러 파국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때 적절한 합의를 끌어내거나 맺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가운데 중재를 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는 이러한 맥락에 적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등장시키며 흥미를 끄는데 그 캐릭터가 바로 신 사장(한석규)이다. 그는 ‘힘숨찐’이다.
겉보기에는 초라하고 약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엄청난 재주와 역량을 숨기고 있어서다.
하지만 신 사장의 직업은 드라마 영화에서 흔한 경찰이나 변호사, 킬러 또는 정보요원도 아니다. 그는 화려한 직업적 간판도 총이나 무술 실력도 없다.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데 그의 실력과 무기라면 ‘말’이 전부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과 분쟁을 말로 해결한다. 해결은 법적인 해결이 아니라 중재와 조율로 최선의 합의를 끌어낸다. 경찰이나 변호사가 나서기 전에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 낸다.
하지만 고운 말만 한다고 해결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때로는 편법과 위법 사이를 오간다. 일종의 분쟁 해결 히어로물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그렇다고 혼자 원맨쇼를 하는 방식은 아닌 점이 눈길을 끈다.
더구나 그는 돈 한 푼 받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재능과 역량을 살려서 문제 해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끈다.
그렇다고 그들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들에게 애걸도 하고 쥐락펴락 하기도 한다.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배어 있다. 그러한 믿음과 끈끈한 관계는 모든 사람 사이가 대개 그렇듯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분명 아니었다.
경기 마헌경찰서 서부지구대 경장 최철(김성오), 용단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6급) 김수동(정은표), 클럽 ‘시크릿’ 대표 주마담(우미화), 알바의 달인 이레(이시온) 등은 신 사장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부채감을 느끼는 이들로 그의 민원 해결에 협조한다.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사연들이 과거에 있었는지 하나씩 풀어가면서 흥미를 돋운다.
여기에 신임 판사 조필립(배현성)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재판부장 김상근(김상호)의 지시로 치킨집에 출근하게 되면서 이런 신 사장의 활약을 접하고 같이 보조를 맞추게 된다.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인 현실에서 법보다 더 필요한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개별 케이스를 겪을 때마다 체감하게 되는 과정이 매회 전개된다.
법보다 가까워야 하는 것은 분명 주먹이 아니어야 한다. 주먹보다 가까운 것은 단지 조율이나 합의이어야 하는데 한편으로 드라마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억울함, 한을 헤아리고 그것을 풀어주거나 어루만져 주는 단계나 조치가 필요하다.
재판정의 망치 소리가 결코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엇에 우리는 계속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더 심각한 부작용이나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의 병원은 실제 잘 운영이 될까 싶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신 사장의 치킨집은 잘 운영이 될까 싶다. 자영업자의 현실이 녹록지 않은데 치킨집을 너무 많이 비우고 무료봉사하는 신 사장이 가능할까 싶은 것이다.
꼭 낭만의 비현실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테다. 갈수록 스케일도 커지고 있는데 오히려 소소한 일상 해결사가 더 디테일한 공감을 더 일으킬 수 있다.
액션 활극으로 치닫는 집단적 히어로물 이전에 시청자들이 무엇을 더 원할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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