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좀비딸’이 손익분기점을 일찌감치 넘기고 여전히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흥행 요인은 명확해 보였다. 출발부터 휴가철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는 유쾌한 영화라는 점이 주효했다.
대개 여름 시즌에는 유쾌한 영화들이 인기인데, 여기에 좀비물이니 약간은 오싹한 점도 있다. 이미 팬이 있는 원작이 있었고, 특히 웹툰이라서 관객 동원에도 유리했다.
타이밍도 주효했다. 정부 차원에서 영화 할인쿠폰을 많이 지급했고. 방학 시즌과도 맞물렸으며 이런 환경적 요소도 흥행에 도움이 된 것 같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티켓 가격은 모멘텀처럼 보였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1만4000원의 할인을 받으니 1000원으로 관람하는 셈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티켓 가격을 매년 1000원씩 올렸는데 일반 국민들은 적정한 티켓 가격은 8000원에서 1만 원 사이라는 견해가 대체적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여하간 영화 좀비딸이 흥행하면서 다시 한번 ‘K-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부산행’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 그동안의 K-좀비물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이 갖는 차별점은 어떤 부분일까 생각해 볼 수 있다.
킹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애민사상을, 지금은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를 배경으로 우정을, 부산행은 사람 사이 연대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런데 그사이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있었고 한동안 좀비물이 실종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좀비처럼 다른 이들을 감염시킨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판타지 호러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제 좀비물은 좀 이전의 방식과 달라야 했다.
영화 좀비딸은 이런 점을 반영한 셈이 되었다. 가족애를 강조하고 좀비 증상을 극복하기 위한 치료와 재활에 초점을 둔 점이 특히 그렇다.
이는 코로나19를 극복한 경험을 비유하는 것일 수 있어 보였다. 아울러 희망과 긍정의 힘을 믿게 하는 기분 좋은 영화라는 점에서는 대중적인 포인트를 갖출 수 있었다.
한국형 좀비물은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진화해 왔다. 이렇게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K-좀비 콘텐츠가 만들어진 배경은 있을까?
부두교에 등장했던 캐릭터를 확장한 좀비물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인 극장 영화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이는 젊은 세대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오컬트 물과 비슷하게 그들은 또 다른 세계를 중시하니 말이다. 이것이 우리 웹툰에 영향을 주었고, 이 웹툰이 넷플릭스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화가 되었다.
주로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좀비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더구나 넷플릭스의 경우 글로컬 전략을 통해 지역적인 콘텐츠로 세계 시장을 겨냥했고, 이것이 맞아떨어진 점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좀비랑 비슷한 것이 강시라고 하는데 이것은 차원이 다르고 또 서양의 좀비는 또 다른 면모를 가진 것도 확실하다.
K-좀비는 한국만의 정서, 감정선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경계성이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계성은 긍정적으로 볼 때 문화적 융복합의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시아적 정서가 결합했을 때 좀비물이 아시아에 더 확산이 되는가 하면 서구에서도 익숙하면서도 독특하게 받아들여진다.
예전에는 비난도 많이 받았던 신파라고 불리는 감정선이 오리지널 드라마를 통해 호응을 받고 있다. 이제 좀비 영화에도 본격적인 결합을 하면서 대중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사회학적인 요인도 여전히 있다. 단절된 관계나 예기치 않은 변화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이 좀비물에 투영된 결과라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도시 공포물의 전형이 된 좀비물인데, 도시에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사는 상황에서 전염병 같은 좀비 현상은 공포스러움을 자아낸다.
아마도 알래스카나 호주 같은 지역에서는 별로 흥미를 유발할 수 없을 것이며, 한국과 도시 밀집도가 큰 지역일수록 좀비물의 호응은 클 수 있다. 자본화·기계화·수단화되는 현대 사회의 소외와 단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위문화 관점에서 이는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착취한다는 불안의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좀비는 그런 구분이 없어졌다. 오히려 좀비가 된 자신을 구원해 줄 부모 세대가 절실했다.
영화 좀비딸의 경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끝까지 감싸려는 아버지의 정서가 있는데, 이런 건 한국에서만 유독 부각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는 공감대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원래 이러한 설정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하는 통속극과 맞물려 있다. 부성애를 부각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런 아버지가 얼마나 있겠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아버지 모습이, 많은 영상 콘텐츠에 나오는 것을 지극히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한국적 특징이다.
서구권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글로벌 OTT로 인해 하나의 문화적 다양성 관점에서 인정되고 수용되고 있다.
다만 과중한 부성애는 자녀에게는 부러울 수도, 부담일 수도 있다. 아버지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자녀들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겠다. 개인주의 문화권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그 반대의 문화권이라면 공포물에 불과한 좀비물이 가족주의 장르물이 될 여지는 더 크다. 무엇보다 가족주의와 부성애에 함몰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 직업이 딸의 좀비 증상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설정은 가족을 외면하고, 자본과 기업에만 복무하는 현대 노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좀비 콘텐츠 흥행은 영화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 블랙핑크의 신곡 ‘뛰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일명 ‘좀비춤’이 등장했다. 이제 K-좀비가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뮤직비디오나 광고 같은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좀비춤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것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좀비 현상을 극복하려는 집단 의지가 아닌가 싶다.
욕망의 사물화 현상, 즉 좀비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대응이 같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되고 있는 K팝인 셈이다.
영화 좀비딸 흥행으로 다시 ‘K-좀비 붐’이 올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나오는데 앞으로 K-좀비 콘텐츠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갈까?
얼마 전까지 한국형 좀비는 빠른 움직임이나 몸놀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공포의 좀비 크리처를 퇴치하는 대상에 한정하지 않고 좀비 현상을 함께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데 이르렀다.
좀비딸의 성과를 봤을 때, 서구식 이분법적인 퇴치와 제거의 관점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화해적으로 우리 사회 모순을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장르로 거듭날 것이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다. 좀비가 되었다고 박멸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함께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공동체만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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