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 1916~ 1962)는 그의 대표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The Sociological Imagination)’에서 훌륭한 학자는 데이터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즉 쓰레기 더미에서도 훌륭한 연구를 이끌어낸다는 것.
실제 가볼로지(garbology)는 쓰레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콘텐츠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 비난을 받는 통속극이라도 사회적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
최근 가장 시청률 높은 인기 드라마가 KBS ‘여왕의 집’이다. 이 드라마의 기본 구도는 정상성의 회복과 복수극이다. 이 과정에서 통속극의 전형적인 요소들이 가감 없이 등장한다.
가부장제와 혈연 주의, 출생의 비밀, 불륜과 이혼, 고부간의 갈등, 계층 갈등과 신분 상승 욕망, 불치병과 기억상실, 패륜은 물론 상상을 뛰어넘는 범죄와 음모와 배신 등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일반 통속극과 달리 빠른 전개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밑도 끝도 없다.
초반부터 갑자기 재벌집 사모님인 최자영은 사위와 불륜이 의심되는 여직원을 자동차로 살해하려는 터무니없는 행각을 보여주는가 하면 남자 주인공 황기찬의 형 황기만은 조카를 유괴해 동생 부부의 약점을 잡고 돈을 갈취하려 한다.
디자이너 출신 강세리와 검사 출신 사위 황기찬은 흥신소를 이용해 상상을 뛰어넘는 범죄 행각을 벌이는 가운데 강재인의 아들마저 비참하게 목숨을 잃게 한다. 말만 들어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 때문에 불편하기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빤한 설정과 전개라 해도 되짚어 봐야 할 점이 있다. 복수 방식을 보면 강재인의 스타일은 다른 드라마와 달랐다.
여타 드라마에서는 대개 가해자에게 타격감으로 복수를 하거나 진실을 드러내어 자리나 입지를 박탈하고 사법적 처벌로 귀결시킨다. 물론 공영방송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다.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강재인은 자신이 당한 것만큼 그들에게 돌려준다. 이는 감정 복수에 해당한다. 아이를 잃은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남편 황기찬에게 돌려주고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둔 강세리도 그렇게 만들어준다.
자신에게 과잉 함량의 수면제를 먹여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한 시어머니 노숙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며 아들의 외면까지 받게 한다. 물론 그 뒤에는 진실을 통한 정상성의 회복과 징벌을 내리는 흐름이다.
무엇보다 상처의 치유와 관계의 회복을 이루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내부 구성원의 상처와 고통을 드러낸다.
강미란은 집안의 반대로 정오성과 결혼하지 못하고 사생아를 출산한다. 마침, 아들이 없었던 오빠 강규철은 그 아이를 자기 아들로 집안에 들인다.
여동생을 보호하고 여동생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조치임과 동시에 조카로 하여금 경영 승계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여동생의 비밀을 위해 아내 최자영에게는 입을 봉한다.
하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혼외자를 데리고 온 남편 강규철에게 최자영은 분노하게 된다.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을 받고 있던 최자영은 갑자기 들어온 강규철의 아들을 엄마로서 양육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게 되고 이것이 강규철에게 화와 한으로 쌓인다. 강규철에 대한 원망은 딸 강재인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한편, 강미란은 자기 아들을 두고 오빠 집에 두고 국회의원과 결혼했지만,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헤어진 상황이다. 아들인 강승우에게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도 밝히지 못한다.
한편, 강승우는 최자영이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고 뒤늦게 친모임을 밝힌 강미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전히 가부장제에서 희생당해서 보상을 받으려는 어머니 세대와 달리 강재인, 강승우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찾아야 맞았다.
이 지점에서 조직이나 기업, 국가의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함의가 있다.
황기찬은 검사 출신으로 오로지 출세와 부를 향해 달려왔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인다. 강재인과 거짓과 위선의 결혼으로 부와 권력을 성취하고 마침내 강재인은 물론 강씨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
여기에 황기찬의 엄마 노숙자는 아들을 이용해 특권을 누리려 한다. 황기찬의 형이자, 노숙자의 큰아들 황기만은 강재인의 아들을 유괴하고 여기에 갈취까지 하려 한다. 마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더구나 강재인과 최자영에게 시기심과 분노가 분기탱천한 강세리는 황기찬과 연합하여 파상공세를 취한다. 이들의 잔인무도함은 강규철-최자영-강재인에게는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이라면 이런 위기가 올 때, 내적으로 분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자영이 자기 딸 강재인을 방어해야겠다는 과도한 집착증은 김도희에 대한 오해를 낳았다. 강세리, 황기찬의 먹잇감이 되어 자기 딸 강재인을 김도희의 가족 김도윤, 정오성, 정윤희 등에게 분노의 표적이 되게 한다.
안타까운 건 최자영이 황기찬의 불륜 상간녀로 생각한 직원 김도희는 오히려 선한 사람이었다. 소신 있게 도민준 상무와 같이 황기찬과 강세리의 페이퍼 컴퍼니 음모와 비리를 적발하고 이를 내부 고발하려는 의인이었다.
최자영의 행태는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는 외부 악인들에게 이용당하기 쉽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최자영의 집착은 아들에게만 상속과 경영 승계를 맡기려는 가부장제에 기인한다.
남편은 혼외자에게 경영을 맡기려 하고 자기 딸 강재인의 남편도 불륜을 저지르자, 상간녀를 살해하려는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받은 오랜 세월의 핍박에 따른 트라우마가 작동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강미란은 강씨 집안을 무너뜨리고 차지한 황기찬 일가에 협력하면서 조카 강재인과 올케인 최자영을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철저히 배제한다. 자기 아들 강승우를 YL그룹의 경영 승계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아들 강승우도 자신을 친아들이 아니라고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최자영에 대한 분노로 황기찬의 경영권 탈취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아울러 강재인의 친구인 도유경은 의사라는 성공적인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강재인에 대한 열등감과 시기심으로 노화자에 협력해 강재인은 물론 그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데 일조한다.
이런 가운데 나락에 빠진 강재인은 복수를 시도하면서도 이런 상처와 고통,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아울러 강승우, 강재인, 도유경 등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가부장제와 혈연 승계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비전을 통해 화해하고 포용시켜야 한다. 과연 이러한 결말에 이를 수 있는지 지켜볼 단계다.
통속 드라마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을 뭐라 할 게 없는 것은 현실이 더 막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결론은 좀 더 문화적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어쨌든 이 드라마를 통해 외부의 위기가 올 때 이전에 내적인 모순과 갈등, 불만 요소가 팽배한다면 조직이나 기업, 국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거꾸로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내적 모순과 갈등, 상처를 개선하거나 치유하는 노력을 한다면 더욱 건강하게 체질 개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외부의 공격을 받기 전에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방적 경영과 국정운영을 잘하는 이들이 훌륭한 리더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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